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정유정 기자 입력 2019.06.21. 12:01 수정 2019.06.21. 12:14
中 ‘인터넷 통제기술’ 수출
검열시스템 ‘황금방패’ 운영
콘텐츠 지우고 검색어 차단
홍콩시위 후 포털통제 심화
말레이·印·수단 등 45國에
감시시스템·정책 전수하고
러시아 통제망 구축도 지원
“www는 하나가 아닌 두 개”
美·中주도 디지털진영 재편
‘WWW’(World Wide Web)는 실제로 하나가 아니라 두 개다?
1989년 하나의 세상을 모토로 시작됐던 WWW가 현실에서는 양대 체제로 재편되는 상황이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수준을 넘어서는 인터넷 세상의 양분화 현상이다. 미국과 자유민주진영 블록의 인터넷 방식을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침식하고 있다. 중국의 온라인 검열은 단순히 자국을 통제하기 위한 기술로 머물지 않고 권위주의 정권들로 수출되고 있다. 인터넷 검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이들 정권에 중국식 인터넷이 롤 모델이 됐다. 21일 현재 30∼40여 개 국가에서 중국식 인터넷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향후 WWW가 자유주의 대 전체주의 진영으로 양분된다는 전망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20여 년 역사 자랑하는 검열 제도=중국이 자국민의 인터넷 자유를 제한하는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의 위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일어난 홍콩 시위, 톈안먼(天安門) 사태 30주년 추모와 관련해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중국 내 포털 검색창 검열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중국은 ‘황금방패(금순공정·金盾工程)’라는 인터넷 검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유해 콘텐츠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지난 1998년부터 황금방패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유해한 콘텐츠의 선정 기준에 대해 설명할 필요 없이 사실상 모든 내용을 자의적으로 삭제할 수 있다. 해외 사이트의 접속 자체도 수시로 차단 가능하다. 20여 년 동안 운영하며 중국 정부의 검열 시스템은 정교해졌고 기술은 계속 발전했다.
중국의 황금방패는 해외 사이트 접속을 막을 때 도메인 네임 시스템(DNS)을 변조한 방식을 사용한다. 해당 기술을 이용하면 누가 어느 사이트에 접속하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특정인의 접속기록을 추적·감시하는 시스템도 도입됐다.
◇인터넷 세계 양분화 시동=중국 주도의 검열된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향후 사이버 세계가 자유주의 진영 대 전체주의 진영으로 나뉘는 현상이 가속할 전망이다.
지난해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은 약 10년 안에 인터넷이 중국과 미국이 각각 주도하는 진영으로 갈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라”며 “60개국 정도가 일대일로와 연관돼 있는데 그 나라들은 중국이 지닌 기간시설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슈밋 전 회장은 중국 경제·기술의 위협과 관련해 “진짜 큰 위험은 검열과 통제 등을 가하는, 통치에 있어 다른 지도체제가 이들 제품·서비스와 함께 온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경없는기자회 역시 ‘2018 세계 언론자유 지수’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정보 검열 시스템과 인터넷 감시 체계를 수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욕망은 아시아에서 여러 추종자를 낳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담았다.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만리방화벽=실제로 전 세계 각국은 최근 들어 중국을 롤 모델 삼아 자국의 정보통신 정책을 수정하고 있다. 미국의 국제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발간한 ‘2018 인터넷 자유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65개국 중 말레이시아와 파키스탄, 싱가포르 등을 포함한 18개국이 중국으로부터 지능형 감시 시스템과 안면 인식 기술 등을 받았다. 인도와 수단, 베네수엘라 등 36개국은 중국 정부로부터 뉴미디어 및 정보 관리 정책을 전수받았다.
중국은 러시아의 인터넷 통제망 구축에도 도움을 준 바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 세계 인터넷과 분리된 러시아 독자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법안에 서명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중국식 인터넷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인터넷 검열 기술을 전 세계에 수출하며 자국의 내부망 접근도 정당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이버 망명자 늘어나나=국가 차원의 검열이 확산되며 이른바 사이버 망명자들도 생겨났다. 사이버 망명이란 인터넷 게시판, 이메일, 메신저 이용자들이 개인 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자국 서비스 대신 국가기관의 검열이 미치지 않는 해외에 서버를 둔 서비스로 옮겨가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인 사이버 망명자 단체로는 중국에 기반을 둔 단체 ‘GreatFire.org’가 있다. 이들은 차단된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는 플랫폼, 검열된 웹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는 웹 브라우저, 게시물 삭제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블록체인 기반의 메시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에서도 대규모의 사이버 망명이 일어났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시위대는 중국 정부의 견제를 따돌리고 시위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디지털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메신저앱 위챗, 결제앱 알리페이, 온라인 쇼핑앱 타오바오 등 중국 기업이 만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했다. 중국 주도의 검열 시스템이 전 세계로 확대될 경우 중국에서 시작된 사이버 망명자들도 세계 각국에서 생겨날지 모른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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