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대는 한미관계 속에 보이는 섬뜩한 한국과 미국의 유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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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한 한국과 미국에 공통되는 "초격차"의 반동 "약자지지"를 노린 정권운영이 가져올 모순과 혼돈
지난 2주일 정도 한국에 머물며, 모국인 한국의 정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일본, 한국 모두, 논객의 대부분이 이 두 나라간의 관계를 일본 또는 한국의 시점에서만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양국관계 악화상황의 영향으로, 한국 vs. 일본, 문재인 정권 vs. 아베 정권, 또는 한국의 좌익세력 vs. 일본의 우익세력이라는 구도에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그것도 최근에는 격렬하다. 삐걱거리는 한미관계 속에 보이는 섬뜩한 한국과 미국의 유사점 직업상, 1년의 4분의 1은 미국에, 역시 4분의 1은 한국에 체류하는 생활을 오랜동안 계속하고 있지만, 그러한 경험을 하고 있노라면, 한국을 둘러싼 다른 구도가 보인다. 한국이나 미국에는, 일본인은 조금 상상할 수 없는 격차사회가 형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약자층의 목소리가, 그 나라의 정치인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그 역학이 일본과 한국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이번, 방한기간 중에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조국 법무장관후보(당시)의 청문회를 수십 시간 볼 수 있었다. 구체적인 의혹의 논란에 대해서는 이미 일본에서도 보도되고 있으므로 생략한다. 종합적으로 돌이켜 보면, 두 가지 테마가 부각된 것처럼 느낀다. 먼저 첫번 째는, 조씨의 "언행불일치" 즉, 진보적 개혁을 내세우면서도, 자신의 가족은 보수적 수법에 의해 이익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조씨 자신의 발언으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양립할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조씨가 앞으로 어떤 운명을 걸을 지는 미지수지만, 이 두 가지 주제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에게도 무관하지 않다. 커리어나 영향력으로는 비교가 안되지만, 인격적으로 보면 조씨, 그리고 현 한국정권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트럼프적 요소와 미국 민주당측 대선주자인 샌더스, 워런적 요소가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한일 간의 갈등은 복잡하게 미국이나 세계의 격차문제와 민주주의의 표류와도 얽혀 있는 것이다. "언행불일치"는 모순이 아닌가 한국에서는, 일본 이상으로 사회 속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이 약육강식적 사회구조는, 강자인 보수세력이 약자를 착취한다고 하는 구도로 파악되고 있다. 그리고 진보세력은 약자를 위해 불공평성을 낳는 사회의 왜곡을 시정하는 것이 대의다. 그 상징적 정책이라는 것이, 조 내정자가 청와대 전 민정수석, 그리고 이번 법무장관으로서 담당하는 사법개혁이다. 즉,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는 검찰권력의 개혁이다. 그런데, 한국 국민이 가장 형평성을 추구하는 입시과정에 있어, 조 씨의 자녀들은 불공평하게 여겨지는 수법으로 진학했다는 의심을 받게 되어, 불법행위의 여부가 가려지게 되었다.그야말로, "언행불일치"인 후보(당시)가 사법부를 관장하는 장관직에 적합한지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의아해 했다. 미국에도 언행불일치를 하는 사람이 있다. 잘아시는 트럼프 대통령이다.최근, 미국 언론에서는, 트럼프씨가 중미로부터의 불법이민에 대해 엄격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은, 중미나 멕시코로부터의 이민을 범죄자나 마약업자로 보는 그의 차별적 표현에 기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런 비난을 받아도, "나는 세계에서 가장 비차별적인 사람이다(least racist)"라고 주저없이 반박했다. 이번 대선을 위해 몇몇 방송사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다시 그를 지지할 것이냐"고 묻자, 많은 사람이, "거짓말든, 남을 배신하든, 그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억만장자 정도가 아니라 빌리어네어(10억달러 이상)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그에게 강력한 변호사를 붙여, 부동산 사업 등에서는 사용자나 하청에 있어 불리한 조건으로 관철시켰다. 약자의 눈물을 공유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 약자의 기대가 모아진 것이다. 그 대극에 위치한 것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엘리자베스·워런 씨다. 그녀는 가난한 집에서 자라, 형제는 군대에 가고, 자신은 등록금을 낼 수 없어, 고학 끝에 겨우 대학학위를 받고,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그 후, 정치의 세계에 들어가, 유력 상원의원의 자리에 올랐다. CNN 등으로 연설회나 인터뷰를 봤는데, 역시 약자공감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 워런 상원의원은 미국의 50억엔 이상을 보유한 가구의 유동자산에 2%의 세금을 부가하므로서 교육, 복지 등의 지원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급진 좌파로 꼽히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사진 AP/아프로). 조 씨와 트럼프 씨는 공통적인 측면이 있다. 그것은 게임 플레이어라는 것이다.목적은 권력의 정점에 서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현존의 기회를 잡는다. 그 기회라는 것은 극도로 벌어진 격차로 고민하는 많은 약자가 열렬히 기대하는 기존세력의 파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모순이건 무엇이건. 그런 역학이 현재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민주주의라는 구조를 새로운 방향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세 가지 유형의 시민 나는 최근, 한국에 머물 때, 문 정권의 서포터 중의 한 사람과 이야기를 해 보았다. 그의 아들은 한국의 대형항공사(재벌계)의 사원으로, 그 기업의 우대조치로 해외 연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아들이 보수기업의 혜택을 받고 있는데도, 그는 정치적으로는 보수해체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에는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 게다가,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자신의 이해보다 사회의 이해나 이상을 우선하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 조금 전의 담배 비유를 계속한다면, 애연가가, 담배연기는 건강에 나쁘기 때문에 자신은 담배를 못 피우게 되어 불편을 느껴도, 금연정책에 찬성한다고 하는 케이스. 이것을 "이타주의"라고 부르자. 이것이 두 번째가 된다. 그렇다면, 앞서 기술한, 보수계의 혜택을 보면서 진보계의 개혁을 열렬히 지지하는 시민은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이런 경향은 일본에서도 본 적이 있다. 경영 컨설턴트로서 많은 조직개혁을 촉진해 온 경험에서 보면, 일본의 대기업의 경영진에게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비쳐 보인다.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개혁은 대찬성이다". 여기까지는 명분이다. 다음의 속내를 말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 "하지만 내가 이 업무에서 떠난 후에 하면 좋겠다"는 일종의 저항세력이다. 현재의 혜택을 받으면서, 입장으로서는 개혁을 지지한다. 국적을 불문하고 이 타입을 "초이기주의"라고 나는 부른다. 이것이 세 번째다. 그들은, 현재의 체제로부터 일정한 혜택을 받고 있지만, 그 권력구조를 파괴하기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린다.그리고 그것을 모순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초격차 사회가 낳은, 현상타파를 원하는 대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실은, 이 초이기주의 층을 얼마나 제대로 잡느냐가 바로 정치게임 플레이어의 지혜 싸움이다. 그들의 지지를 얻으면, 여론의 대세를 잡을 수 있고, 개혁도 진행하기 쉽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다. 약자인 그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은, 필연적으로 사회주의라는 인식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사회주의적인 사상이 시민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사회주의는 20세기에 죽지 않았는가 다음으로, 조씨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양립할 수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일본의 논객 중에는, 한국이 미국을 떠나, 중국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흐름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문재인씨가 우선과제로 내세운 북조선 포용정책과 관련해, 이러한 경향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분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미국의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고문이 '대실패'(The Grand Failure)라는 책을 써서, 20세기의 사회주의는 대규모적인, 그리고 폐해가 많았던 실험이었는데, 실패로 끝났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근, 변형된 사회주의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것은 틀림없이 극도로 커진 격차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격차에 대한 인식을 결정지은 역사적 전환점이 미국과 한국, 양국에 있다. 미국의 경우는 2008년의 리먼 쇼크다. 월 스트리트(금융엘리트)라는 "1%"가 약자"99%"을 먹이로 삼았다,며 사람들은 월 가를 점령하는 시위를 벌였다. 덧붙여, 같은 해 중국에서는 북경 올림픽이 열려, 국민은 자신감을 고양시킴과 동시에, 리먼의 악영향을 눈 앞에 두고, 미국식 자본주의의 한계를 의식하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는 2016년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구 최서원에 의한 비리발각이다. 그 이전의 세월호 침몰사건 때, 고교생 등 승객(약자)구조를 박 씨는 우선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최씨의 축재에 정권일부를 동원해, 기업까지 끌어들인 것과의 대비가 시민을 극도로 분노하게 해 박씨는 탄핵당했다. 이로 인해 좌파정권이 탄생한 것이다. 최근, 구미의 언론에서는, 미국의 사회주의화에 경종을 울리는 보도가 눈길을 끈다. 미국의 민주당은 극좌라 할 수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중도 좌파로 오바마 정책을 계승하려는 바이든 전 부통령 간의 논전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미국 기업이나 부유층은 극좌 세력의 대두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부자들로부터 빼앗아 빈곤층에 준다"((Take from the rich and give to the poor)라는 표현이 미국에 있는데, 바로 그것을 교육이나 복지정책을 통해 실행하려 하고 있다. 샌더스씨도 이러한 가운데, 자신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지를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북유럽의 "사회주의"는 잘되고 있다고 말해 보기도 하고, 중국은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빈곤으로부터 구해냈다고 말하는가 하면, 중국의 국가주도형 사회구조와 경제시스템에는 경계심을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트럼프씨와 시진핑씨 어느 쪽의 교섭능력이 좋은가 경쟁하게 되고 나서, 미국의 보도는, 중국이 자국시장이나 기업을 가드하면서, 미국의 자유시장의 약점을 찌르는, 일견 영리하고, 일견 불공평하게 보이는 움직임을 분명히 해 왔다. 예를들면 최근의 취재에서는, 중국의 국가정보원이 미국의 전직 첩보원들을 재고용해, 미국기업의 기밀정보를 교묘하게 취득한 것이 밝혀졌다. 마지막으로 기자가 이 같은 사건을 조사한 검사에게 "어느 나라도 첩보활동은 하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중국의 경우, 국가가 기업을 위해 상대국의 기업기밀 정보까지 첩보하는 경우가 최근 몇 년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반대로, 다른 나라의 경우는 국가간, 그리고 민간 간의 첩보활동이 주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초격차 사회가 키우는 사회주의적 사상 과연, 금후의 세계에서는, 당분간(30년 사이클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중국에 보는 듯한 국가주도형 사회·경제시스템이 판을 치게 될까. 그리고, 앞으로의 "사회주의"라는 것은, 과연 20세기에 본 전체주의적인 색채를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것인가. 현재의 홍콩정세를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국가주도형 사회구조나 경제 시스템은, 민주주의를 반드시 어딘가에서 억압한다. 한편, 자유주의 경제가 도달하는 곳에 출현한 초격차 사회는, 대중 속의 사회주의적 사상을 기르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기존의 동북아 정치구조, 즉 북-중-러 대 일-한-미, 라는 두 개의 축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만이 북-중으로 접근할 것이라는 기존 시각의 한발 앞을 읽으면 미국 자체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가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민주주의와 자유경제에 길들여진 나에게 이 과도기는 걱정이다. 사회주의나 국가주도형 경제시스템은 경제발전과 기술개발, 그리고 인권을 가로막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한미를 오가고 있는 직감으로 보면, 과거 일본은 "총중류사회(総中流社会)"라고 불린 적도 있어, 지금 일본이 아무리 스스로를 격차사회로 인식해도, 한국이나 미국에서의 격차의 크기에 대한 실감이 생기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 가령 트럼프 재선의 경우에 있어서도, 캘리포니아나 매사추세츠등에서 판치는 좌파세력이 얼마나 미국의 국정에 영향을 미치고, 일본에는 이러한 미국, 그리고 북동 아시아와 어떻게 마주 할 것인지, 교묘한 방향타가 요구된다. https://jbpress.ismedia.jp/articles/-/57872?page=5 조 씨와 트럼프 씨는 공통적인 측면이 있다. 그것은 게임 플레이어라는 것이다.목적은 권력의 정점에 서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현존의 기회를 잡는다. 그 기회라는 것은 극도로 벌어진 격차로 고민하는 많은 약자가 열렬히 기대하는 기존세력의 파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모순이건 무엇이건. 그런 역학이 현재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민주주의라는 구조를 새로운 방향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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