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김유림 기자 고동완 인턴기자 입력 2020.09.27. 08:01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폐업률 1위, "요지부동 임대료에 업종 구분 없이 폐업 속출"
서울 동대문구 회기역 먹자골목에는 월세를 버티지 못하고 떠난 상인이 많았다. 간판과 달리 건물에서 실제 영업 중인 곳은 4개 층에 불과하다. [고동완 인턴 기자]
9월 17일 서울 서초동 강남대성학원 근처. 무한리필 고깃집 간판을 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으나 눈앞에 보이는 건 '암흑'이었다. 이 건물은 지하 2층에 지상 6층으로, 고깃집은 지하 1층에 264㎡(80평) 규모다. 최근까지 월세는 600만원. 하지만 식당 주인은 월세를 버티지 못하고 올 8월초 가게를 접었다. 현재 해당 층은 집기들이 철거된 채 텅 비어있다.
이 건물의 다른 층도 사정은 비슷했다. 건물 외벽에 붙은 간판과 달리 영업 중인 곳은 4개 층에 불과했다. 6층 미용실과 5층 학원은 자취를 감췄고 4층 북카페도 문을 닫았다. 올 초만 해도 한 개 층이 비어있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다른 층 상가에까지 여파가 미친 탓에 이 건물의 공실률은 50%에 달한다. 그럼에도 임대료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해당 건물 인근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유례없는 불황에도 월세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건물주 처지에선 한 군데 임대료를 깎아주면 나머지 가게도 똑같이 깎아줘야 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불황의 참혹함은 오롯이 소상공인들의 몫인 셈이다.
대한민국 대표 상권으로 분류되던 강남역 일대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불황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매출 감소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는 것. 행정안전부 지방행정 인허가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폐업상가 수가 강남구 4434개로 서울시 25개 자치구(전체 폐업 수는 3만 9180개) 중 1위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와 재택근무 영향으로 유동인구가 감소하면서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줄어든 탓이다. 또한 한국감정원이 집계한 지역별 공실률에 따르면 강남대로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5.2%에서 올해 2분기 8.5%로 올랐다.
화장품· 패션브랜드·은행도 철수강남역 인근 상인들은 계속되는 적자에 자비로 손해를 메꾸거나 대출을 받아 가게를 꾸려가고 있다. 강남역 1번 출구 주변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B씨는 "코로나가 확산하던 2월 무렵부터 약국을 찾는 사람이 반토막이 났다"며 "벌어둔 것으로 일단 버티는 중"이라고 말했다. 역삼동 의· 치의학전문대학원 입시학원 근처에 자리를 잡은 C카페 대표도 "10평 남짓 가게에 월 200만원을 월세로 내고 있다"며 "코로나로 학원가 학생이 크게 줄면서 적자로 전환했는데 대출을 받아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역 대로변에 앞다퉈 매장을 낸 유명 브랜드 업체들도 임대료 부담에 서서히 강남역을 떠나고 있다. 지하철 강남역 2호선을 기준으로 신논현역 방향으로 뻗은 대로변엔 화장품 매장뿐 아니라 브랜드 패션과 캐릭터샵이 분포하고 있다.
서초동 D공인중개사 대표는 "지난 2~3년 동안 화장품 업체들이 브랜드 강화 차원에서 강남역 대로변에 많이 입점하면서 주변 임대료가 확 올랐다"며 "불황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대기업이나 소위 브랜드 점포들도 버티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올 5월 강남대로 빌딩 1층에 입점했던 아모레퍼시픽의 뷰티 편집숍 '아리따움 라이브'는 매출 감소로 결국 폐점했다. 강남역 근처 현대백화점 'VR스테이션'과 '유니클로' 역시 비슷한 이유로 문을 닫았다. 금융기업들도 강남에서 철수하고 있다. 전하나 에이트빌딩 팀장은 "강남대로 1층에 입점했던 은행들이 현금자동인출기(ATM) 4~5대만 남겨두고 문을 닫거나, 임대료가 더 저렴한 2층 이상 상층부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신제품 광고 등을 위해 대기업이 단기로 내는 '안테나 매장'도 기존에는 4개월 정도 계약하는 것이 기본이었는데, 이제는 한두 달 '반짝 임대'만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건물 가치 떨어질까봐 높은 임대료 고수
강남대로변 상가들 중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는 곳이 많다. [동아DB]
강남역 뒤쪽 이면도로에는 일반음식점과 카페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있다. 서초동 대로변 뒤쪽과 강남역 신분당선 주변인 역삼동 일대에도 자영업자들이 밀집해 있다. 강남역 일대 보증금과 임대료는 역과의 거리, 점포 규모에 따라 다양하다. 강남역 1번 출구에서 약 40m 거리에 있는 49.6제곱미터(15평) 상가는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360만원,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약 400m 떨어져 있는 CGV 주변 먹자골목 상가들은 1층 231제곱미터(70평) 기준 보증금 2억 원에 월세 1050만 원 정도다. 강남역 인근 59제곱미터(18평) 카페는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700만 원 선이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강남역 일대 부동산 전문가들은 "한번 임대료를 내리면 다시 올리기 쉽지 않은 탓에 경기와 무관하게 임대료를 최대한 유지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감정원의 강남대로 상가 3.3㎡(1평)당 임대료 추이를 살펴보면, 올해 1분기 33만8580원에서 2분기 33만7920원으로 변동이 거의 없다. 같은 기간 명동에선 임대료가 97만9110원에서 95만9310원으로 2% 하락했다.
역삼동 E부동산 공인중개사는 "강남역 일대는 특수 상권으로 분류된다"며 "대기업과 사무실이 밀집해있으니 사람이 나중에라도 몰릴 것으로 보고 임대료를 내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건물주들은 임대료가 떨어지면 건물 가치도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임차인 유치를 위해 임대료 무료(렌트 프리) 혜택을 더 주거나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최근 들어 대로변 상가 임대료도 '코로나발' 불황에 할인이 이뤄지곤 있지만 계약 기간을 전체로 봤을 때 단기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공인중개소의 설명이다. 서초동 D공인중개사 대표는 "보통 계약 기간이 1년 미만이면 깎아주지 않고, 24개월로 계약을 하면 6개월 정도만 일시적으로 20~30%선에서 깎아준다"며 "이후엔 임대료가 다시 원상 복귀된다"고 밝혔다.
게다가 신흥 상권과 달리 강남대로에는 오래 전부터 건물을 보유해 대출 이자 비용에 부담이 없는 건물주들이 많다. 결국 공실 압박을 덜 느끼는 것도 임대료가 낮아지지 않는 요인 중 하나다. G부동산 대표는 "이자 부담이 없는 건물주는 임대료를 낮출 필요가 없다"며 "기껏 낮춰봤자 계약 기간 전체로 보면 2~3% 할인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건물주가 대출을 많이 끼고 있어도 임대료를 낮추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다. 먹자골목에서 마라탕 전문점을 운영하는 H씨는 "코로나가 터지고 올 2월부터 적자에 빠졌지만 월세만 매달 400만원을 내고 있다. 건물주도 이 건물 대출금을 갚느라 월세를 깎아줄 수 없다고 한다"며 "이대로라면 대형 프랜차이즈 점포 정도를 빼고 강남역에서 자영업자는 다 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지속된 경기침체로 지난해 4분기부터 강남대로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임대료 감면으로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여주거나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비대면 서비스와 관련된 업종으로 임차인을 받아야 공실률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고동완 인턴기자 historydram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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