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북한을, 북한 당국을, 북한의 일꾼들을 바라보는 시각...>>>

남북경협

by 21세기 나의조국 2018. 1. 7. 11:06

본문




북한을, 북한 당국을, 북한의 일꾼들을 바라보는 시각...     

Forus | 조회 192 |추천 7 |2018.01.05. 15:34 http://cafe.daum.net/agoodcapitalism/fv9c/81  

      


경제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북한과 협력해야 할 이유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세계와 비교해도 매장량과 품질에서 우수한 지하자원 하나만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북한의 정치적, 지정학적 이유로 말미암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쏟아 붓는 재정적 지원을 고려했을 때, 절대 그들이 북한을

홀로 내 버려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나진이라는 항구는 중국으로 하여금 태평양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되어 주고 있고, 러시아에는 상시 부동항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4개의 접안시설 중 2개는 러시아, 2개는 중국이 투자해서

이용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주요 광산 개발권이 중국에 넘어가고 있고, 몇 년전 러시아가 북한의

철도 현대화 사업 투자 조건으로 희토류를 비롯한 고가의 비금속

광물 채굴권 계약을 한 것은, 우리가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서둘러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노동의 질과 임금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북한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우리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조성한 개성공단 사업이

몇몇 정신 줄 놓은 자들에 의해 정당한 절차 없이 하루아침에 폐쇄를 맞은

상황을 알게된 이 시점에, 그리고 진출했던 업체들의 어려움을 고려하면,

우리 정부의 발걸음이 빨라 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럴 때 일수록, 미국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북한, 북한당국, 사업에 종사하는 북한의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접촉할 것인가를 충분히 학습을 하고

느리지만, 꾸준하게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떤 이해를 하자는 것인가?

 


수년 전 늦은 저녁 지인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몇 년 동안 연락이 없던 차라 안부부터 서로 물을 수 있는데,

얼마나 다급했는지 용건부터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내용은...

 

북한에 있는 친척 누이가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고 자신을 중국 농부에게

스스로 팔고 넘어갔는데, 어떻게 연락이 닿아서 있는 곳을 아니, 한국으로

들어 올 수 있도록 도와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방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는 남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팔았다는 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북한의 국민들이

당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말을 여러분이 들으면, 특히 이런 말을 과거 수구정권들이

했다면, 설마 그러겠냐며, 전혀 신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직접 하기도 하고, 러시아, 중국등에서

일하는 북녘 사람들과 탈출한 사람들, 한국으로 왔던 탈북민들과

상당시간 접촉을 했던 저로서는 지인의 친척 상황이 현실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으로 이해 되었습니다.

 

 

간간이 소개했던, 1991년 모스크바 대학 기숙사에 있을 때,

대학에 수학하던 북한 학부생들은 모두 소환되고, 오직 8명의 대학원생들만

남아있었습니다.

 

8명은 결혼을 한 상태로, 부모, 아내, 자녀가 북한에 있는 경우 였습니다.

 

이들 8명은 매주 영사관에 모여, 자아비판, 타자비판, 상호비판, 문서비판을

하였습니다.

 

당시 쏘련과 북한을 비교 연구로 논문을 쓰고 있던 저로서는 이들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모스크바 대학이라는 공간이 매우 가치가 있었습니다.

 

각자의 가족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서 대학 한 곳에 마련된

국제전화실에서 오랫동안 앉아 순서를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고향을

서로 이야기 했고, 기숙사 식당에서 자리를 같이 하고 유학 생활의

경험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중, 8명의 대표격인 ‘S’는 제 방으로 와서 러시아 말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를 통해 지식인으로서 북한에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여름 쯤 대학원생 한명이 졸업하고 돌아가는 날, 보드카 큰 병 하나를

선물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떠나 갔습니다.

 

나중 내 얼굴이 텔레비젼에 비추면, 꺼주라요. 아마 박수치고 있는

모습일게요...“

 

 

'S'에 따르면, 자신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소식은 고르바쵸프

글라스노스찌(개방) 정책으로 보도되기 시작한 각국의 뉴스였는데,

특히 남한에서 자주 일어나는 시위와 시위에서 나온 구호였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위나 지도자를 몰아내자는 구호는

남한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으로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글을 쓴 루이제린저를 들었는데,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험악한 단어를 써가며 욕을 해댔습니다.

 

그에 의하면, 그녀는 보여준 모습만 보았지, 봐야할 것, 보이는 것 이면의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를 못한 채 글을 써서 북한의 실상을 철저히

왜곡되게 세상에 알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한국 영사관으로 들어갔는데, 이는 곧 탈출을 의미합니다.

 

모스크바 주재 북한 영사관은 내가 그를 납치 했다고 신고했고,

이 일로 인해, 저는 러시아 당국에 새벽에 강제 연행 되어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S' 역시 영사관에서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결국

야심한 밤을 이용 영사관을 나와 현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목사의 도움을 받고 한동안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김일성 대학 수석졸업자이자, 모스크바 대학원 졸업자인 그의 세속적인

미래는 완전히 보장된 삶이었습니다. 평양에 거주하며, 최고의 명문 대학을

우수한 성적에 졸업한 그를 기다리는 직업은 김일성 대학 교원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수 년 동안 살면서 경험했던 자유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날 지나가는 말로 ‘S'가 남한으로 가는 것을 잠깐 언급했을 때

저는 철저히 반대했었습니다.

 

남한의 민주주의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이만큼이라도 온 것이다.’

북한의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라

북한으로 가서 교원으로 활동하며, 당신이 생각하는 자유를 얻기 위해

피를 흘려라.‘

...

 

‘S'는 거주지가 노출되어, 북한 대학원생들에게 거리에서 붙들렸으나

큰 소리로 러시아 사람들에게 구조를 요청하여, 풀려났고, 이후 러시아

정부가 개입하여, 정치난민과 비슷한 지위를 얻어, 결국은 그가 바라던

남한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 영사관은 북한의 가족을

불러 그와 대면을 시켰지만, 그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S'에게 북한으로의 귀향을 막았을까요.

 

그것은 자유였습니다.

 

자신을 개로 생각하면 갈 수 있지만,

단 한 순간이라도 자신을 인간으로 생각한다면 돌아갈 수 없다고 한

'S'를 통해, 북한 사회의 통제가 얼마나 심한 지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는 나중 러시아 등에서 북한 노동자를 접했을 때도 똑 같은 상황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몇백명이 나와서 일하고 있지만, 감독관을 제외한 노동자 모두는

어떤 이동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일터와 기숙사. 그 외의 공간은 일절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중국의 시골과 러시아의 시골의 삶과 사람들을

한 단계 아래로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들의 남루한 옷과 집과 얼굴과 행위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북녘동포를 우리가 그들을 내려다보는 그 아래로

보고, 그렇게 대하고 있음을 봅니다.

 

일하는 내내 남루한 복장으로 기숙사와 일터를 오가는 사람들,

눈치를 보듯 외부자를 경계하는 시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접촉을

감시하는 감독관의 구겨진 인상...

 

자신의 일터와 시장과 야외를 자유로이 오가는 러시아, 중국 사람들이

북한 노동자에 대해 갖게 되는 시각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북한 개인의 자유는 철저히 통제되고 있고,

일반적인 개인의 경제적 상태는 매우 열악합니다.

(우리와 비교하면, 1970년대 초중반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평양은 제외합니다.

 

평양은 매우 특이한 도시로 봐야 합니다.

 

제한된 재원으로 핵개발에 전념해 왔듯이 북한은 다른 대부분의 지역이 열악해도,

평양만은 집중 개발해 온 것이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Jtbc에서 방영된 평양을 보고, 다른 도시도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물론 강도 높은 제재속에서도 평양이나 두어개의 도시를

그렇게 발전시켜 온 것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한 조직의 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강력하게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것은 KGB입니다.

(오래전 이름이 바뀌었습니다마는 KGB라 하겠습니다.)

 

러시아 국민 사이에서도 누군지 몰랐던 푸틴은 KGB 출신이고

그는 옐친 이후 지금까지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무려, 26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 김일성 3부자의 대를 이은 통치라는 전 세계적으로

왕정을 제외하곤 볼 수 없는 정치권력의 계승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김정은 체제를 만들어 내는 당과 군부의 핵심 세력들의

힘이 그 만큼 강하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이러 하기에, 'S‘의 표현데로 인민에 의한 민주적 정치 시스템 확립은

요원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부적 힘이 없다면, 불가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인데,

저는 일부만 동의할 뿐입니다.

한 나라의 변화는 그 나라 국민의 힘에 의해 주도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일당 지배라는 시스템을 용인하기에,

시스템 자체에서 관료주의와 소수 독재가 쉽게 자랄 수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러시아 시골 사람들이 개으를 거라는 아무 근거가 없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을 때, 시골에 가서 그것도 시베리아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니 농부들은

오히려 부지런하고,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 농기구가 필요한데, 이를 농기계

임경소라는 것을 만들어 농민이 아닌 관료가 운영케 하니, 좋은 농기계를

빌리기 위한 로비가 작동하고 이로 말미암아 관료만 배부르게 되는 상황이

수십년 동안 연출 된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그 철학과 원리가 문제라기 보다는

관료주의와 탐욕을 가진 소수 독재로 말미암아 무너져 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관료주의와 독재가 내부의 사람들의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억압해도,

외부에서 그들과 협력할 때는 장점으로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가령,

북한에서 공단이나 광산 개발에 필요한 인력을 걱정할 때,

북한 당국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이번에 제대하는 인원들을 모두 보내줄 수 있습네다.“

 

...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기에 더욱 놀랍니다.

 

소수의 권력자와 협의하면 일이 빨리 풀어질 수 있는 반면

현장에서는 신속히 일을 진행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누가 최고의 결정을 해 주는 지 헷갈릴 때도 있고, 알았다 해도

그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경우,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경제를 구축해 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이는 북한의 당국자라면 누구나 갖는 생각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자부심에 괜한 상처를 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오랜 시간 독재와 관료주의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기에

융통성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점, 우리와 비교해서 턱없이 가난하게

살아왔다는 점, 남은 것은 자존심 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대화를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가장 융통성을 많이 발휘하는 것이 외화벌이 일꾼이라는

북한의 무역상들 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국제 무역 관행도

혀를 차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개성공단이 생겨 우리 기업인이나 관리자가 직접 관리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사고가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이는 그들의 사고가 아직까지, 소비자와 시장경제(또는 경쟁)에 제대로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북쪽에서 국내산 제품을 수입하고, 대금의 일부를 고사리로 보낸다고

한 경우입니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국내 고사리 수입 판매상을 만나 고사리 샘플을 건내고,

검증을 거친 후 수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검역 후, 제품을 보니, 고사리 대부분이 까만 색이었습니다.

샘플은 분명 밝고, 연한 고동색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까만 색이 나올

수 있을 까?

 

이를 중개한 제일동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고사리를 채취했습니다. 북쪽의 고사리는 얇고 향기도 좋습니다.

그리고 삶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삶아서 말린 것을 샘플로 우리에게 보내 주고

품질을 인정받자, 계속 삶기 시작했습니다.

통상 우리나라에서는 일정량을 삼으면 그 물을 버리고, 새 물에 고사리를 삼습니다.

그런데 북쪽에서는 한번 삶은 후 검게 변한 물에 계속해서 몇 톤의 고사리를

삶아 버렸습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고사리가 검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실은 전해들은 북쪽의 외화벌이 일꾼의 말이 가관입니다.

 

맛은 똑 같습니다’.

 

맞습니다. 맛은 똑 같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판매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 덤핑으로 물건을 넘겨야만 했는데, 가끔 시장에서 고사리 묶음에 보이는

검은색의 고사리를 볼 때면 쓴 웃음을 짓습니다.

 

 

다른 예는 중국 배를 이용 북한 배가 잡은 명태를 들여오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명태 수입상이 일을 하다 어려움에 봉착하여 도와주는 형태로 참여했습니다.

 

과정과 결론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수입상은 중국 배를 임차하여 북한으로 보냈습니다.

보낼 때는 높이가 5cm 정도 되는 스티로폼 상자와 얼음을 배에 잔뜩 실어 보냈습니다.

그런데 중국 배 선장은 그 스티로폼과 얼음을 다 뺐기고,

높이고 15cm에 아무런 정선(Sort)과정 없이 담겨진 명태를 얼음도 없이 담아왔고,

부산항에 도착했을 때는 썩기 시작해

전량을 사료회사에 거의 공짜로 넘겨야 했습니다.

 

수입상은 배 임차비를 비롯, 각종 자재비와 인건비등 수억을 날려야 했습니다.

문제는 누구도 이 손해에 대해 책임을 져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말은 북한과의 어떤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우리가 주도해야 하고, 그 과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을 만들고,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결국 일을 시작하지 않아야 됩니다.

 

방송에서 보여준 마식령 시키장 리조트 한 실의 하루 숙박비를

북한 직원이 미화 450불이라 말했습니다.

 

이 직원의 월급이 많이 생각해줘도 5불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저 돈이 크긴 한데, 얼마나 큰 돈 인지 짐작을 못할 것입니다.

 

정작 문제는 손님이 오던 않오던 이 직원의 심리 상태는 큰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말로 걱정을 해도, 심장은 똑 같은 템포로

뜁니다.

 

북한의 현재 모습은 러시아의 1990년 겨울의 모습과 약간 닯았습니다.

 

러시아는 전역이 자본주의에 노출되었고, 북한은 제한적으로

일부만 노출된 것이 큰 차이입니다.

 

초기 2,3년 러시아 식당의 문은 늘 닫혀 있고, 짙은 천으로

입구가 가려져 있었습니다.

 

틈새로 보면, 자리가 거의 비어 있지만, 찾아온 손님에게 하는

말은 늘 같았습니다.

 

자리가 다 예약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급료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나름 살 궁리로 장사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지만, 급료를 받는 사람들은 러시아의 식당 종사자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인 정부가 지난 9년 동안 MB와 닭근혜 정부가 망쳐 놓은

외교를 다시 세워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나름 주도권을 잡고 남북 문제를

해결해나가고자 합니다

 

이에 대해 기쁘고, 자랑스럽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상대를 평가하고, 대할 때, 자신이 늘 보아왔던

정보에 기초하기 마련입니다.

 

경제 압박이 점점 강해져서, 북한으로 향하는 유조선마저 막고 있는

현 상황에서 북한이 현재의 경제 난국을 풀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편안한 길은 우리와 협력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권력 누수를 절대로

허용코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경제가 어렵다 해도, 북한과 비교할 것은 아닙니다.

다른 말로 우리가 허용해 줄 수 있는 여력이 북한보다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협상의 키를 쥐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저는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남북한을 전면 개방하면, 북한에서 1천만명의 거지가 남하할 것이라고요.


심하게 들리시죠?

 

저는 확신할 정도입니다.

 

북한은 현 체재로 유지되면서, 우리와 경제협력을 통해 아주 서서히

변해가야 합니다.

 

북한과의 공단사업, 관광사업, 지하자원 사업.

미뤄두었거나, 중단 된 일들을 서서히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다만 상대의 심리적, 현실적 상황에 대해 충분한 이해 속에서

그들과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한편 우리가 가장 서두를 것은 남북한 이산가족의 만남입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혈육간의 만남.

한으로 남아가고 있는 이 만남을 성사키시고, 지속시켜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10~30년 동안은 

이를 통일이라 인식할 것입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