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저금리 완화적 통화정책 고수
"기준금리 올리지 않는 한 엔저 지속"
"32년 만에 150엔까지 치솟을 수도"
원·엔 환율 900원까지 내려갈 듯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달러화 함께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불려졌던 엔화의 가치가 추락하고 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꼬구라 졌고, 원·엔 환율도 1000원 아래를 지속하고 있다. 일본이 저금리의 완화적 통화정책을 변경하지 않는 한 엔저 현상은 유지될 것이란 시각이 대부분이다. 엔·달러 환율이 130엔을 넘는 것은 시간 문제고, 32년 만에 1990년 이후 최고인 150엔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3일 국제금융시장에 따르면 지난 20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장중 129.41엔까지 치솟으면서 2002년 4월 이후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전만 해도 107~109엔 수준 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0%가량 오른 것이다. 원·엔 재정환율도 같은 날 장중 100엔당 955.58원 수준까지 내려갔다. 2018년 1월 이후 4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 일본 엔화가 급격하게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미국 등 전세계 주요국들이 긴축 속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로 대규모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양국의 내외금리차가 벌어지고 있다.
일본은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일본은행이 설정한 변동범위 상한인 0.25%에 도달하자, 이를 사수하기 위해 무제한 국채 매입을 선언했다. 반면 미국은 40년만에 최고 수준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연내 7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미국과 일본의 전혀 다른 통화정책으로 인해 이들 국가의 10년물 금리는 22일 현재 2.7%포인트 가량 벌어졌다. 미 연방준비제도(Fde·연준)가 다음달 3~4일 FOMC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 하는 것이 확실시 되고 있어 양국의 금리는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찬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엔화 약세의 원인은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차별화 우려 때문"이라며 "미 연준은 고강도 긴축을 예고한 반면 고물가에 시달리는 미국과 달리 디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한 일본은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 정상화 필요성이 낮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경기 부양을 위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엔화 가치 하락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쿠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에 전반적으로 플러스로 작용한다"며 현재의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전세계 각국이 고물가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과 달리 일본은 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더 큰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일본의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대비 0.9% 상승하는데 그치는 등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4월 통신요금 인하 기저효과 소멸 등으로 물가가 점진적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통화정책 정상화를 논하기엔 시기상조라는 평가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저상장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엔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시중에 돈을 풀어 엔화 가치가 낮아지면 수출 기업이 성장하고, 근로자들의 임금도 함께 올릴 수 있다는 '좋은엔저' 논리였다. 하지만 최근엔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무역적자로 이어지는 등 '나쁜 엔저'로 작용해 일본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급격한 엔화 약세는 소비자들의 실질 구매력 저하, 기업의 수익 감소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입가격 상승을 소비자가격에 전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업 실적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일본의 경제여건 등을 감안할 때 단기간 내 일본은행이 정책을 변경할 가능성은 낮지만,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면서 하반기에는 변경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한은은 "4월 이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원자재가격 상승, 휴대전화 요금 인하 영향 소멸 등으로 일본은행의 물가목표인 2%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으나, 물가 상승세가 안정적으로 지속되지 않는 한 정책 변경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높을 가능성, 국제금리 추가 상승, 쿠로다 총재 임기 만료(2023년 4월), 정책기조 변경시 시장충격 완화 필요성 등을 고려할 경우 올해 하반기 중 일본은행의 금융정책 변경 관련 논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 같은 엔화 약세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상반기 중 140엔까지 오르고, 원·엔 환율도 2018년 수준인 900원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봤다. 도쿄 외환시장에서는 엔화가 달러당 1990년 이후 최고치인 150엔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는 "올해 상반기 안에 엔·달러 환율이 130~140엔 중반 수준까지 갈 수 있다"며 "엔·원 환율은 800엔 중반까지 내려갈 것 같지는 않고 2018년 수준인 900엔 근처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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