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입력 2018.06.09. 09:04
5년간 3000억 규모 기금 조성
정부, 사회적 기업 투자 활성화
민간투자 위해 인센티브 계획도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는 사회의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는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재무적 수익도 얻고 사회적 가치 창출에 이바지하는 두 가지 목적을 실현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2007년 미국 록펠러재단이 이탈리아 벨라지오에서 개최한 회의에서 이 말이 등장했다. 이 같은 의미에서 정치적 지향점을 함께하는 후보를 지원하고 수익을 기대하는 선거펀드도 일종의 임팩트 투자로 여겨진다.
사실 임팩트 투자와 비슷한 형태는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관심을 받았다. 당시 수익률만 쫓는 투자는 오래 갈 수 없다는 반성과 함께 사회적 가치를 투자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투자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올랐다.
글로벌임팩트투자네트워크(GIIN)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시장에 운용되는 임팩트 투자의 자산 규모는 1,140억달러(약 123조원)에 이른다. 이중 지난 한 해 동안 투자된 금액만 259억달러(약 28조원)에 달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핀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기업 CEO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회적 임팩트를 고려하며 장기 성장 전략을 짤 것을 주문했다. 이 편지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되며 주목을 모았다. 골드만삭스, 베인캐피털 등 자본시장의 큰손들은 물론 연기금 역시 임팩트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의 투자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어큐먼펀드는 인도, 파키스탄 등 저개발 국가에 물, 식량, 의약품 등을 싸게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에 투자해 연 평균 7%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정부 주도 임팩트 투자 전용 펀드 첫발
국내 임팩트 투자는 걸음마 단계지만 올해가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정부가 사회적 기업에 대한 투자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는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2월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앞으로 5년 동안 3,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사회가치기금(Social Benefit Fund)을 만드는 내용의 ‘임팩트 금융(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는 영국에서 2012년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이끈 빅소사이어티캐피털(BSC)을 모델로 한다. BSC는 휴면 예금(4억 파운드)과 4대 은행의 출자(2억 파운드)를 기반으로 6억 파운드(약 1조원)를 만들어 사회적 기업을 돕고 있다. BSC가 중간 지원 기관에게 자금을 주면 이들이 사회적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방식이다.
한국형 사회가치기금도 민간의 자발적 기부와 출연을 중심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기금 운용은 정부와 독립적으로 진행된다. 민간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다. 임팩트 투자를 위한 정부와 공공 재원도 크게 늘린다. 신용보증기금과 지역신용보증재단의 사회적 경제 기업 특례 보증을 올해 550억원으로 확대하고 신보에 2022년까지 5,000억원의 보증 공급이 가능한 사회적 경제 기업 계정을 따로 만든다.
모태펀드를 운용 중인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한국벤처투자는 연내 1,000억원 규모의 임팩트투자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모태펀드는 정부 기금을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벤처캐피털에 출자하는데, 소셜벤처가 주요 대상이다. 성장사다리펀드를 운용 중인 금융위원회 산하 한국성장투자금융운용(성장금융)은 300억원 규모의 사회투자펀드(사회적 기업 투자 분야 100억원, 임팩트 투자 분야 200억원)를 조성한다. 모태펀드가 창업 단계의 기업에 투자를 많이 하는 반면 사다리펀드는 주로 성장, 회수 단계의 기업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앞서 서울시도 2012년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의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면서 현재 약 600억원 규모의 사회투자기금을 마련해 사회적 기업에 대한 자금을 투, 융자하고 있다.
대기업, 금융권 손잡고 사모펀드 실험도
민간 부문도 임팩트 투자 확대를 위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SK행복나눔재단(40억원), IBK투자증권(60억원), KEB하나은행(10억원)이 공동 출자해 국내 최초의 사회적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사회적 기업 전문 사모투자신탁 1호’가 출범했다.
특히 SK는 사회적 기업의 경영 활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계량화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더 많은 일반인들이 임팩트 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측정한 뒤 재무제표 등을 통해 공시해 투자자,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이 회사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SK, 사회적 가치를 화폐 가치로 측정하는데 박차
2015년부터 지원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을 대상으로 사회적 가치를 화폐 가치로 측정해서 현금으로 보상하는 ‘사회성과 인센티브제’를 운영해 오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130개 기업이 그 대상이며, 취약 계층을 얼마나 고용했는지, 상품 만들 때 재활용 쓰레기를 얼마나 활용했는지, 취약 계층 위한 상품을 시장 가격 평균보다 얼마나 더 싸게 제공했는지 등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SK사회공헌위원회 관계자는 “SK사회가치연구원과 관련 학계 전문가들이 해당 평가 기업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수정, 보완을 하고 있다”며 “한국수자원공사, 코레일, 한국가스공사 등 공공기관에서도 이 측정 기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 투자에 대해 세제 혜택 등 제도적 검토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회적 기업 투자 플랫폼을 운영 중인 박기범 비플러스 대표는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것처럼 사회적 기업에 대한 투자도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일반인들이 더 많이 참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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