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입력 2019.06.27. 05:06 수정 2019.06.27. 09:16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는 이제 한국만의 기업이 아니다. 초국적 기업 삼성전자는 세계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특히 삼성전자의 주요 생산기지로 떠오른 아시아 지역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현실은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한겨레>가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3개국 9개 도시를 찾았다. 2만여㎞, 지구 반 바퀴 거리를 누비며 129명의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설문 조사했다.
국제 노동단체들이 삼성전자의 노동 조건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한 적은 있지만, 언론사 가운데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시도다. 10명의 노동자를 심층 인터뷰했고, 20여명의 국제 경영·노동 전문가를 만났다. 70일에 걸친 글로벌 삼성 추적기는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외면하려 했던 불편한 진실을 들춘다.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당장 고통스러울지 모르나 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판단한다. 5차례로 나눠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다.
삼성은 베트남에 ‘또 하나의 삼성 공화국’을 세웠다. 베트남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막대한 영향력으로 정부를 움직이며 초법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삼성은 삼성만의 규정을 따른다”
삼성 공장 노동권 실태 조사 보고서에 베트남 정부가 보인 반응은 삼성이 베트남 사회에서 가진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삼성 공장 노동권을 조사해 발표하려 하자 삼성은 등장하지 않은 채 베트남 공안과 사회노동부가 먼저 나섰다.
사회주의 체제인 베트남에서 공안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사회 질서를 유지해 국가 체제를 존속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인민을 감시·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의 옛 중앙정보부와 내무부를 합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공안부 산하에 시·군·동으로 이어지는 전국 조직을 갖추고 있다. 특성상 외부로 조직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베트남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베트남 공안 안에 특별한 부서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 관계 부서’라고 불리는 조직이다.
삼성 공장 노동권 보고서에 대해 베트남 공안은 “보고서를 발행하면 물론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며 “베트남 국가 이미지를 생각하라. 삼성을 공격하면 베트남 해외투자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베트남 사회노동부 고위 관료는 보고서 발행 단체를 향해 “이번에는 넘어가겠지만, 더는 삼성 관련 일을 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베트남 국제노동 단체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베트남 공안과 정부는) 100% 삼성의 영향을 받아서 활동한다”고 지적했다.
숫자로 증명되는 삼성의 존재감
베트남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존재감은 숫자로도 증명된다. 베트남은 수출의 71%를 해외투자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삼성이 40% 이상을 차지한다.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의 2018년도 수출액은 600억달러(약 68조원)에 이르는데 이는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3분의 1에 육박한다. 삼성은 갤럭시 스마트폰 절반가량을 베트남에서 만들며, 15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하노이에서 만난 한 국제노동단체 관계자는 “흔히 한국을 삼성 공화국이라고 하지만 베트남은 그보다 더하다”며 “삼성은 매년 10%씩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 경제 지표를 움직이는 가장 큰 축이다. 베트남 경제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기술을 들여와 저임금 노동자들이 완제품을 만들어 미국과 유럽에 수출하는 구조다. 베트남 수출 1위 품목 휴대전화는 삼성만 만든다. 2009년 박닌 지역에 세계 최대 규모의 휴대폰 공장을 지은 이후 삼성은 베트남 정부를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돈의 힘을 가졌다”고 말했다.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소니, 파나소닉 같은 다른 해외 전자 기업들은 기업 구조를 현지화했다. 생산 공정을 현지 관리인이 담당하는 것은 물론 인사와 노무 같은 핵심 경영 역량도 현지인에게 넘긴다. 하지만 삼성은 아니다. 삼성 공장의 내부 구조를 잘 아는 베트남 노동단체 관계자는 “삼성 공장의 내부 구조를 보면, 결정권은 모두 한국인이 갖고, 현지 규정이 아닌 삼성만의 규정을 따른다. 이 과정에서 국제 규범은 물론 베트남 국내법을 전혀 따르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도 베트남 정부는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과 베트남노총은 특수 관계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베트남에서 노동조합은 베트남노동총연맹(VGCL)이 유일하다. 이 조직을 이끄는 브이반끄엉(55)은 베트남 공산당 중앙집행위원이자 재선 국회의원이었다. 베트남 노동단체 관계자들은 “베트남노동총연맹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조직이 아닌, 다스리는 기관”이라고 말한다. 삼성 공장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생일에 작은 선물을 주는 조직”일 뿐이다.
노동자 급여의 3%를 조합비로 걷어 노동조합 간부들은 높은 임금을 받는다. 하지만 노동자의 이익이 아닌 해외 투자자 보호를 위해 활동한다. 때때로 지방 공안과 연합해 노동자 활동을 감시하고 파업 기미를 미리 파악하기도 한다. 한 국제노동단체 관계자는 브이반끄엉 위원장이 “베트남에서 삼성 공장을 가장 극찬하는 인사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베트남노동총연맹 행사를 삼성이 후원하기도 한다. 수백명이 참석하는 대의원 대회에서 참석자 모두에게 삼성이 최신 태블릿피시를 나눠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베트남/김완 이재연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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