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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억 FA와 300만원…‘회장님’ 이대호는 무엇을 좇았나 [김은진의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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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20. 12. 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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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억 FA와 300만원…‘회장님’ 이대호는 무엇을 좇았나 [김은진의 다이아몬드+]

스포츠경향 기사입력 2020.12.02. 오후 02:04 최종수정 2020.12.02. 오후 02:21 기사원문

 

 

[스포츠경향]

이대호 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연합뉴스


지난해 여름, 한 선수가 3월에 있었던 선수협 이사회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상 이대호를 회장으로 추대하는 자리, 후보가 된 선수들과 각 팀 선수이사 3명씩이 참석한 자리였다. 안 하겠다 버티던 이대호가 그 자리에서 판공비를 올려달라고 했다는 믿기 힘든 내용이었다.


이 선수는 “처음에 1억 얘기를 하더라. 옆에서 같이 박자를 맞춰주는 다른 구단 고참 선수가 한 명 있었다. 다들 황당해했다. 처음엔 듣고만 있다가 선수 한 명이 화를 참지 못하고 발언을 했다. ‘지금 뭐하는 거냐. 최저연봉 선수들도 회비를 내고 있는데 그걸로 받는 판공비를 몇억씩 연봉받는 선수가 올려달라고 하느냐. 선수협 회장은 희생을 해야 하니까 야구 잘 하고 힘있는 사람이 하자는 것 아니었냐. 이러면 다 하기 싫어하는 자리 판공비 받으려고 하는 것밖에 더 되느냐’고 했다. 분위기가 엄청 싸늘해졌었다”고 했다.


충격적이고 불쾌했던 당시 기억이 화제로 나온 것은 선수협의 FA제도 개선안 협의에 대해 이야기하던 과정에서였다. 지난해 7월 선수협은 최저연봉 인상, 보상선수 폐지, FA 자격 취득기간 1년 축소 등 몇 가지 조건을 수용해줄 경우 구단들이 제안한 FA 4년 80억원 상한제를 받아들이겠다고 결의했다. 각 선수단 의견을 취합해 이사회를 거쳐 KBO에 서류가 넘어간 뒤 보도됐고 양측 사무총장이 모두 인정했다.

 

그러나 이대호 회장이 “우리는 FA 보상제도 완전 철폐만을 요구했다. 회장인 내가 수용이라고 말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제안서를 받은 KBO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든 회장의 한 마디에 선수들이 큰 마음 먹고 했던 결의는 물거품 됐다. 이 선수는 “그렇게 큰 건을 양보하면 최대한 많은 것을 받아내야 하는데, 2군 선수들 위하겠다고 하고선 결국 고액 선수들 FA 생각만 하는 것”이라며 ‘판공비 사건’을 떠올렸다.


이대호 회장은 역대 최고인 150억원 계약을 해 지난 4년간 매년 25억원의 연봉을 받은 리그 최고 연봉 선수다. 2년 동안 새 회장을 뽑지 못하고 표류 중이던 선수협은 연봉순으로 최종후보를 추렸다. 구단 별로 후보를 자체추천하기도 했으나 주전도 아닌 선수를 내놓는 등 성의 없는 몇 구단으로 인해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팀의 주장도 야구 잘 하는 선배를 뽑듯 프로야구 전체 선수를 끌어가야 하는 회장에는 그만한 커리어와 리더십이 필요하기마련이다. 연차와 야구 경력, 연봉 등을 고려해 이대호에게 최종적으로 무게가 기울었고 총회 전이었지만 사실상 이날 이사회에서 이대호가 회장으로 추대된 것으로 선수들은 전하고 있다.


‘판공비 사건’에 대한 증언은 여러 선수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참석했던 한 선수는 “그날 판공비 인상 얘기는 다른 사람이 꺼내지 않았다. 결국에는 맡아야 할 것 같은 상황이 되자 본인이 판공비 얘기를 하더라”고 했다. 다른 선수는 “다녀온 선수로부터 들었다. 판공비를 안 올려주면 안 하겠다는 분위기였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선수들은 연봉 1%를 선수협 회비로 낸다. 일종의 노조비 개념이다. 이 회비에서 이사들에게 판공비가 지급된다. 이사회 소집시 각 지역에서 모이다보니 교통비와 숙박·식비 등으로 지급되는 필요비용 50만원이 입금된다. 회장에게는 200만원씩이 입금돼왔다. 일반 회사 임원들에게 지급되는 것과 비슷한 일종의 품위 유지비다. 박재홍 전 선수협 회장은 아예 모두 기부하기도 한 이 판공비를 이대호 회장은 맡기도 전에 올려달라고 한 것이다. 빨리 회장은 정해야 하는데 대안은 없었던 선수협 이사회는 결국 판공비 인상을 반대하지 못했다. 신임 이대호 회장의 통장에는 당초 주장한 1억원보다는 적지만 기존 회장들보다 2.5배나 되는 500만원씩이 매달 입금됐다.


이대호의 판공비 인상이 문제인 것은 액수나 지급 방법 때문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25억원을 매년 버는 역대 최고 연봉 선수가 후배들이 부디 맡아달라고 추대한 명예직을 판공비로 흥정했다. 앞선 회장들이 희생과 봉사의 자리라고 여겼던 자리는 매달 500만원씩, 연간 6000만원의 가욋돈을 받는 완장의 자리가 됐다. 이대호 회장이 ‘오로지 보상제도 철폐’를 외치며 외면했던 프로야구 최저연봉은 올해까지 2700만원이었다.


지난해 7월 이대호 회장의 말로 물거품 됐던 FA 제도 개선안은 12월에 통과됐다. KBO의 수정안에 선수협회 이사들끼리 모여 거부를 결정하자 KBO 이사회가 “마지막으로 고민해달라” 최후 통첩을 했고 선수들 전체가 참가하는 총회 투표 결과 ‘찬성’으로 뒤집혔다. 선수들이 찬성한 내용의 하나가 최저연봉 인상이었다. 어렵게 통과된 최저연봉 인상으로 내년부터 신인 선수들은 연간 300만원을 올려받는다. 이대호가 올려받은 월 판공비 인상액과 같다.


이대호는 판공비를 인상시키고 회장을 맡은 뒤 취임 기자회견에서 “전체 선수들의 의견을 잘 모아 사안들을 결정하겠다. 특히 최저 연봉 받는 선수나 2군 선수를 위한 FA 도입도 논의하겠다”고 했다. 실제 행보는 반대였다.


지난해 여름 ‘판공비 사건’을 선수들로부터 듣고도 기사화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2년이나 비어있던 선수협회장 자리가 염려됐고, 20년 전 어렵게 탄생한 선수협 자체를 보호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최근 판공비 인상 사실이 알려지자 이대호 측은 자신이 회장에 오르기 전에 이사회가 결정했다며 남 탓을 하고 있다. 더는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당시 현장에 30여명의 선수들이 있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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