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정부 연출·투기세력이 띄운 ‘머니게임’… 2017년 ‘부동산 불패’ 흔들리나
지난해 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으로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면서 그간 한국 경제를 떠받쳐 온 부동산시장의 거품 붕괴 공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전반적인 경기침체 속 ‘나홀로 호황’을 보여온 부동산시장이 1300조원을 돌파한 가계빚이라는 불안한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빚으로 쌓아올린 부동산시장의 호황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돼 한국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수도권 분양시장은 ‘열풍’을 넘어 ‘광풍’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뜨거웠다. 강남 재건축단지 등 입지가 좋은 곳은 당첨만 되면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의 웃돈을 노릴 수 있어 ‘분양권 로또’라는 말이 나왔다. 저금리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청약시장에 몰려들어 거품을 키웠다. 그 결과 일부 지역에서는 평균 1순위 청약경쟁률이 수백대 1을 기록했고, 아파트 분양가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주택시장 과열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핀 것은 강남 재건축 아파트단지다. 정부가 2015년 4월부터 민간택지 아파트의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면서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가를 제어할 길도 사라졌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청약 단타족’ 등 투기수요가 줄을 이었고, 분양가가 3.3㎡당 4400만원대를 넘어서는 등 역대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가계빚,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신규 아파트 분양가가 오르다보니 기존 아파트값도 따라 올랐다. 다만 지역별로 양극화 현상이 뚜렷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아파트값은 3.25% 올라 2006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을 보였지만 지방의 경우 0.28% 하락했다. 부산·제주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지방 주택시장에 찬바람이 불었다. 서울에서도 강남권은 4.17% 올라 전국 평균 상승률(0.76%)의 5.5배 수준이었다.
주택시장 과열의 배경에는 박근혜 정부 들어 줄곧 추진해온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가 있었다. 치솟는 전셋값에 저금리 기조가 맞물려 너나 할 것 없이 주택 구입에 뛰어들었고, 정부가 아예 ‘빚내서 집 사라’며 이를 거들었다. 그 결과 지난 한 해에만 가계부채가 100조원 넘게 불어나 사상 최대치인 130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가 쓸 수 있는 경기부양 카드 중 가장 손쉬운 방법이 부동산시장을 띄우는 것이다. 특히 한국 경제성장의 가장 큰 축이었던 수출 부진이 계속되며 최근 몇 년간 건설경기에 의존한 부양책이 이어졌다. 경제성장에서 건설투자가 차지하는 성장기여율은 지난해 3분기 66.7%까지 치솟았다.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9% 줄었지만 건설투자는 11.9% 늘어났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을 띄워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정책기조는 3년 연속 2%대 성장률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공염불임이 확인됐고, 이제는 한껏 빚으로 부풀려 놓은 부동산시장이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잃어버린 20년’의 한국판 전초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든 경제지표가 최악인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그간 부동산 경기 하나만으로 연명해 왔지만 가계빚이라는 ‘모래성’ 위의 호황이었던 셈이다.
가계부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불어나고 주택시장도 과열양상을 보이자 박근혜 정부는 출범 3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고강도 규제를 담은 ‘11·3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강남4구 등 투기과열 지역의 분양권 전매금지 및 1순위 청약조건을 강화해 투기수요를 잠재우겠다는 일종의 ‘핀셋 처방’이었다. 정부 정책이 4년 가까이 계속된 ‘부양’ 기조에서 ‘규제’로 급전환한 셈이다. 이후 청약시장이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는 등 주택시장은 다소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미 투기꾼들이 휩쓸고 지나간 뒤 나온 뒷북 대책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과잉공급에 미국발 금리인상도 악재
문제는 주택시장 연착륙이 정부 기대보다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이다. 자칫 가계빚 시한폭탄을 터뜨릴 수 있는 악재들이 새해 주택시장 곳곳에 산재해 있다. 먼저 ‘입주대란’ 우려가 나온다. 부동산 114 집계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에 입주할 전국 아파트는 총 78만여가구에 달한다. 2년 단기 물량으로는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가 조성됐던 1990년대 이후 최대치다. 특히 평택, 시흥, 화성, 용인, 김포 등 경기 일부지역은 과잉공급으로 인한 미분양 증가 우려가 나온다. 이들 지역의 아파트 입주물량은 지난해 8만7605가구에서 올해 11만9813가구로 36.9%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간 공급과잉은 전셋값 하락으로 이어져 무주택 서민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을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역전세난과 이른바 ‘깡통 전세’다. 전셋값 하락에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다보니 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 집주인의 보증금 상환부담이 높아지고 이에 따른 급매물이 쌓일 경우 집값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건설사들의 ‘밀어내기 분양’이 심했던 2002~2008년에도 연평균 33만가구씩 입주물량이 쏟아지면서 미분양과 할인분양, 계약자들의 입주 거부 사태가 속출하기도 했다. 아파트 분양이 ‘로또’인 줄 알고 뛰어들었다가 ‘깡통’을 차는 2008년 집값 폭락 공포가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하반기 이후 공급자 측면에서는 미분양 및 미입주 증가가 불가피하고 수요자 측면에선 주택담보대출 부실과 주거불안 문제가 동시에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선을 앞두고 주택시장에 리스크가 확대됨에 따라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발 금리인상도 악재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초저금리 기조를 타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이들이 크게 늘었고, 이에 따라 전체 가계부채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확대되는 추세다. 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당장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올리지는 않겠지만, 이미 시장 금리는 미국 금리인상 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하우스푸어’ 양산 가능성이 점쳐진다.
함영진 부동산 114 리서치센터장은 “경기 위축과 금리인상으로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증가하고 한계차주가 늘어날 우려가 있다”면서 “주택시장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차주의 대출 연장이나 집주인의 역전세난 대출 등 금융포용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거품 붕괴를 가속화시킬 수 있는 이런 악재들이 이미 예고됐다는 점이다. 올해는 이미 2~3년 전부터 주택 공급과잉으로 인한 후유증이 예견되던 해였다. 미국 금리인상도 전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비는커녕 정부가 앞장서 거품을 키웠다. 시장 흐름은 이미 안정화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출범 직후부터 쓸 수 있는 각종 부양책을 총동원해 부동산경기 과열을 부채질했다.
강남 재건축 규제완화로 집값 상승 기대감이 커졌고, 고삐 풀린 대출은 ‘부채도 곧 자산’이라는 허황된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무모한 폭탄 돌리기”(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당장 내 임기 동안 부동산 가격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면 그만이라는 안이한 생각에서 (정부가) 투기를 부추기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2014년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밀어붙인 ‘초이노믹스’의 다른 이름은 곧 ‘빚 권하는 사회’였다. 결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부동산 호황에서 건설사와 투기세력, 이자를 두둑하게 챙긴 금융사와 막대한 세수를 얻은 정부는 배를 불렸지만 서민의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졌다.
정부는 올해부터 집단대출 분할상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 등 대출 문턱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을 급선회했다. 가까스로 내 집을 마련한 이들은 높아지는 대출이자에 하우스푸어 벼랑으로 내몰렸고, 무주택 서민은 ‘미친 전셋값’에 외곽으로 밀려나는 추세다. 집이라는 거주의 공간을 놓고 벌인 국가적 ‘머니게임’의 결과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