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월(丑月)의 침잠(沈潛)
글을 올리지 않은 지 열흘이 지났다. 일주일 전에 그림 한 장 그려서 올렸을 뿐이다.
왜 그런가? 하면 생각에 골몰해있는 탓이다. 언제부터인가 1월, 그러니까 축월(丑月)이 되면 내가 내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안에 많은 것이 있어서 그렇다. 조성모의 노래 “가시나무”처럼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다는 것을 축월이 되면 알게 된다.
켜켜이 쌓인 것들이 얼키설키하니
노랫말처럼 아픈 내가 많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간 66년 이상의 세월을 보내면서 겪은 삶의 저 많은 일들과 읽은 책들, 그리고 운명에 대한 연구, 언어에 대한 연구가 자꾸 깊어지면서 새롭게 보이는 많은 것들, 뿐만 아니라 그런 모든 것들이 저들 맘대로 얼키설키 만들어지는 또 다른 것들이 축월이 되면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는 건지 아니면 내가 그 속을 들여다봐서 그런 건지 잘 알 순 없지만 아무튼 너무나도 많은 것들과 불쑥 만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 사연들이 눈앞을 스쳐간다. 과거 20년 이상 상담을 해오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눈빛이고 목소리이고 몸짓들이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스토리가 기억나기도 하고 때론 목소리가 기억나기도 하면서 들쑥날쑥 기억이 난다. 때론 겹치기도 한다.
그런 모든 것들을 축월이 되면 다시 만나게 된다.
어제의 일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분명 밤 10시 10분, 모니터 전원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얼마 후 “아빠, 뭐 해?” 하는 아들의 목소리에 “음, 잠시 생각을 하느라고,” 하면서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27분이었다. 깜짝 놀랐다.
그 사이에 물도 마시지 않았고 화장실에 다녀오지도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냥 깜깜한 모니터 앞에 3시간하고도 17분 동안을 앉아있었던 것이다. 아니? 내가 미쳤나, 그 사이에 졸았던 것도 아니고 그저 잠시 몇 가지 생각에 빠져 있었다고 여겼는데 그렇게나 시간이 흘렀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에 했던 생각들을 또 다시 점검해보았다. 따져보니 정확히 모두 찾아낼 순 없었지만 그 사이에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
가령 이런 식이었다. 저출산의 근본 원인? 여성의 사회진출, 그러다가 아니 그건 결과이고 출산을 장려하는 종교의 쇠퇴? 그러다가 종교가 쇠퇴한 원인을 다시 따져보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우리나라는 유교적 성향이 강하면서도 저출산이 된 원인을 점검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유교 역시 기본적으론 다산을 장려하는 종교였는데 어쩌다가 그처럼 그 대목은 우리가 절묘하게 쏙 빼먹었을까? 하는 추론, 그러다가 다시 예전에 상담을 왔던 어떤 분과 나누었던 저출산에 관한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
생각을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 사이에 이슬람과 가톨릭의 영향권은 여전히 출산이 좋은 편이란 생각, 그렇다면 종교는 결국 무엇인가? 저출산이 종교의 쇠퇴와 관련이 크다면 여전히 종교적인 일본 사회는 왜 저출산이지? 하는 반문 등등 생각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면서 그 사이에 무려 3 시간 이상이 흘러갔던 모양이다.
사실 처음엔 뇌 기능에 이상이 생겼나 의심할 정도였다. 그래서 최대한의 기억력과 논리를 동원해서 3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내가 떠올렸던 생각의 고리들을 다시 거꾸로 물고 들어갔다. 역시 뇌기능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나머지 몸의 기능들은 왜 가만히 있었지? 하는 또 다른 궁금증도 생겼다. 소변이 마려울 법도 했을 터이고 배가 출출할 수도 있었을 법인데 아니 이놈들은 일 안 해? 그냥 사보타지 했나? 싶었다.
내 안의 동굴 탐사
작년 1월에도 그랬었고 재작년 1월에도 그랬다. 그러니 이건 축월(丑月)의 기운 탓이다, 이런 식으로 정리하기로 한다.
축월은 만물이 죽었거나 죽어지내는 가장 깊은 겨울이다.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속으로 깊숙하게 기어들고 파고들어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의식 안의 동굴들을 탐사하는 기간이다. 정말이다, 이상하고 괴상한 동굴들이 참으로 많다. 내 안에 이상한 것들이 많다.
이 깊은 겨울 동안에 내가 들여다보고 있는 이 동굴탐사는 어쩌면 명료한 의식 상태에서 꾸고 있는 꿈인지도 모른다. 논리는 분명히 있지만 진행 방향을 전혀 종잡을 수 없으니 말이다.
여섯 살 시절의 나를 만나기도 하고 때론 그 아이와 내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그러다가 동유럽의 어느 신화 속으로 들어갔다가 J.R.R. 톨킨을 출구로 해서 빠져나오기도 하니 마치 무의식의 흐름 같기도 한 논리적인 생각의 흐름이다.
엊저녁에도 그랬다. 오늘은 글 한 편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 모니터 앞에 앉았는데 갑자기 비틀즈의 옛 노래가 떠올랐다. Hard Days' Night 이란 노래, 그 가사가 생각났다. 그래서 유튜브에 들어가 노래를 들었고 그러다 보니 두 시간 동안 계속 이런저런 옛 노래들을 들었다. 어제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저께 신중현 선생의 노래들을 들었던 것이 촉발의 원인이었던 모양이다.
비틀즈의 노래와 신중현의 음악 사이엔 많은 중간 지대들이 있지만 하루 사이에 그 고리들을 나도 모르게 찾아서 물고 왔던 모양이다.
다시 입추를 맞이하고 있는 신중현 선생
신중현 선생, 세는 나이로 올 해 여든하고도 다섯이 된다. 1938년 11월 4일로 되어있는데 그 시절이면 음력 생일일 것이다. 따라서 작년 신축(辛丑)년이 또 한 번의 입추(立秋)가 된다. 다시 기(氣)가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의식의 흐름’을 따라 써가고 있다. 약간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오래 전에 그의 소설 ‘율리시스’를 접한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서 그래도 골격을 세우면서 글을 써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신중현 선생은 1961년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추였고 그 무렵에 우리 록 음악의 근간을 세워 놓으셨다. (갑자기 김정미란 가수가 생각난다. 신중현 선생의 사이키델릭 록을 가장 잘 표현했던 가수가 아니었나 싶어서 그런 모양이다. 김정미란 여성 가수, 70년 이후 태어난 분들은 전혀 모르는 가수일 것이니 얘기를 아예 하지 말아야지 싶다.)
2006년에 공개 활동을 접고 은퇴하셨던 분이 3년 전인가 다시 텔레비전에 나오시더니 얼마 전엔 ‘헌정 앨범’을 내기도 하셨다.
신중현 선생에 대해선 얘기가 나오면 군사 독재 시절에 탄압을 받았다는 얘기가 거의 반드시 곁들여진다. 물론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상투적이다. 물론 이 시대가 민주화 운동권이 세력을 잡은 오늘이기에 그 시절의 모든 문제를 군사 독재 탓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강하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거부감이 든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나 호호당이 오래 전 김정미의 노래 앨범을 사서 듣고 있는 것을 선친께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너, 이런 이상한 음악 듣고 있냐면서 약간 질책하셨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사이키델릭, 문자 그대로 몽환적인 록 음악이니 건전해보일 리가 없었던 시절이란 얘기이다.
신중현 선생의 음악은 당시로선 대단히 아방가르드였고 전위적이었던 것이고 시대는 군부가 독재하고 새마을 운동하던 시절이었다. 그 콘트라스트가 엄청나게 강했다는 점을 지금 나 호호당은 하고 있다.
신중현 선생이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하셨던 60년대로부터 다시 60년이 흘렀다. 그렇기에 신중현 선생의 새로운 음악을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계절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운명의 계절이 다시 한 여름이 된 신중현 선생이다. 1961년 기껏해야 ‘딴따라’였던 선생이 6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거장 아티스트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사람의 인식이 변했을 뿐이고 신중현 선생은 예나 지금이나 음악 하는 사람일 뿐이다.
새롭게 여름을 맞이하고 있는 가수 이선희
내가 주목하고 있는 또 한 분의 아티스트가 있으니 가수 이선희 씨이다. 최근 싱어게인이란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나와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위키에 보면 음력으로 1964년 11월 11일이라 분명히 밝혀져 있다.
갑진(甲辰)년 병자(丙子)월 정유(丁酉)일이다. 생시를 모르지만 그간의 이력이 잘 알려져 있으니 운세 파악이 간단하다.
1977 정사(丁巳)년이 입추의 운이었고 이에 1984년 추분(秋分)의 운에 단 한 곡의 노래 “J 에게”를 불러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2007 정해(丁亥)년이 입춘 바닥이었는데 그 무렵을 전후해서 다소 활동이 뜸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가수로서 이선희는 그야말로 걸출하지만 한 여성으로서 삶의 애환은 충분히 겪었을 것이라 본다. 그러면서 그녀의 노래는 더욱 발전하고 있으니 놀랍다. 그런 그녀가 올 해 2022년으로서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입하(立夏)의 운이다. 그러니 정말로 그야말로 기대가 된다. 나 호호당은 이미자 선생에 이어 이선희라고 여긴다.
한 해로 치면 5월 5일이 입하, 서서히 여름이 시작되는 때이다. 푸른 5월이 이선희의 앞날에 시작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생동할 것이고 약동할 것이니 기대가 크다.
계절은 돌아온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돌아오는 계절”이라고 붙여본다.
깨어나니 아침 11시, 간밤에 많은 동굴들을 탐사했다. 그리곤 꿈을 꿨다. 깨어나 생각해보면 꿈은 도무지 두서가 없고 논리가 서질 않는다. 꿈속에선 그게 말이 되는 얘기였는데 말이다. 눈을 부비면서 창밖을 내다본다. 모든 게 죽어있거나 죽어있는 듯하다. 저들 역시 길고 긴 꿈속 길을 가고 있으려나.
출처: https://hohodang.tistory.com/ [희희락락호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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