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왜 창업교육을 하는가. 청년들의 '먹고사니즘', 즉 취업 또는 창업지원정책의 중심에는 대학이 있다. 대학의 창업교육은 미국 영국 스웨덴 등 글로벌 트렌드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독 우리 대학에선 창업교육이 취업난의 돌파구처럼 여겨지면서 곳곳에서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대학 창업교육 현장의 당사자들, 즉 대학 내 창업보육기관 운영실무자 3명, 대학 창업보육기관 입주기업 대표 2명, 창업교육 강사 2명, 해외대학 창업교육 경험자 2명 등 10여 명과 만나 문제점과 해법을 찾아봤다. 첫 번째로 대학은 왜 창업교육을 하나, 두 번째 대학생 창업가들이 말하는 창업교육프로그램의 문제점, 마지막으로 미국, 영국 등 해외 대학창업교육 사례를 통한 대안 모색의 순서로 짚어본다. [편집자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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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셰필드대학교의 창업수업 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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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에서 가장 우수한 젊은이들은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대부분 대기업이나 공기업 같은 크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기를 꿈꾼다. 대학시절의 상당부분을 취업용 스펙 쌓기에 주력하는 것이 2017년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시선을 해외로 돌려 미국이나 영국의 젊은이들은 어떠한가. 페이스북, 에어버앤비, 우버의 성공신화를 보고 자란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창업을 꿈꾸는 경우가 많다.
<조선비즈>보도에 따르면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arvard Business School)은 2012년 신입생 900명 전원을 창업에 직접 뛰어들게 하는 '필드(Field)' 프로그램을 MBA 최초로 시도했다. 9월 시작되는 첫 학기부터 창업계획서를 제출하고 3단계의 필드(Field) 과정을 거쳐 학기 중 실전 창업을 해보게 하는 것으로 설립 90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실험으로 알려졌다.
노동집약적 시스템인 대기업이 지배하던 시대는 지나고 혁신적인 기업가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는 시대다. 우수한 인재들이 얼마나 창업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느냐는 이제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인재가 모이는 대학에서 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기업의 인재상 역시 달라지고 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글로벌창업벤처대학원장)는 "과거에는 말 잘 듣고 실수 안 하는 사람을 필요로 했다면 지금은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해나가는 인재를 원한다. 바로 창업가적 행동양식, 앙트러프러너십을 갖춘 인재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따라 대학 역시 새로운 육영이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앙트러프러너십 교육은 경영대학 뿐만 아니라 의과대학, 신학대학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해외 성공사례를 보고 창업의 꿈을 키우는 대학생들에게 우리 대학이 앙트러프러너십을 가르치는 방법 역시 훨씬 더 정교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창업교육에 임하기에 앞서 대학 스스로 이 부분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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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넬대학은 2010년이후 대학의 핵심전략으로 'The Entrepreneurial University'를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 방향에 가장 핵심적인 프로젝트가 바로 Cornell NYC Campus 프로젝트이다.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 재직 시절 뉴욕시를 기술기반 도시로 변혁하겠다는 정책방향을 기회로 삼아 코넬대학은 뉴욕시에 공대를 중심으로 한 캠퍼스 구축 프로젝트를 착수했다.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루즈벨트섬에 위치한 코넬대학 뉴욕시 캠퍼스는 코넬대의 미래를 완연히 바꿀 수 있는 ‘제2의 창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 이영달 동국대 경영대학원 교수 | 관련사진보기 |
대학 강점 따라, 지역특색 따라... 고유한 창업교육 모델 필요
그렇다면 '전국 400여개 대학이 모두 창업교육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인터뷰에 응한 10여명 대부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특히 지방대의 창업교육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지방의 각 대학에서 열리는 경진대회 대부분 장소만 지방일 뿐 수도권 참가자들이 지원하므로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역 특색에 맞는 특화된 창업교육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강원지역 대학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 더빔 이성준 대표는 "취업이라는 판에서 서울 친구들은 이미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지방대생은 선택의 폭이 더 좁다. 창업에 있어서 서울과 지방은 인프라의 차이가 있을 뿐 마음속 열정은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5년도 중기청의 대학생대상 R&D 공모사업에 선정된 100팀 중에는 지방대 학생들이 70%에 달했다. 지방대생 사이에선 취업보다 창업을 하는 것이 수익성이 더 좋은 선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10여명의 창업교육 관계자들은 이구동성 창업 성공여부는 창업자의 학벌이나 외적인 스펙보다 괜찮은 아이디어와 얼마나 큰 열정을 갖고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 기회의 문은 서울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방의 대학생들에게도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창업 인프라의 편중 현상은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서부 실리콘밸리와 동부 일부지역에 스타트업이 편중돼 있고 우리나라도 서울 일부지역인 강남과 성남시 판교에 밀집해 있어 지역편차가 심하다.
김도윤 고려대 교수(스타트업연구원 연구교수)는 "전국 대부분의 대학에 창업보육기관을 두고 평가를 위한 지표를 맞추기 위해 창업에 관심도 없는 학생들을 동원하는 현 교육방식은 개선돼야 한다. 지방의 경우 그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특성화 사업, 즉 특화된 콘텐츠를 발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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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넬대학교 뉴욕캠퍼스 조감도. 1차 개발이 2017년에 완공될 계획이다. |
ⓒ 이영달 동국대 경영대학원 교수 | 관련사진보기 |
스탠포드대 '스타트X', 카네기멜론대 ETC '산학혁명3.0' 진화중
수도권 대 지방의 구도를 넘어 대학별 특성에 맞는 창업교육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스타트업 문화가 앞선 미국, 영국 등 해외 대학 사례를 통해 우리식의 대안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다.
미국 대학의 창업 트렌드에 대해서는 지난해 7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에서 열린 '대학가의 창업 바람과 방향'을 주제로 한 스타트업 코리아 라운드 테이블에서 발표한 이영달 동국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발제 내용을 소개한다.
미국에는 4년제 대학과 커뮤니티칼리지를 포함 5300여개 대학이 있다. 그래서 미국대학 창업보육 트렌드를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몇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 스타트업 육성을 잘한다고 알려진 스탠포드, MIT,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학부과정보다 대학원 중심의 창업교육인 '산학혁명 3.0모델'을 실현중이다. 미국에선 이미 스타트업(start up)을 강조하는 시대를 지나 스케일업(성장 scale up)을 이야기한다.
또한 미국의 각 대학은 학교 특성에 따라 고유한 창업보육 모델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구글과 함께 엔지니어링스쿨을 운영하는 코넬대학, 기업기반 스타트업을 양성하는 이노베이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버지니아대학, 1년 반짜리 석사과정 ETC(Entertainment Technology Center)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카네기멜론대학, 연방정부가 함께 협력하는 커뮤니티칼리지의 아이콥스(i-Corps) 등이 그것이다.
특히 커뮤니티칼리지의 아이콥스 프로그램은 테크 기술자와 기업가, 투자자, 멘토, 정부관계자 등이 연합 팀을 꾸려 과학 기술의 사업화를 제안할 수 있다. '하이테크 제조업' 중심으로 학교 내 유휴 부지에 해당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공장까지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칼리지 학생들은 해당 기술을 교육받아 졸업 후 바로 숙련 기술자로 취업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한국의 스타트업 지원은 획일화된 경향이 있다. 대학이나 교육주체들이 자율성을 지니고 고유의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로존의 괜찮은 스타트업들이 몰려드는 영국의 경우도 참고할 만하다.
영국은 대학생들이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자유롭게 창업 아이디어를 내고 스타트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혁신적인 아이템과 아이디어만 있다면 학생들끼리 5파운드나 10파운드의 적은 자본금을 공동 적립해 교사와 멘토들의 지도 아래 회사를 설립하는 '젊은기업가프로그램(Young Enterprise programme)'이나 가상 창업 프로젝트 등이 활성화돼 있다.
'알파고'로 유명한 영국 스타트업 딥 마인드(DeepMind)의 공동 창업자인 슐레그만도 학창시절 어린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병원 휠체어를 빌리는 사업 아이디어로 젊은기업가상(Young Enterprise award)을 수상한 바 있다.
영국 유학 후 창업을 준비중인 김기태(24)씨의 사례를 통해 영국의 대학 창업보육 트렌드를 소개한다. 김씨는 영국 셰필드대학교(The University of Sheffield)에서 국제 및 유럽법학을 전공했고 지난해 11월 Tier1 창업비자를 받았다.
김씨에 따르면 영국 대학의 창업 교육은 학생이 창업을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기본적인 교육과 관심을 환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창업 경험자들을 초청해 강연을 열거나 대학내 창업관에 멘토들이 상주하면서 학생들의 창업활동을 돕는다. 각 지역에 특화돼 있거나 멘토로 적합한 사람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도시간 혹은 유럽 국가간 인재교류도 활발한 편이며 네트워킹을 하기에도 편리하다.
물론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에서 흔히 개최되는 공모전 같은 방식은 아니다. 정부자금은 대학이 더 훌륭한 연사를 초빙하거나 더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한다. 창업자금은 대출을 받거나 창업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대학이 창업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김씨가 다닌 대학의 경우 일 년에 한 번 쇼케이스를 열어서 우승한 팀에게 한화 약 500만 원가량 지원하는 것이 전부다.
김씨는 "영국 창업교육의 핵심은 창업자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같이 고민해줄 멘토들이 있고, 또 같이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인재풀이 있고, 더 성숙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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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창업지원 프로그램 '스타트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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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웁살라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의 커리큘럼. |
김도윤 고려대 교수(스타트업연구원 연구교수) 역시 미국 스탠포드대 '스타트X'와 스웨덴 웁살라대 '웁살라 이노베이션 센터'를 예로 들며 대학별 독자적인 창업보육 모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스타트X'는 일종의 동문펀드로 창업한 후배들이 학교를 그만두는 것을 보다 못한 선배들이 펀드를 조성해 이들을 지원하는 모델이다. 스웨덴의 대표 인큐베이터인 웁살라 이노베이션 센터(UIC)는 1999년부터 STUNS(웁살라내의 대학과 기업 및 공공부문간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 웁살라시, 스웨덴 농과대학, 웁살라대학의 공동출자로 설립돼 유망 신진기업을 발굴 및 육성하고 있다.
김 교수는 "미국 영국의 대학 창업보육 모델을 검토하고 우리 대학 여건에 맞는 한국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1980년대 초중반부터 벤처 1세대로 활동한 창업가들과 학계가 함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교육의 주체들과 경험 많은 창업가들이 대학 창업교육을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만의 대안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미래를 이끌어갈 리더, 즉 대선후보들 역시 창업 생태계를 관심 있게 들여다봐야 한다. 창업 생태계에 대한 그들의 이해도에 따라 미래의 큰 그림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