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이지은 기자 입력 2018.11.25. 04:30 수정 2018.11.25. 08:08
“우이신설선이 생기고 출퇴근 시간이 전보다 15~20분 정도 줄었습니다. 그런데 경천철이 생겼다고 무조건 집값이 오르는건 아니네요.”(우이동 주민 김모씨)
지난 19일 오전 8시쯤 찾은 서울 경전철 우이신설선 성신여대입구역. 2량짜리 ‘미니 전철’이긴해도 출발점인 북한산우이역에서부터 경전철 열차 안은 출퇴근 인파로 붐볐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 2호선, 9호선 열차처럼 사람이 숨 쉬기 힘들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승객이 많아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이 지난 9시 30분이 되자, 열차 좌석은 20~30% 정도만 찰 정도로 텅텅 비어버렸다. 신설동역에서 지하철1·2호선으로 환승 통로로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지난해 9월 개통한 서울의 첫 경전철 우이신설선이 개통 1년 2개월째가 됐다. 우이신설선은 계획 발표 때부터 강북구 부동산 시장의 ‘초대형 호재’로 통했다. 북한산우이역에서 신설동역까지 총 11.4㎞를 잇는 이 노선의 전체 역 13개 중 절반 이상인 8개가 강북구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강북구에는 지하철 역이 3개(4호선 수유역·미아역·미아사거리역)밖에 없었다. 우이신설선 개통으로 강북구의 대부분 동네가 역세권이 되면 출퇴근이 편리해질 뿐 아니라 집값도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정말 우이신설선은 강북구 부동산 시장에 ‘대박 호재’였을까. 땅집고가 개통 1년을 넘긴 강북구 부동산 시장을 조사했다. 현장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경전철이 강북구 집값 상승에 기여한 정도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역세권’ 대접 못 받는 경전철 인근
실제로 지난 1년간 서울 집값이 급등했지만, 우이신설선 주변 아파트 가격은 ‘경전철 개통’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거의 변화가 없었다. 북한산우이역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성원상떼빌아파트 전용 84㎡는 지난 10월 3억2000만원에 팔렸다. 1년 전인 지난해 10월 3억2850만원에 팔린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었다. 솔밭공원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우이동푸르지오아파트 전용 84㎡도 올해 9월(4억2600만원)과 지난해 9월(4억6000만원) 집값이 비슷했다.
화계역·가오리역을 끼고 있는 수유동의 경우 극동아파트(1992년 입주) 전용 84㎡는 올해 24건 거래 중 20건이 3억2000만~3억5000만원에 이뤄졌다. 지난해 매매 신고된 20건 평균이 3억4100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변화가 없다. 북한산우이역·솔밭공원역·4.19민주묘지역이 있는 우이동 집값도 마찬가지로 별 차이가 없었다. 지난해 6월 2억9000만원에 팔렸던 북한산굿모닝아파트(2003년 입주) 전용 77㎡는 올해 10월 3억원에 거래되며 1000만원 올랐다.
우이동의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집값만 제자리걸음일 뿐 아니라 새로운 상가 하나 들어서려는 기미조차 없다”며 “경전철 호재가 강북 부동산 가격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했던 집주인들의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지하철 보조 역할에 그쳐…집값 견인은 역부족
통상 서울의 전철 주변 집값은 개통 직후부터 10~20%씩은 올랐다. 하지만, 경전철인 우이신설선은 부동산 시장에 영향이 거의 없었다. 이유는 일반 전철과 달리 경전철은 일반 전철의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기 때문이다. 경전철은 통상 지하철 1~9선이 개통한 이후에도 남아있는 서울의 '전철 오지'를 대상으로 노선을 설계한다. 기존 전철 노선과 서울 외곽 지역을 연결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경전철은 서울의 핵심 업무 지역인 광화문·강남·여의도로 직접 연결되는 경우가 드물다. 전철에 비해 교통 개선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경전철 수송량도 일반 전철에 비해 크게 적다. 도심이나 업무지구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요가 적어 보통 2~3량짜리 소규모 전철로 운행한다. 수송 인원 자체가 적다보니 유동 인구 변화·상권 형성 등 지역 발전 기여도도 낮다. 2량으로 운행하는 우이신설선 열차의 경우 한번에 170명만 태울 수 있다. ‘황금 라인’이라고 불리는 지하철 2호선 정원이 약 1600명, 9호선이 600명 정도인 것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수송량이 적다.
실제 경전철 이용률은 저조하다. 개통 전 우이신설선 예상 수요는 일 평균 13만명이었다. 하지만 서울시에 따르면 개통 직후인 지난해 9월 2~8일 우이신설선을 이용객은 하루 평균 5만8559명으로 예상치의 44% 정도에 그쳤다. 한국철도공사는 개통 1년째인 지난 8월 기준 우이신설선의 수송 실적은 13만7791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외곽 지역 특성상 65세 이상 노인 이용객 수가 많아 우이신설선 무임 승차 비율이 35% 정도로 높은 것은 여전히 문제로 꼽힌다. 서울 지하철 무임 승차 비율(14.7%)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어서 앞으로 운영난까지 예상되는 상황이다.
■“집값과 별개로 인프라 개선 효과” 반론도
우이신설선이 아파트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서울에 신설할 동북선·서부선·난곡선 등 10여개 경전철 효과도 미미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건설사들이나 부동산 업계에선 경전철을 두고 ‘대박 호재’라는 주장하는 것이 과장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하지만 전철 교통 오지에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집값과 별개로 긍정적인 효과는 확실하다는 반론도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외곽 지역에 산다고 버스만 타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느냐”며 “경전철 노선이 여럿 생기면 주택 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도심 교통 혼잡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재언 미래에셋대우 부동산VIP컨설팅팀 수석매니저는 “위례신도시 집값을 높인 ‘위례신사선’처럼 노선에 주요 업무지구를 포함시키면 경전철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운영 적자는 요금을 인상하거나 고령화 사회에 맞게 현행 65세 이상으로 규정된 노년층 무임승차 기준을 상향하는 방안 등으로 보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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