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1. 10. 12
선택지는 둘이다. O 아니면 X다. 공자가 O라면 노자는 X다. YES 아니면 NO다. 공자가 YES라면 노자는 NO다. 갈림길에서 공자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때로는 노자의 길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배우는게 아니고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다. 노자의 길은 상대편의 행동을 봐가면서 눈치껏 하면 된다. 배워야 하는 것은 공자의 길이다. 노자의 길은 개인전이므로 그냥 하면 되고 공자의 길은 단체전이므로 미리 손을 맞춰놔야 하는 것이다.
공자의 길은 장기전, 전면전, 총력전이다. 노자의 길은 단기전, 국지전, 제한전이다. 노자의 길은 상대의 패를 보고 맞대응 하면 되므로 특별히 배울 필요가 없다. 적이 속임수를 쓰면 이쪽도 속임수로 대응하면 된다. 공자의 길은 동료간에 합이 맞아야 한다. 의리를 지켜야 한다. 사전에 프로토콜을 약속해야 한다. 임기응변이 불가능하고 교범대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배워야 한다. 정도와 사도가 있다. 구조론은 공자의 정도만 가르치고 노자의 사도는 가르치지 않는다.
에너지는 확산과 수렴이 있다. 노자가 확산이라면 공자는 수렴이다. 확산은 그냥 놔두면 저절로 확산된다. 방귀를 뀌면 냄새는 대기 중에 확산된다. 교실 문을 열어놓으면 다들 알아서 운동장으로 빠져나간다. 수렴은 배워야 한다. 특별히 종을 울려서 학생들을 불러모아야 한다. 아무 때나 밥 달라고 떼를 쓰면 안 되고 요리가 준비된 점심시간에 맞추어 식당으로 모여야 한다. 그러므로 훈련이 필요하다.
확산은 밸런스를 깨고 수렴은 밸런스를 만든다. 밸런스는 놔두면 환경변화에 의해 저절로 깨진다. 깨는건 배우지 않아도 된다. 밸런스를 만들려면 특별히 연습해야 한다. 미리 합을 맞춰봐야 한다.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의리를 배워서 합을 맞출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에너지가 방향을 만들면서 사건이 시작되었다. 빅뱅 이후 공간이 팽창하여 우주온도가 3천도까지 떨어졌을 때 수학적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에너지의 미는 힘이 물질의 당기는 힘으로 바뀌었다. 물질이 내부에 밸런스를 만들지만 잠시 유지될 뿐이다. 많은 물질은 탄생과 동시에 소멸한다. 하나의 밸런스에서 또다른 밸런스로 갈아타면서 사건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우리가 보는 자연의 존재가 그것이다. 밸런스 안의 또다른 밸런스 그리고 그 안의 또다른 밸런스로 5회를 진행하여 닫힌계 내부의 모순을 처리한다. 최종적으로는 빛과 열로 변하여 계를 빠져나간다. 비로소 물질이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의 사건에는 다섯 개의 대칭이 숨어 있다. 대칭에서 다른 대칭으로 갈아타는 지점이 조직의 급소가 된다. 급소를 공략하여 이길 수 있다. 싸움이 일어나면 상호작용의 랠리가 이어지는 동적환경에서 밸런스의 복원력에 의해 50 대 50까지는 자동으로 흘러간다. 마지막 한 걸음이 중요하다. 최후에 51 대 49로 저울을 기울여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기세다. 기세의 연출은 축의 장악으로 가능하다. 나비 한 마리가 천칭을 움직이면 양의 되먹임에 의해 판도는 비가역적으로 기울고 그걸로 승부가 확정된다.
문제는 천칭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다. 사건에 천칭이 숨어 있다. 미묘하게 밸런스가 작동한다. 스포츠 경기가 의외로 팽팽하게 흘러가는 이유다. 전투가 산발적으로 벌어지면 밸런스가 작동하지 않는다. 무의미한 혼란이 계속된다. 대칭의 축은 중앙에 있다. 작은 싸움을 통합하여 중앙에 큰 싸움판을 일으켜야 한다. 국지전을 통합하여 전면전을 유도해야 한다. 양쪽의 군대가 모두 모여 평원에서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치루어야 한다. 우연에 의한 승부가 아니라 실력에 의한 승부가 되어야 패자가 승복하고 상황이 종료된다. 가만 놔두어도 일이 점차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사건의 방향성이다.
강물의 지류가 통합되어 본류를 이루고 마침내 바다에 이르듯이 사건은 기승전결로 진행하며 점차 한 방향으로 통합된다. 눈앞의 작은 승리를 위해 역방향으로 가면 안 되고 에너지의 커다란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결 따라가는 것이다. 역주행은 동선을 엉키게 하여 아군끼리 충돌하는 자충수가 된다. 바둑의 포석과 같다. 적의 바둑알 몇 개 따먹고 싶은 유혹을 참고 우리편을 연결하는게 먼저다. 일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전략은 작은 싸움을 져주고 대신 판을 키워서 최후의 일전을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벌이는 것이다. 산발적 전투에 매몰되지 말고 모두 연결하여 중앙에 대마를 만들어야 한다. 전략은 당장 확실하지만 작은 것과, 미래의 불확실하지만 큰 것 사이에 바꿔치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가까이 있는 은덩이보다 멀리 있는 금덩이를 선택해야 한다. 대부분 미래의 약속보다 눈앞의 현찰을 선택한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동료들에게 자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미래를 연결하려면 수순을 기억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환경변화 때문이다. 내일 준다는 10만 원보다 당장 주는 5만 원을 원한다.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헷갈리게 하는 것은 외부의 영향이다. 외부에서 방해하므로 이기지 못한다. 지렛대가 작용하므로 외부의 힘은 작은 영향이 크게 반영된다. 옷깃이 나뭇가지에 걸려도 움직이지 못한다. 풀어진 신발끈 하나가 사람을 쓰러뜨릴 수도 있다. 외부의 방해를 극복하는 내부의 힘은 기세다. 그것이 찾아야 할 숨은 플러스알파다. 외부의 영향은 운으로 나타난다. 기세는 운을 이긴다. 그것은 연결의 힘이다. 부분이 연결되어 하나의 방향을 바라볼 때 기세가 얻어진다. 기세를 타면 장기전을 할 수 있다.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바다에 도달한다는 확신을 얻는다. 기세를 잃으므로 불안해서 현찰을 달라고 떼를 쓴다. 기세를 잃으면 외부의 작은 간섭에 크게 휘둘리므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범선은 쌍돛대를 세우고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불어도 키를 움직여 전진할 수 있다. 나의 힘은 순이용하고 적의 힘은 역이용한다. 외부의 어떤 힘이든 방향을 틀어서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 축을 장악해야 한다. 그전에 축을 도출해야 한다. 판을 단순화시켜야 중앙에 축이 만들어진다. 복잡한 것은 단계를 거치며 사건이 진행될수록 단순화된다. 기슭에서 시작된 전투의 불길이 정상까지 옮겨붙으면 거기서 모두 만난다. 건곤일척의 대회전이 벌어진다. 끊어진 쪽이 지고 연결된 쪽이 이긴다. 기슭은 복잡하지만 정상은 단순하다. 기슭의 복잡함을 믿고 돌발변수의 행운에 기대었다가 문득 정상에 이르니 의외로 판이 단순화되어 각자의 본실력이 드러나므로 지는 것이다.
히틀러의 오판과 같다. 영국군, 미군, 자유프랑스군은 체면싸움 하느라 의사결정구조가 복잡하다. 브래들리와 몽고메리와 패튼과 아이젠하워가 으르렁대며 진을 뺄 때 독일군이 기습하여 아르덴 숲을 장악한다. 아뿔싸! 계산이 빗나갔다. 의외로 아이젠하워가 순식간에 결정하고, 패튼이 순순히 따르고, 몽고메리는 침묵을 지켰다. 보통은 상황파악에만 일주일이 걸리는데 이번에는 사흘 만에 반격한다. 소련군도 마찬가지. 스탈린이 망쳐놓았던 전쟁 초기의 의사결정 난맥상은 사라지고 주코프가 침착하게 막아낸다. 육군과 공군 사이에 손발이 척척 맞는다. 보병과 포병과 전차와 공병이 대규모 합동작전을 성공시킨다. 원래 그렇게 된다. 싸우다 보면 차츰 손발이 맞아지고 판이 단순화된다. 그래서 전략이 있다. 기세가 상황을 그렇게 만든다.
전략은 부분을 연결하여 국면을 단순화시키는 방법으로 기세를 탄 쪽이 이기게 한다. 순방향을 선택해야 기세를 탄다. 실리와 세력 사이에 바꿔치기를 계속하여 불요불급한 현찰을 내주고 필요한 연결을 얻으면 국면은 단순화된다. 기슭에서 이기려고 진을 빼지 말고 최후에 정상에서 이겨야 한다. 최후의 싸움판은 자신이 정해야 한다. 질 싸움을 져주면서 정상까지 적을 달고 와야 한다. 전술은 반대로 혼란을 조성한다. 본질과 상관없는 외부요소를 투입하여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고 적을 헷갈리게 한다. 이 방법은 사건의 진행을 지연시킬 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중국사에서 5대 10국의 혼란, 고려 무신정치의 혼란, 일본 전국시대의 혼란, 로마 군인황제 시대의 혼란과 같다. 전술은 제한된 국면에서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극대화 하는 기술일 뿐 궁극적으로 이기는 방법은 아니다.
우주 안에 방향은 둘이다. 에너지의 확산과 수렴이다. 전략은 둘 사이에서 바꿔치기다. 긍정 아니면 부정, 능동 아니면 수동, 갑이 아니면 을, 내가 하지 않으면 당한다. 이기지 않으면 진다. 낙관 아니면 비관. 의미가 아니면 허무, 선제대응 아니면 사후수습, 전략 아니면 전술. 공격 아니면 수비, 합리주의 아니면 실용주의, 강자의 길이냐 약자의 처세술이냐. 공자의 길 아니면 노자의 길.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양의 피드백이면 순방향이고 음의 피드백이면 역방향이다. 양의 피드백은 톱니가 맞물려 부분이 연결되므로 중앙에 커다란 하나의 천칭저울을 건설하니 기세가 있고 음의 피드백은 간격이 벌어지고 부분이 단절되어 주변부로 흩어지니 기세가 없다.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받을 것인가? 언제라도 현찰을 내주고 연결을 얻어야 한다.
구조론은 판을 단순화 시키고 저울을 팽팽하게 만들어 기세를 유지하는 긍정주의, 낙관주의, 능동적 태도, 자유의지, 강자의 철학, 전략적 사고, 선제대응,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공자의 길을 안내한다. 언제라도 내가 먼저 움직여서 선수를 친다. 간을 보다가 몰래 뒤통수 치는 짓은 삼가야 한다. 세부적인 판단은 필요없고 큰 방향성이 중요하며 이후 판돈만 올리면 양의 피드백에 의해 저절로 해결된다.
세상은 사건이고, 사건은 단계, 단계는 대칭, 대칭은 급소이니 공략하여 이길 수 있다.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인생은 져주고 나중에 보상받는 공자의 대의명분과 당장 현찰을 손에 쥐는 노자의 괴력난신 중에서 바꿔치기의 반복이다. 앞선택과 뒷선택이 연동되므로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이후로 계속 나빠진다. 순방향은 이기고 역방향은 진다. 바꿔치기를 계속하면 지류가 주류에 통합된다. 변방의 작은 물줄기가 중앙을 관통하는 큰 강물을 이루더니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인간의 일은 거기까지. 바다에 이르면 진리가 결정하고, 역사가 결정하고, 문명이 결정하고, 신이 결정한다. 법칙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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