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상승했다.'
아파트 공급 부족론은 부동산업계를 지배하는 주류 논리다. 집값이 오를 때면, 부동산학과 교수나 시중 은행 컨설턴트는 물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공급 부족'을 이유로 꼽는다. 불완전경쟁시장인 부동산 시장에 완전경쟁시장에만 적용될 수 있는 수요공급 이론을 정제 없이 끼워 맞추는 것도 문제지만, 통계를 봐도 이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들이 짚는 공급 부족 지역은 '서울'이다. 지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과 분양 물량을 보자. 서울 아파트 공급이 크게 많아진 시기는 지난 2015년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5년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폐지,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 유예 등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명목으로 부동산 시장의 고삐를 풀어줬다. 그러면서 서울 지역 아파트 공급은 크게 늘어난다.
한국주택협회에 따르면, 2015년 서울 아파트 분양 물량(공공 분양 제외)은 총 4만 417가구였다. 분양 물량은 2014년(2만 5539가구)에 비해 63%나 증가했다. 당시 신문 기사에선 '공급과잉'이란 말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부동산 수요 공급 이론대로라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하락해야 맞다.
공급 과잉 우려까지 나왔던 2015년, 아파트 가격도 폭등
그런데 서울 아파트 가격은 그해인 2015년을 기점으로 폭등한다. 국민은행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서울 아파트 가격은 5.56%나 올랐다. 공급이 적었던 2014년 서울 아파트 값 상승률이 1.09%에 불과했던 점을 보면 폭등세에 가깝다. 집값 상승을 '부동산 규제' 탓으로 돌리는 전문가들도 2015년 부동산 규제를 풀면서 집값이 폭등한 사실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 2015년 이후에도 아파트 분양물량과 가격 상승률과의 상관관계는 찾아보기 어렵다.
2015년에 비해 아파트 공급이 소폭 줄었던 2016년(서울 분양 3만 6184가구)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4.22%였다. 아파트 공급량은 분명 2015년에 비해 줄었는데 오히려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낮아진 것이다.
이듬해인 2017년 서울 아파트 공급량은 3만 8615가구로, 전년보다 6.71% 가량 공급 규모가 커졌다. 공급이 많아졌지만 아파트 값은 오히려 더 상승한다. 2017년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5.28%로 전년 대비 1%p 이상 상승한다. 가격 급등세가 심해지자 문재인 정부는 2017년 8.2 부동산 대책으로 진화에 나섰고, 연말쯤 잠시나마 진정됐다.
부동산전문가들의 주장대로 통계가 움직이던 때는 2018년 단 한 번뿐이다. 2018년 서울 아파트는 2만 384가구가 공급됐다. 공급 물량이 전년 대비 1만 가구 이상 줄었다. 2018년 서울 아파트 가격은 13.56%나 급증하면서 폭등세를 보였다. 2018년만을 기준으로 하면 공급이 줄고 가격이 올랐다고 말할 수 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계속 틀리다가 2018년 단 한 차례 맞았던 것이다.
2020년 서울 아파트 분양가, 2015년의 두 배로 껑충
하지만 이 흐름도 오래 가지 못한다. 2019년 서울 아파트 공급량은 2만 3989가구였다. 2018년과 비교해도 공급량은 별 차이 없다. 그런데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2019년 12월 기준)은 2.91%로 2018년과 비교하면 대폭 낮아진다.
다시 2015년으로 되돌아가보자. 2015년을 기점으로 서울 아파트 공급은 분명 증가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서울에서 분양한 민간 아파트는 총 15만 9589가구. 2010년~2014년 기간 분양했던 아파트 수는 9만 6909가구였으니까, 6만 가구 이상 늘어난 수치다. 전체 아파트 시장이 아닌 민간 아파트 분양 시장만 떼놓고 봐도, 이 기간 중 분양가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월 서울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625만 3000원이었다. 이듬해인 2016년 1월 서울 아파트 분양가는 610만 8000원으로 큰 차이가 없었지만, 2017년부터 급등세를 보인다. 2017년 1월 서울 아파트 분양가는 645만 원, 2019년 1월 760만 원, 2020년 1월에는 812만 1000원으로 오른다. 2014년 1월 평균 분양가가 543만 1000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50% 가까이 오른 셈이다.
분양가격에 영향을 미친 건 주택 공급 부족이 아닌 '분양가상한제 폐지'가 결정적이었다. 분양가상한제란 아파트를 분양할 때 정부가 정한 적정 건축비에 맞춰 가격을 매기는 제도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5년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가 사실상 폐지되면서, 아파트 분양을 하는 건설사들은 아파트 값을 마음껏 높여 받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수요가 몰렸던 서울 강남은 분양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갔고, 아파트 분양을 할 때마다 가격은 올라갔다.
분양가상한제 폐지하면서, 분양할 때마다 올랐던 서울 아파트
2016년 분양한 신반포자이의 경우 분양가는 3.3㎡당 4290만 원이었다. 이는 2013년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았던 래미안 대치팰리스(3.3㎡당 3200만 원)보다 3.3㎡당 1000만 원 이상 비싼 가격이다. 상승률로만 치면 34.06% 오른 값이다.
이후에도 강남 아파트들은 분양을 할 때마다 가격이 올랐고, 그 여파로 서울 아파트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특정 한 단지가 높은 분양가를 책정해 분양하면, 재건축을 준비하는 다른 아파트들도 '기대감'을 반영해 동반 상승했던 것이다. 분양가를 통제하지 않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2016년 7월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보증 심사를 통해 분양가 통제에 나섰지만, 가격 상승 흐름을 완전히 막진 못했다. 올해 분양을 앞둔 래미안 원베일리의 경우 분양가가 3.3㎡당 5000만 원대에 육박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럼에도 부동산 전문가란 사람들은 '분양가를 통제하니 분양가가 오른다'는 앞뒤 안 맞는 소리를 반복한다.
지난해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예고했던 정부는 여전히 제도의 시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2020년 4월로 연기했다. 지난 3월에는 코로나 감염 예방을 이유로 상한제 시행을 7월 28일로 또 다시 미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