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쓰자마자 임대료 인하요구
상의 없이 계약보다 낮춰 입금..
임대료 인하 법으로 명문화하면
건물가치 떨어져 '파산' 등 양극화
헤럴드경제 | 입력2020.09.24 11:54 | 수정2020.09.24 11:54
# “매수 계약서를 쓰자마자 임대료 30% 인하를 요구하더라고요. 해주면 저도 좋죠. 그런데 저도 이 임대료를 받아야, 대출 이자를 내기 때문에 해줄 수가 없었어요. 임대료 인하 요구를 법으로 강제하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올해 초 꼬마빌딩을 매수한 전문직 부부)
# “코로나 사태로 매출이 떨어지자, 임차인이 갑자기 임대료를 임의로 낮춰 입금을 한 거에요. 매출이 줄어 어려운 건 이해하지만, 이런 경우도 건물주란 이유로, 일방적 희생을 해야 하나요?” (상업용 부동산 관계자 A씨)
정부가 자영업자의 임대료 부담을 낮추는 내용을 담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을 개정한다는 소식에 임대인 반발이 거세다. 임차인의 어려움을 잘 알지만, 법으로 임대인의 일괄적 희생 을 강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이번 법 개정이 앞서 지난 7월말 임대차법처럼 임대인과 임차인 갈등을 부각시킬 것이란 지적이다.
▶임대료 깎아주다, 대출 이자 못내면 어쩌나=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은 코로나19 등 재난 시 피해를 본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임대료 감액 청구권을 쓸 수 있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임대료 증감 청구가 가능한 요건을 기존 ‘경제사정의 변동’에서 ‘감염병예방법에 따른 1급 감염병 등에 의한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수정했다. 증감청구권에 대한 현행 법률과 시행령 규정상 증액 요구는 5%까지만 가능하지만, 감액청구 시 별도 하한은 없다. 감액 규모는 임차인의 임의에 따르는 셈이다.
또 6개월간 임차인이 월세를 연체해도 계약해지나 갱신거절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특례 조항을 마련했다. 현행법은 3개월이다. 법안은 공포날 시행되며, 시행 당시 존속 중인 임대차 계약에도 적용된다는 부칙이 함께 마련됐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 소장은 “임대인이라고 하면 모두 현금부자 건물주로만 알고 있는데 구분상가를 분양받은 생계형 임대인도 많다”면서 “이들은 사실상 매각 차익같은 것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이들인데, 이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대출이자’ 때문에 임대료 감면이 어렵다는 이들도 있다. 빌딩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코로나 초기 착한 임대인 운동을 할 때, 대출이자와 현금 흐름 때문에 감면이 어렵다는 건물주도 있었다”면서 “임대료를 깎아주면 그에 따른 세제혜택 등이 수반돼야 하는데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도 문닫는데, 건물주도 어려워질 것=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서울 지역 주요 상권의 투자수익률은 2%를 넘지 못했다. 테헤란로가 1.91%로 가장 높고, 광화문과 명동, 동대문, 논현역 등은 1.2~1.4% 사이다. 시중 은행 대출 이자보다도 낮은 셈이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내년부터는 투자금 중 자기자본 비중이 낮은 건물주는 견디지 못하고 급매물을 내놓을 수도 있다” 고 말했다.
앞서 시중 유동성이 주택시장으로 흐르는 것을 막으면서, 자산가들은 대출을 활용해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관심을 돌렸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자기자본 비중이 낮은 건물주는 자산가치 하락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임대료 인하가 법에 명시되면, 건물이나 상가의 자산가치 하락은 불보듯 뻔하다. 코로나발 불황을 견딜 수 있는 자와 견딜 수 없는 자로 나뉘어 양극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다.
선 대표는 “자영업이 무너지고, 임대인이 쓰러지면 소비의 한 축을 담당하던 이들이 어려워지고 경제 전반으로 힘들어지는 후유증이 나타날 것”이라며 “올 연말까지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내년 초 무너지는 건물주들이 나올 것 같다”고 밝혔다.
성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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