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1. 10. 07
세상은 저절로 만들어졌다. 생물은 저절로 진화했다. 자연의 모든 변화는 저절로 일어난다. 저절로라는 놈이 있다. 하느님 뺨 치게 센 놈이다. 그런 저절로도 약점은 있다. 신은 전지전능하다지만 저절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플러스는 할 수 없다. 마이너스만 할 수 있다. 우리는 저절로의 이러한 성질을 파악하여 자연의 변화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
인간사회의 일은 저절로가 아니다. 목적이 있고 의도가 있다. 그런데 일이 커지면 인간의 통제력을 넘어서 저절로가 된다. 부모가 자식의 뒷배를 봐줄 수는 있지만 군대를 대신 가주지는 못한다. 결혼을 대신 해주지는 못한다. 스펙을 밀어줄 수는 있지만 시험은 본인이 치러야 한다. 간혹 부모가 면접장에 와서 우리 아들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있지만 그게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저절로가 앞을 막아선다.
세상은 결국 저절로다. 인간의 작위는 한계가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많은 부분이 저절로에 지배된다. 생각이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되는 것을 더 잘 되게 할 뿐 안 되는 것을 되게할 수는 없다. 인간의 의도와 자연의 저절로를 일치시키면 흥하고 자연의 저절로를 거슬러서 역주행 하면 망한다. 저절로에 맡겨두고 손을 놓아버려도 좋지 않다. 경쟁자는 저절로에 인위를 개입시켜 더 잘 되게 하는 방법으로 당신을 엿먹일 수 있다. 저절로 믿다가 망한게 신자유주의다. 중국은 국가에서 팔 걷어붙이고 지원하는데 미국은 저절로만 믿다가 반도체를 뺏겼다.
저절로는 강력하다. 우리는 저절로를 상대해야 한다. 저절로는 닫힌계 안에서 작동한다. 외부를 닫아걸고 내부의 논리로 움직인다. 내부를 쥐어짜서 할 수 있는게 많지 않다. 저절로는 뻔한 길로 간다. 그것은 마이너스다. 닫힌계 내부에는 대칭이 있고 대칭은 축을 도출하며 계 내부에 모순이 발생하면 축을 이동시킨다. 축의 이동에 따른 관성력이 또다른 모순을 야기하므로 모순이 외부로 배출될 때까지 의사결정은 5회에 걸쳐 일어나며 그때마다 변화에 참여하는 영역은 의사결정비용을 뺀 만큼 줄어든다. 최종적으로는 열로 변하여 외부로 배출하는 방법으로 모순을 해소한다. 열역학이 이 점을 포착한게 엔트로피다.
모순이 사건의 원인이며 모순의 해소로 사건은 종결된다. 인간은 열린계에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작위하는데 익숙해서 저절로를 놓친다. 변화의 원인을 사물 내부의 고유한 속성에서 찾으려 한다. 소금은 짜고 설탕은 달다. 원인은 소금에 있고 설탕에 있다. 혀로 맛을 보고 원인을 안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금은 무겁고 알루미늄은 가볍다. 쇠는 녹쓸고, 불은 타고, 나무는 자란다. 왜 그런지는 모르고 그냥 거기가 탐구의 한계다.
사물 내부의 고유한 속성에서 원인을 찾으면 반드시 어떤 한계를 만나게 되며 원래 그렇다로 정리된다. 틀렸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 변화의 원인은 사물 내부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사건 내부의 저절로에 있다. 고유한 속성이라는 것은 얼버무린 말이다. 그런 거 없다. 원자단위를 넘어 소립자 단위까지 과학은 낱낱이 해명하고 있다.
모든 사건의 원인은 계 내부의 구조적 모순이다. 밸런스가 틀어져서 새로운 밸런스로 이동하는 것이 원인이다. 원인이 외부에 있다면 변인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더 큰 단위로 닫힌계를 지정하면 내부로 바뀌므로 변인을 통제할 수 있다. 개인에 원인이 없으면 집단에 있고 집단에 없으면 더 큰 집단에 있다. 더 큰 단위에서 더 크게 판을 벌이고 장기전을 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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