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노희영 기자 입력 2019.08.16. 17:35
지난 6월20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TV 생방송으로 4시간 동안 진행한 연례 ‘국민과의 대화’에 참여한 러시아 국민들은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 같은 노골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현대판 차르’로 불린 강력한 카리스마와 경제성장 드라이브를 기반으로 집권 20년째를 맞은 푸틴 대통령의 위상이 심상치 않다.
한때 90%에 육박하던 지지율은 50% 밑으로 곤두박질쳤고, 러시아에서는 ‘차르 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생활고에 내몰린 러시아 국민들이 ‘스트롱맨’의 장기독재에 반발하며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들의 불만에 불을 지핀 것은 러시아 선거당국이 다음달 8일 치러지는 모스크바 시의회선거에 유력 야권 인사들의 후보등록을 거부한 사건이다. 지난달 20일 공정선거를 촉구하는 시위가 모스크바에서 열린 것을 시작으로 시위는 매주 규모를 불리고 있다. 시위 4주차인 이달 10일에는 2011년 이후 최대 규모인 6만명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계속되는 시위는 공정선거와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1999년부터 20년째 이어진 푸틴 장기독재에 대한 반발과 피로감, 악화한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99년 8월9일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이 총리로 지명하면서 정치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푸틴은 같은 해 12월31일 옐친 대통령의 전격 사임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2000년 선거에서 대통령 자리를 꿰찼다. 이후 3연임 금지 헌법 조항에 따라 2008년 일단 총리로 물러났지만 ‘상왕’ 노릇을 하며 사실상 집권을 계속했다. 2012년 대통령에 복귀한 그는 오는 2024년 4기 임기를 마치지만 이후에도 집권을 이어가기 위해 개헌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경제악화로 그의 지지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푸틴 집권 초반 러시아 경제는 세제개혁 및 자유경제 정책 도입, 원자재 붐, 해외 자본 유입 등에 힘입어 승승장구했다. 경제는 2000~2008년 해마다 성장했고, 옛소련 같은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실현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지지율도 고공행진했다.
철옹성처럼 보이던 그의 강력한 리더십에 균열이 생긴 결정적 원인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미국·유럽 등 서방권의 대러 경제제재다. 외국계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러시아 경제가 통제체제로 회귀하면서 경제가 고꾸라지자 국민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금융시장 여건 악화, 국제유가 하락 등도 경제둔화에 영향을 미쳤다.
모스크바에 위치한 탈산업연구센터에 따르면 2014~2018년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0.4% 성장에 그쳤다. 다만 크렘린궁이 러시아국가통계청에 수치를 상향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대외적 수치는 이보다 다소 높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의 성장률 예상치를 4월 1.6%에서 최근 1.2%로 낮췄다.
실질소득도 2014~2018년 10.7% 감소한 데 이어 올 1·4분기 2.5% 줄었으며 2·4분기에도 0.2% 축소됐다. 최저생계비 이하 소득의 절대빈곤층 비율은 1·4분기 14.3%로 1년 전(13.9%)보다 높아졌다. 빈곤수준을 2024년까지 절반(6.6%)으로 낮추겠다는 푸틴 4기 정권의 목표는 달성 가능성이 희박해진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연금 개시 연령을 대폭 늦추는 연금개혁안까지 발표해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러시아 최고 경제전문가로 꼽히는 알렉세이 쿠드린 감사원장은 러시아 국민들의 빈곤수준이 악화할 경우 ‘사회적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민심이반은 푸틴 지지율 등 숫자로도 확인된다. BBC 러시아어 인터넷판은 9일 설문조사 회사 폼(FOM)을 인용해 푸틴 지지도가 2001년(42%) 이후 18년 만에 최저치인 43%까지 낮아졌다고 전했다. 한때 90%에 육박했던 데 비하면 반토막이 난 셈이다.
/노희영기자 nevermin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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