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기 기자 입력 2018.11.16. 11:50 수정 2018.11.16. 12:03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이 최근 "중국은 주제파악부터 해야 한다"며 시진핑 주석에게 일격을 가했다.
이 그림에 정작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 동상은 뒤에 작게 나오는데 비해 시 주석의 모습은 한가운데에 가장 크게 나온다.
이토록 시 주석이 덩샤오핑을 깎아내리는 것은 자신의 권위를 더욱 높이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두 집안에 약간의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이 최근 "중국은 주제파악부터 해야 한다"며 시진핑 주석에게 일격을 가했다. 주제파악도 못하고 ‘중국몽’을 외치는 시 주석에게 대놓고 쓴소리를 한 것.
이는 시 주석이 덩샤오핑의 업적을 모두 폐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덩샤오핑 외교정책의 기본이었던 도광양회(韬光养晦,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뜻)는 물론 집단지도체제를 폐기하고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이에 따라 중국이 다시 마오쩌둥 시절로 돌아갔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덩샤오핑 업적 지우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위 그림은 중국 공산당이 최근에 제작한 것으로, 개혁개방 40주년 기념작이다. 이 그림에 정작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 동상은 뒤에 작게 나오는데 비해 시 주석의 모습은 한가운데에 가장 크게 나온다. 개혁개방 '선전화'에 덩샤오핑이 가장 가운데, 가장 크게 나오지 않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시 주석은 자신의 우상화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아버지 시중쉰의 우상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중쉰은 개혁개방 초기, 개혁개방의 요람 광둥성의 공산당 당서기였다. 최근 시 주석의 아버지는 개혁개방의 근거지를 이끈 지도자로서, 중국 공산당 선전화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시중쉰을 빛내는 것은 물론 덩샤오핑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
이토록 시 주석이 덩샤오핑을 깎아내리는 것은 자신의 권위를 더욱 높이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두 집안에 약간의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시중쉰은 1980년대 초반 개혁개방의 성지인 광둥성 당서기를 맡아 개혁개방을 훌륭하게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광둥성에서 큰 업적을 쌓았음에도 중앙 요직에 발탁되지 못했다. 시중쉰은 80년대 후반부터 특별한 직책을 맡지 못했고, 2002년 사망했다. 시 주석은 이를 상당히 서운해 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그 뒤로 꼭 10년 후인 2012년, 시 주석이 정권을 장악했다. 그는 정권 장악 후 모든 덩샤오핑의 업적을 갈아엎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공산당 지도’라는 명목 아래 시장경제를 대거 후퇴시킨 점이다.
덩샤오핑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보다 못한 덩샤오핑의 장남이 직접 나섰다. "주제 파악이나 먼저 하라"며 시 주석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그렇다면 양 집안의 다툼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덩샤오핑가의 승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은 '권력'으로 통치하지만 덩샤오핑은 '권위'로 통치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은 생전에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만 오래 유지했을 뿐 별다른 직책을 맡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무관의 제왕’이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그는 전권을 행사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덩이 권력이 아니라 권위로 통치했기 때문이다.
권력으로 통치한 마오쩌둥은 사후 문화혁명이 부정당했다. 그러나 권위로 통치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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