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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 방산 계열사인 한화디펜스가 오스트레일리아(호주) 현지에 자주포와 장갑차를 제조할 수 있는 3만2000㎡ 규모의 생산시설 터를 확정했다고 발표한 것은 지난 23일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군사적 긴장 상태가 일촉즉발로 치닫던 때인데다 국내 방산기업이 나라 밖에 생산 거점을 확보한 첫 사례여서 눈길을 끌었다. 이는 한화디펜스가 지난해 12월 호주에 ‘AS9 헌츠맨’(‘K9 자주포’ 호주 현지명)과 탄약운반장갑차를 현지 생산하는 방식으로 공급하는 1조원 규모의 계약을 맺은 데 따른 후속 움직임이었다.
한국 무기수출의 대표 아이템으로 떠올라 있는 K9 자주포는 이달 1일 한화디펜스와 이집트 간 수출 계약 건으로도 화제의 중심에 선 바 있다. 계약 금액 2조원 규모로 K9 수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 앞서 호주와 맺은 계약 건의 두배 수준인데다 아시아·유럽·오세아니아 지역에 이어 아프리카 국가에 처음 국산 자주포를 수출한 사례였다.
무기수출 역사에 족적을 남기고 있는 K9 자주포 수출이 처음 이뤄진 건 2001년이었다. 당시 수출 상대국 터키와 맺은 계약은 ‘국산 무기 체계’로는 첫 수출이었다. K9 자주포 수출 계약은 그 뒤 폴란드(2014년), 핀란드·인도·노르웨이(2017년), 에스토니아(2018년), 호주, 이집트로 이어졌다.
북유럽 국가(핀란드, 노르웨이)에도 이미 5년 전부터 수출되고 있었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국방·방산 분야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업체 ‘같.다.’(GOTDA)의 엄효식 대표는 이에 대해 “러시아의 위협 때문에 우리 무기를 사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분쟁이 격화하고 있는 현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엄 대표는 예비역 대령 출신으로 방산업체에서 이력을 쌓았다.
K9 자주포를 비롯한 무기수출 행렬이 이어지면서 지난해에 우리나라의 방산 수출액이 수입액을 처음으로 넘어섰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까지 했다. 익명을 전제로 한 정부 당국자의 전언 형식이었는데, 정확하지는 않아 보인다. 전반적인 수출입처럼 엄밀한 수치로 분류하기 어려운 성격을 띤 영역인데다 장기간에 걸친 계약 건이 이미 이뤄진 실적처럼 여겨져 부풀려졌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산업연구원(KIET) 기계·방위산업실의 김미정 전문연구원은 “계약은 올해 이뤄졌더라도 인도되는 시점이 다르고, 업체에서 생산·개발해 (수출로) 나가는 시점은 또 달라서 수지 흑자(수출 > 수입)로 단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수출이 수입을 넘어 흑자를 냈다는 건 너무 많이 나간 얘기일 수 있다”고 했다. “(주요 수입처인) 미국에서 들여오는 무기는 하이엔드(첨단) 제품 위주인 데 비해 K9 자주포를 비롯한 수출품은 상대적으로 중저가”라는 점을 기본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김 연구원은 ‘2020 산업연구원 방산수출 유망국가’ 보고서를 공동으로 펴낸 바 있는, 이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무기 무역수지에서 흑자를 이뤘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도 무기수출이 근래 들어 대폭 늘고, 방산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은 국제 전문기관의 분석 자료로도 확인된다. 스웨덴의 정책연구 단체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지난해 내놓은 통계를 보면, 2016~2020년 한국의 방산수출은 37억9800만달러(약 4조5500억원)로 세계 방산물자 거래(1401억6400만달러)의 2.7%였다. 2011~2015년 12억2400만달러(0.9%)에 견줘 수출액과 비중 모두 세 배 수준으로 불었다. 수입은 2011~2015년 38억1600만달러(2.7%)에서 2016~2020년 60억700만달러(4.3%)로 늘었다. 수입의 규모가 크지만, 증가세는 수출 쪽이 빠르다.
무기수출 호조 분위기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는 국내 경제 현실과, ‘무기로 돈을 번다’는 데서 비롯되는 불편한 마음이 부딪치고 뒤얽힌다. 그 간극에서 냉혹한 현실 쪽으로 무게추를 돌리는 한 요인은 방산의 산업 연관 효과가 크다는 점이다. K9 자주포 생산에만 얽힌 1·2차 협력업체가 1000개를 웃돈다는 사실은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생산 거점인 창원 지역의 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준이다.
국내 방산업체가 글로벌 기업에 견줘선 한참 처지는 ‘유치산업’ 단계라는 사정도 있다. 세계 방산시장 부동의 1위 업체 록히드마틴의 방산 매출은 연간 80조원 규모(2020년 기준 653억9800만달러)인 데 견줘 국내 방산 대표 격인 한화그룹 4개 계열사의 방산 매출은 다 합쳐서 5조원 수준이다. 글로벌 무대에선 경쟁 상대조차 되지 않는 처지다. 이는 방산의 고용 효과와 맞물려 정책적 지원의 정당성으로 거론되곤 한다.
한국의 무기수출은 2021년 이후에도 증가세를 이어왔고, 이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란 쪽의 전망이 우세하다. 크게 두가지 근거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내수 포화라는 국내 여건이다. 지정학적 불안정성 고조라는 외적 정세가 다른 하나다.
외적 정세는 한창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잘 드러난다. 러시아와 미국, 유럽이 얽힌 신냉전 기류가 무기 산업엔 호재로 여겨진다. 산업연구원 심순형 부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부터 동유럽 국가들은 무기 체계 현대화 노력을 해왔고 중동 지역에서도 여전히 많은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국의 국방 예산이 줄었음에도 “지정학적 분위기로 봐선 수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심 위원은 전망했다.
내수 포화라는 국내 여건은 K9 자주포에서 엿볼 수 있다. 국내 유일의 무기 수요자인 대한민국군에 2019년까지 1100대가량 들어가 납품 완료 상태다. 국내 수요만 고려하면 생산 라인을 더 돌릴 필요가 없는 실정이다. 엄효식 대표는 “군이 각종 첨단 무기 체계를 외국에서 대거 들여오고 국내에서도 어지간히 많이 조달한 상황이라 방산업체로선 수출에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외 여건 모두 무기수출을 밀어올릴 쪽으로 맞춰져 있다는 전망 속에서 수출의 양상은 예전과 달라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미정 연구원은 “이집트나 중동 같은 중·후발국 위주로 수출하던 데서 미국과 협력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지역에 진입하거나 나토 국가들과 직접 협력하는 방식의 수출로 변해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는 동맹을 중시한다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노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동맹국 간 무기 체계를 공급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수출 물량 확대와 함께 수출 양상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친 뒤 산업 현장 취재를 맡고 있다. <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 <휴버먼의 자본론>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 <관료제 유토피아> 등을 번역해 펴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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