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故 최동원 정신은 어디로…선수협은 왜 흔들리는가
스포티비뉴스 기사입력 2020.12.03. 오전 05:30 최종수정 2020.12.03. 오전 06:26 기사원문
▲ 1988년 선수협 창립을 주도하면서 시련을 겪었던 故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스포티비뉴스=청담동, 고봉준 기자 / 이강유 영상 기자]
“애당초 내가 맡고 싶어서 회장이 된 것이 아니다.”
선수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흔들리고 있다.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20여 년 전 KBO와 구단의 극렬한 반대를 뚫고 탄생했지만, 이제는 선수들의 외면으로 존립 근거가 위태로워졌다.
선수협 이대호(38) 회장은 2일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날 언론을 통해 보도된 판공비 인상 논란을 해명하기 위해서였다. 이대호의 회장 취임 직전 판공비가 기존 연간 2400만 원에서 6000만 원으로 올랐고, 이마저도 사용내역을 알 수 없는 개인계좌로 입금됐다는 의혹이 확산된 직후였다.
이대호는 이 자리에서 “2019년 3월 18일 임시이사회에서 판공비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나 역시 누구도 맡기 싫어하는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선 판공비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인 3월 19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 회장 선거에서 내가 당선됐다. 나는 후보도 아니었다. 당선될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이대호는 “나는 애당초 회장직을 맡고 싶지도 않았다. 4년 전 롯데 자이언츠로 올 때 고액연봉(25억 원)을 받았다. 따라서 롯데를 위해서 열심히 뛰어야 했다. 그래서 몇 번이고 회장직 후보 추대를 거절했다. 솔직히 회장이 좋은 자리는 아니지 않는가. 잘해도 누가 좋아해 주는 자리는 아니다”고 말했다.
씁쓸한 한마디였다. 선수들의 장기간 투쟁으로 탄생한 선수협이 이제는 선수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비참한 사실이 또다시 증명된 꼴이 됐기 때문이다.
선수협의 공식적인 탄생은 2000년 1월이지만, 출범 노력은 한참 전인 1988년부터 있었다. 중심에는 고(故) 최동원이 있었다. 당시 선수들의 열악한 훈련 환경과 복지 상태를 보며 심각성을 느낀 최동원은 선수들을 위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떠올렸다. 그리고 각 구단 주축 선수들과 함께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약칭 선수회) 창립을 결의했다.
그러나 노조원이 반동분자로 낙인찍히던 시대는 최동원의 선수회 출범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구단들은 온갖 수를 동원해 선수들의 모임 자체를 막아섰고, 결국 선수회 창립은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미운털이 박힌 최동원은 1988년 말 롯데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됐고, 2년 뒤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그러나 선수회의 필요성을 공감한 선수들은 의지를 꺾지 않았다. 10여 년 뒤, 다시 뜻을 모았다. 송진우와 양준혁, 마해영, 심정수 등이 2000년 1월 선수협 창립총회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송진우를 초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물론 이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1988년과 마찬가지로 KBO와 구단의 반대가 극심했다. 이른바 ‘선수협 파동’이라고 불리는 대립이 불거질 정도였다. 또, 최동원 사례처럼 선수협 핵심 멤버들이 트레이드됐다. 힘없는 수많은 선수들은 선수협 창립을 주도했다는 이유만으로 소리도 없이 유니폼을 벗어야만 했다. 그러나 선수협은 이러한 아픔을 이겨내며 뿌리를 내렸고,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선수협 이대호 회장이 2일 리베라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담동, 곽혜미 기자
송진우를 시작으로 김동주와 이종범, 박재홍 그리고 이대호까지. 쟁쟁한 인물들이 이끌어온 선수협.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선수협 회장직은 독이 든 성배처럼 여겨졌다. 동료들에게 떠밀려서 혹은 주위 여론을 이기지 못해 회장을 맡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지난해 3월 이대호의 취임 전까지 2년간 회장 자리가 비어있던 이유다.
이러한 현실은 제10대 회장인 이대호의 입을 통해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대호는 이날 기자회견 서두에서 “나는 애당초 선수협 회장직을 맡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회장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솔직히 선수협 회장은 좋은 자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2019년 당시 이대호의 위상은 KBO리그에서 가장 드높았다. 한 해 25억 원을 받는 최고 연봉자였고, 경력과 기량 등을 통틀어서도 이대호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대호마저 선수협 회장직을 남들에게 떠밀려서 맡을 정도로 선수협 회장 자리는 위상이 낮아진 상태다.
동료들의 반강제적인 추대로 회장을 맡은 이대호는 결국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FA 등급제 도입과 같은 제도 개선을 이끌기는 했지만, 선수협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판공비 논란으로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어쩌면 거액의 판공비 인상과 현금 지급 논란도 결국 누구도 회장을 맡지 않으려는 선수협의 구조적 문제 그리고 선수들의 이기적인 태도가 낳은 비극일지 모른다.
선수협은 최근 이대호의 뒤를 이을 신임 회장 선거를 진행했다. 후보는 각 구단 연봉 상위 1~3위 선수들. 투표는 이미 마쳤고, 다음달 7일 즈음 결과를 발표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웃으면서 선수협 회장직을 맡는 장면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30여 년 전, 최동원은 “연봉이 낮은 동료들, 특히 연습생들의 복지가 사각지대로 놓여있다”면서 선수협 창립을 주도했다. 자신에게 닥쳐올 시련을 충분히 알고서였다.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 하나. 당시 프로야구에서 최고 연봉을 받던 선수가 바로 최동원이었다.
스포티비뉴스=청담동, 고봉준 기자 / 이강유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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