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7.02.05 09:31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 정권이 출범한 지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란에 대한 매우 압축적인 선제 공세와 이란의 정면 대응으로 두 나라의 관계가 빠르게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대화와 외교적 해법보다는 힘의 대결로 치달으면서 중동은 물론 국제사회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노골적으로 이란을 적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도저식' 언행과 결정은 조지 부시 전 정권 시절을 연상케 한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2년 1월 연두교서에서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처음 지목하면서 임기 내내 대치했다.
이란이 '미사일과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고, 테러를 수출하는 나라'라는 이유에서였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4일 이란을 세계 최대 '테러지원국'(state sponsor of terrorism)으로 부른 것과 일맥상통한다.
트럼프 정권이 이란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고리로 제재 대상을 새로 추가하는 등 이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도 2002년 악의 축 발언에서 사용된 논리다.
미국 정부가 이란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신규 제재를 부과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1월16일 핵합의안(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이 이행됐다고 서방과 이란이 선언한 바로 다음 날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시험과 관련해 재제 대상 11곳을 새로 추가했다.
다만, 당시엔 두 달 전과 석 달 전 벌어진 이란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엔 산하 이란제재위원회가 안보리 제재 결의안 1929호를 위반했다고 판단한 뒤에야 이를 근거로 제재가 부과됐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일주일 정도 뒤 속전속결로 제재를 부과했다.
제재 대상도 이란 기업과 개인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이번엔 중국과 레바논 등 이란 외 대상도 포함됐다.
이란의 '적대 행위'에 대한 대응의 범위와 속도가 그만큼 강화됐다는 뜻이다.
이란은 탄도미사일 개발이 자주 국방력을 보유하려는 목적이라면서 미국의 움직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또 부시 전 대통령이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불렀을 때 이란은 역사상 가장 친서방·개혁적이라고 평가되는 모하마드 하타미 정권이었다.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도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적성국 미국과 핵협상을 타결한 중도·개혁파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2002년 악의 축 국면과 유사하다.
15년 전 악의 축 상황이 '평행 이론'처럼 현재에 적용되리라는 근거는 없지만, 이 발언 뒤 이어진 국제 정세를 참고해 볼 필요는 있다.
공교로울 수도 있지만 이 발언이 나온 그해 말 악의 축에 포함됐던 북한의 핵문제가 불거졌다.
이듬해 2003년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의 우라늄 농축이 수상하며, 이란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안전보장협정의 조건을 이행하지 못한다고 발표하면서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이 본격화됐다.
2015년 12월 IAEA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이란은 2003년 말 이전부터 핵무기 개발 관련 활동을 했고 그 이후에도 2009년까지 일부 진행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2005년 대선에서 강경 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권이 탄생한 배경이 미국 정부의 강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불과 석 달 뒤 예정된 이란 대선에도 '트럼프 변수'가 주목된다. 이 선거에서는 로하니 현 대통령이 재선을 노린다.
부시 정권은 2003년 초 대량파괴무기를 이유로 또다른 악의 축 국가인 이라크를 침공,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아냈다. 그 결과 이라크엔 친이란 시아파 정권이 들어섰고, 소외된 수니파 원리주의 세력은 테러단체를 조직해 현재 이슬람국가(IS) 사태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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