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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냥하는 진중권들

◆의사결정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22. 4. 1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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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냥하는 진중권들

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4. 17

 

 

과학은 도구다. 지식은 도구다. 언어는 도구다. 구조론은 도구다. 세상을 도구로 보는 관점을 얻어야 한다. 도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권력은 도구에서 나온다. 그 권력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진보가 새로운 도구에 빠르게 적응한다. 그것이 진보의 희망이다. 


    도구는 조절된다는 점이 각별하다. 칼은 도구다. 안되면 칼을 바꾸면 된다. 칼이 들지 않으면 날을 세우면 된다. 칼솜씨를 연마하는 방법도 있다. 도구를 손에 쥐면 적절한 대응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권력이다. 도구는 주체와 대상을 연결하여 서로 연동시킨다. 


    여럿이 연동되어 함께 움직일 때 도구를 장악한 자가 대응방법을 결정한다. 그 권력은 정당하다. 도구의 연결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중립이다. 사람들은 중간에서 연결하는 도구를 보지 못하고 주체를 탓하거나 혹은 대상에 매몰된다. 좌파는 주체를 비난한다. 
 
    성찰, 진정성, 생태주의 타령은 과학의 언어가 아닌 주술의 언어다. 그게 주체를 탓하는 것이다. 차가 퍼졌는데 운전기사를 비난한다. 우파는 대상을 증오한다. 차별과 혐오다. 차가 고장났는데 길을 비난한다. 주체와 객체를 연결하는 도구를 개선해야 답이 찾아진다.

    길이 험하면 차를 SUV로 바꾸고, 운전실력이 딸리면 수동을 자동으로 바꿔야 한다. 대상을 탓할 이유가 없고 주체를 탓할 이유도 없다. 보수는 과도하게 남을 비난하고 진보는 과도하게 자책한다. 남탓할 이유가 없고 자책할 이유도 없다. 감상적 태도는 필요없다.

    보수의 남탓이든 진보의 내탓이든 사람을 격동시키려는 감성팔이다. 좌파의 성찰과 진정성이 도구를 손에 쥐지 못한 자의 허무한 감상주의라면, 우파의 노력타령, 정신력타령, 애국타령도 한물간 신파다. 과학은 도구인데 그들은 도구를 버리고 주술로 퇴행해 있다. 

    인간이 도구를 쥐어짜야 하는데 거꾸로 인간을 쥐어짜려고 한다. 거기에 인간을 도구로 삼으려는 기득권의 의도가 숨어 있다. 인간이 도구를 장악하지 못할 때 거꾸로 인간이 도구가 되어 희생된다. 노무현, 박원순, 노회찬이 죽은 것은 사람탓 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조국은 죽지 않고 버텼지만 말이다. 그들은 연장을 바꾸지 않고,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 오로지 사람을 해치려고 할 뿐이다. 자기편을 쏘는 좌파와 남을 쏘는 우파의 사람을 쥐어짜고 사람을 물어뜯는 나쁜 사상을 버려야 한다. 그들은 인간을 궁지로 몰아붙인다. 

    우파는 아무리 노력해도 더 노력할 수 있다며 압박하고, 좌파는 아무리 성찰해도 더 성찰할 수 있다며 억압한다. 노력이든 성찰이든 인간을 괴롭힐 목적으로 짜낸 아이디어다. 인간사냥에 중독되어 식인자의 언어를 사용하는 무리를 없애야 사람 사는 세상이 열린다. 

    도구에 탈이 나면 수리하면 된다. 스위치를 켜서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사건은 거기서 끝이 난다. 그러나 인간을 쥐어짜는 데는 한계가 없다. 끝이 없다. 결국 사람이 죽는다. 도구를 사용하면 도구가 닳는데 인간을 쥐어짜면 인간이 죽는다.

    석가는 6년 동안 수행했고, 달마는 9년 동안 면벽했다. 6년 받고 9년 받고 레이즈를 친다. 장좌불와 10년 성철스님. 그냥 숫자일 뿐인데. 거짓말과 진실은 1초 안에 구분이 된다. 인간을 외통으로 몰아 눈물을 짜려는 자가 거짓말장이다. 감성팔이로 사람을 제압한다.

    사랑은 도구다. 도구는 기술이다. 사랑은 기술이다. 내가 얼마나 지독하게 사랑하는지 증명한다면서 자해할 이유는 없다. 연인이 창 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든, 정치인이 삼보일배 하든, 종교인이 단식하든 삽질이다. 도구는 기술인데 기술이 없으므로 자해를 한다. 

    기술이 있다면 서로 간에 합이 맞아야 한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앙상블을 이루고 하모니를 이루어야 한다. 기술이 없으므로 인간을 도구로 삼는다. 남들 보라고 공무원은 전시행정, 연인은 세레나데, 정치인은 삼보일배, 활동가는 단식투쟁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요리되는 재료를 바꾸고, 주체를 바꾸고, 도구를 바꾸어 문제를 해결한다. 이때 권력은 인간에게 있다. 그 권력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메뉴를 바꿀지, 재료를 바꿀지, 고객을 바꿀지 인간에게 결정권이 있다. 인간이 우선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열린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좌파는 대상의 본질을 공격한다. 본질은 돈이다. 돈이 뭐지? 모른다. 그들은 돈이 도구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들의 결론은 돈은 더럽다는 것이다. 우파의 차별논리, 혐오논리와 정확히 같다. 그들이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결국은 느낌이다. 

    그들은 자본이 하나의 도구이며 인류는 그 도구의 사용에 서투르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본주의라는 도구를 개선하지 않는다. 단지 화를 낼 뿐이다. 감정에 호소할 뿐이다. 도구는 연결이다. 연결이 끊어진 것이 문제다. 인터넷이 끊어졌는데 모니터를 부수려고 한다. 

   간을 격동시키려 하고 인간을 고문한다. 결국 사람이 죽는다. 노무현 죽이고, 노회찬 죽이고, 박원순 죽이고 그들은 살인의 쾌감에 중독되었다. 진중권서민전여옥이 조국을 마저 자살시키지 못해서 광분하는 이유다. 검을 빼앗아 그들의 살인을 중단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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