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5 05:03
◆…사진=클립아트코리아.
◆ 공급이 부족해서 가격이 오른다?… "문제는 그게 아니야"
부동산 투기가 과열될 때마다 주택 공급량 부족이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주택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보유세 강화나 대출 규제를 풀고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집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주택 공급량이 늘어나도 집값이 잡히지 않는 현상은 반복되고 있다. 주택정책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주택 가격이 오르면 재고주택 공급은 오히려 줄어들고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분석한다. 반대로 집값이 내려가면 재고주택의 공급이 크게 늘어 수요가 부족해지고 결국 가격은 더 폭락한다.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올라가고,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내려간다'는 시장경제 명제가 주택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고 있다.
왜 부동산 시장은 이처럼 기형적인 구조가 형성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투기적 가수요'라는 주택 시장의 특징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남 소장은 "주택은 소유 및 처분 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적 가수요가 굉장히 강하다"며 "주택은 다른 상품과 수요공급곡선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집값 상승을 공급부족의 증거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주택 250만호 다주택자 '싹쓸이'…상위 10%가 80% 차지
시장경제의 원리와 상반되는 시장이 지속되다 보니, 지난 수십년 간 주택 보급률이 높아져도 이미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이 부동산 소득을 집에 재투자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주택소유 통계를 보면 주택 보급률에 비해 자가 소유율은 월등히 낮은 수치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상위 1% 다주택자 주택소유 현황'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다주택자들이 250만호를 사재기했고, 상위 1%의 주택 보유량은 1인당 7채로 10년 전에 비해 2배가 증가했다. 2008~2018년 전체 주택 수는 1510만호에서 2000만호로 490만호 증가했지만, 주택 소유자는 240만명 증가(2008년 1060만→2018년 1300만 가구)에 그쳤다. 신규 주택 공급량의 절반이상을 이미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유주택자가 사들인 것이다. 주택 공급량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기존 주택 보유자들이 추가 매수를 하거나 다른 부동산으로 '갈아타기'한 비율이 높아진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게다가 보급된 주택 250만호는 다주택자들이 사들이고, 특히 이 중 54만2700호는 상위 1%가 독식했다. 행정안전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상위 1%(10만5800명)가 보유한 주택 수는 36만7000호였는데, 10년 뒤인 2018년에는 상위 1%(12만9900명)의 보유주택은 90만9700호로 54만2700호로 늘어났다. 그 결과 상위 1%는 10년 전보다 2배가 늘어난 1인당 평균 7채를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상위 10%의 주택 보유량도 크게 증가했다. 2018년 이들이 보유한 주택은 450만8000호로, 2008년 보유 주택 수 242만8700호보다 207만9300호가 늘어났다. 1인당 보유주택 수도 평균 3.5채로, 10년 전보다 1.2채 증가했다. 10년간 다주택자들이 사들인 250만호 중 80% 이상(207만9300호)을 상위 10%가 가져간 셈이다.
다주택자 상위 20명이 소유한 주택 수도 1인당 평균 400채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통계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다주택자 상위 20명이 보유한 주택은 총 8327가구로, 1인당 평균 416가구를 소유했다. 다주택자 상위 10명의 1인당 평균 보유량은 560가구로, 이들이 가진 주택은 총 5598가구였다. 지난 2017년 다주택자 상위 10명의 1인당 평균 보유량 492가구와 비교하면 평균 70여 가구가 증가한 수치다.
특히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경우 20.2%가 2주택 이상을 소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국(15.6%)과 서울(15.8%)의 다주택자 평균 비율보다 높은 것으로, 5주택 이상을 보유한 사람도 강남 3구가 평균 3.45%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반면, 주택 가격 상승으로 무주택자들의 주택구입 비율은 낮아졌다. 지난 9월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법원 등기 데이터를 활용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도의 부동산 거래 중 무주택자의 매수 비율은 2013년 41%에서 올해 상반기 31%까지 하락했다.
서울 지역만 놓고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해 2015년에는 부동산을 처음으로 구입한 사람이 10만1000명이었지만, 작년에는 5만7000명에 그쳤다. 또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주택소유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은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주택 소유 가구(189만5000가구)보다 무주택 가구 수(200만2000가구)가 많았다. 2019년 서울의 주택 소유율(48.6%)은 전년(49.1%)보다 0.5% 감소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주택공급량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다주택자가 주택을 사재기하는 잘못된 주택공급 시스템, 보유세 등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주택소유 편중과 자산격차만 더 심화될 뿐"이라며 "청년세대와 무주택 서민들이 더 이상 주거불안에 시달리며 좌절하지 않도록 다주택자, 부동산부자 등 투기세력들을 위한 공급정책, 세제정책, 임대차시장 등에 대해 전면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주택 보유 여부, 자산 불평등에 영향
'주택 양극화'는 전체 자산 불평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10월 발표한 '자산 불평등에서 주택의 역할' 보고서는 "자산불평등은 소득불평등보다 크며, 특히 주택 등 부동산자산의 불평등도가 크다"고 분석했다.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수치인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도가 높음)로 측정한 2018년 기준 총자산불평등도는 0.5613으로 소득불평등도(0.3508)보다 높았다. 특히 부동산, 주택자산 등의 불평등도가 총자산불평등도에 비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산 불평등에 주택보유 여부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국토연구원은 "다주택자 집단으로 인해 자산불평등도다 더 커졌다"며 "주택보유 여부에 따른 집단을 비교했을 때 그중 절반 내외가 자산불평등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주택자와 1주택자로 구분했을 때 부동산자산 불평등도에 두 집단 간 불평등도는 62.3%로 확인됐다"면서 "무주택자와 1주택자, 다주택자로 구분했을 때 집단 간 불평등도는 부동산자산 불평등도에 67.9%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수도권에 거주하는 경우 자산불평등도가 비수도권 거주자보다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불평등도는 수도권이 비수도권보다 높았고, 서울의 경우 수도권 전체의 자산불평등도보다 높았다. 2030세대의 경우 부동산자산, 주택자산, 거주주택자산 불평등도는 각각 0.7974, 0.7986, 0.8038로 소득불평등도(0.2923)와 비교해 차이가 컸다. 소득에 따른 경제적 수준 차이보다 부동산 보유 등 자산에 따라 불평등이 심해졌다고 해석된다.
오민준 국토연구원 연구원은 주택보유 여부가 자산불평등도에 기여하는 바가 크므로 무주택자가 접근 가능한 저렴한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실수요자 위주로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 연구원은 "주택보유 여부에 따라 총자산과 부동산자산의 불평등도 차이는 상당히 크게 나타났다"며 "주택보유 여부에 따른 자산불평등도 차이가 소득불평등도 차이보다 큰 것으로 나타나 주택보유 여부는 자산불평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주택자 집단은 자산 불평등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면서 "주택가격이 상승할 경우 자산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으므로 주택시장 안정화 정책을 지속해 자산 불평등이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세제·금융 등의 측면에서 주택 정책을 시행할 때 주택 호수 기준뿐 아니라 보유 주택 가치의 총합을 기준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토지공개념 특별취재팀 : 홍준표·염재중·염정우·태기원·강대경 기자]
※ 본 기사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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