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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디지털이다.

◆의사결정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22. 5. 1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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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디지털이다.

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5. 16

 

 

깨달음은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바꾼다. 그냥 눈으로 보면 아날로그다. 깊이 파헤쳐 보면 디지털이다. 밖에서 보면 아날로그다. 내부를 뜯어보면 디지털이다. 본질은 구조화다. 구조는 의사결정구조다. 의사결정은 사건 안에서 일어난다. 사건은 계 내부의 모순을 처리한다. 

    의사결정에 있어서 구조화된 것은 디지털이고 구조화되지 않은 것은 아날로그다. 여기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구조론 용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반의 상식으로는 그냥 바늘이 돌아가면 아날로그고 숫자로 표시되면 디지털이다. 엄밀하게 정의되지 않은 것이다.

    그냥 편의적으로 하는 말이다. 구조론에서 말하는 디지털은 구조화다. 구조화를 설명할 적당한 다른 용어가 없기 때문에 아날로그 개념, 디지털 개념을 빌어 쓰는 것이다. 그런데 깊이 들어가 보면 같다. 과학자들도 이제는 우주가 디지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검색하면 나온다. 그러나 모른다. 그냥 관찰해보니 그렇더라는 식이다. 우주가 디지털일 수밖에 없는 필연의 구조를 과학계는 모른다.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는 가설도 나온다. 헛다리짚기지만 비로소 탐색하기 시작한 거다. 필자가 40년 전에 내린 결론이지만 말이다. 

    우주는 디지털일 수밖에 없다. 하느님 할배가 와도 아날로그 방법으로는 우주를 맹글 수 없다. 아날로그는 원자론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원자가 없기 때문에 아날로그가 수 없다. 두 원자 사이의 간격이 아날로그라는 말이다. 원자는 없고 대신 그 자리에 계가 있다.
   
    계는 내부에 축과 대칭의 구조를 가진다. 그 자체가 디지털이다. 대칭은 있는데 축이 없는게 아날로그다. 두 원자가 대칭되어 있고 축이 없으면 그 두 원자의 간격이 성질을 결정하는게 아날로그다. 반면 축과 대칭의 구조를 이룬 것은 디지털이다. 천칭저울은 축이 있다. 

    저울은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 기울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전기와 자기는 플러스 아니면 마이너스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양자얽힘이 규명하고 있다. 아날로그는 우연이고 디지털은 필연이다. 양자얽힘은 필연이다. 우리는 파트너를 선택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환경은 아날로그 환경이다. 동물이라면 어떨까? 동물은 호르몬이 분비되므로 백 퍼센트다. 동물은 디지털 환경이다. 왜 인간만 특별히 아날로그일까? 우리는 밥을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다? 사흘만 굶기면 밥을 먹는다. 원래 인간은 하루 한 끼를 먹는 동물이다. 

    인간은 백 퍼센트 밥을 먹게 되어 있는데 밥을 먹지 않는 이유는 원래 한 끼를 먹다가 세 끼를 넘어 간식에 커피까지 잔뜩 먹어서 그런 것이다. 아날로그는 인간에 의한 왜곡이다. 혹은 여러 가지를 섞어 놓은 것이다. 아날로그는 관측자의 개입이며 우주는 궁극적으로 디지털이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바꾸는 것이다. 우연이라면 필연에 이를 때까지 사건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 량의 대칭은 운동으로 키워서 판단해야 한다. 량의 아날로그는 운동의 디지털이 된다. 운동의 대칭은 힘으로 키워서 판단해야 한다. 운동의 아날로그는 힘의 디지털이다. 

    힘의 아날로그는 입자의 디지털, 입자의 아날로그는 질의 디지털로 바꾸어야 한다. 단위를 높여가며 더 높은 단계에서 관측하는 것이다. 낮은 단계에서 보면 아날로그지만 높은 단계에서 보면 디지털이다. 낮은 단위에서 보면 두 원자의 간격이지만 높은 단위로 보면 계에 잡혀 있다.

    낮은 단위로 보면 너와 내가 있지만 높은 단위로 보면 이미 호르몬에 잡혀 있다. 윤석열이 어떻게 하는지는 본인 마음이지만 사실은 호르몬이 결정한다. 늑대에게 쫓기는 사슴은 방향을 바꿀 수 없고 일베에 쫓기는 윤석열은 직진만 한다. 젤렌스키도 푸틴도 직진만 할 수 있다.

    생명은 살거나 아니면 죽는다. 정치는 진보 아니면 보수다. 문명은 일등 아니면 꼴등이다. 인간 아니면 짐승, 문명 아니면 야만, 군자 아니면 소인, 축빠 아니면 야빠, 소통 아니면 불통. 중간이 없다. 찍먹 아니면 부먹인데 엉뚱하게 간장에 찍어먹겠다는 윤아무개는 아웃이다. 

    중간이 있다고 착각되는 것은 쓸데없이 중간을 평가해서 그런 것이다. 중요한 고비에서는 합격 아니면 불합격이다. 죽거나 아니면 까무러치거나다. 아날로그 환경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가짜이며 중요한 것은 모두 결혼 아니면 이별이다. 사실이지 애매할 때가 좋은 시절이다.

    친구인지 남친인지 남자사람친구인지 알쏭달쏭할 때가 좋은 시절이다. 동물의 세계에는 그런게 없다. 먹지 않으면 먹힌다. 의사결정은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바꾸는 것이다. 일치와 불일치로 바꾸는 것이다. 자연에서는 일치 아니면 불일치고 그 외에는 없다.

    우리는 입자를 본다. 너와 나를 보는 것이다. 아날로그다. 사실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하나다. 너와 내가 둘이 결정하는게 아니라 하나의 파도가 덮치는 것이다. 삶 아니면 죽음이며 중간은 없다. 반쯤 죽었다고? 뇌사상태? 식물인간? 냉정한 자연에는 그런거 없다. 

    여당과 야당 둘이 결정하면 아날로그다. 국민 1이 결정하면 디지털이다. 여당이 야당을 이겨먹는다며 국민을 패배시키는게 보통이다. 국민이 승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바꾸어서 이해해야 바르다. 양은 운동으로, 운동은 힘으로, 힘은 입자로, 입자는 질로 바꾸어 관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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