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서 관리로 정책 바꿔야"
전국 빈집(2015년 말 기준)이 106만9000가구로, 사상 처음 100만 가구를 넘어섰다. 국내 빈집 수는 2035년엔 148만 가구, 2050년에는 전체 가구의 10%인 302만 가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발표됐다. 우리나라도 저출산과 고령화 여파로 빈집이 급증해 사회문제가 된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5년 전국 빈집 수는 2010년 전보다 25만 가구 늘어난 106만9000가구로 집계됐다. 전체 주택(1636만7000가구)의 6.5% 수준이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는 "국내 인구주택총조사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50년 국내 전체 주택은 2998만 가구로, 주택 보급률이 140%에 달하고 전체 주택의 10.1%인 302만 가구가 빈집으로 남을 것으로 예측됐다"고 2일 밝혔다.
LX 예측에 따르면, 2050년 강원(23.2%)과 전남(25.4%)은 인구 감소로 네 집 중 한 집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 도심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2015년 7만9000가구였던 서울의 빈집은 2050년엔 31만 가구로 급증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저출산과 고령화, 주택 과잉 공급이 겹치면서 일본식의 '빈집 쇼크'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조기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일본은 2013년 기준으로 빈집이 전체 주택의 13.5%(820만 가구)까지 증가했다. 도쿄도 전체 주택의 11%가 넘는 81만7000가구가 빈집이다. 일본 정부는 2015년 '공가대책특별조치법'을 만들어 화재 위험이 높고 범죄의 온상이 되는 빈집에 대해 지자체가 철거 등 행정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했다. 조윤숙 LX국토정보교육원 교수실장은 "앞으로 정부가 주택 공급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기존 주택에 대한 적절한 관리와 정비 중심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진중언 기자] [김성민 기자]
- 인구 줄고 주택 물량은 쏟아져
저출산·고령화로 수요 계속 감소, 30년뒤 강원·전남 4채중 1채 빈집
- 일본같은 '충격' 올 수도
도시 미관 나빠지고 붕괴 위험… 범죄까지 늘면서 사회 문제 돼
- 선제적 '빈집 대책' 시급
주택 공급량 통제하고 빈집 정비율 관리해야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전남 고흥군(36%) 한 마을은 한때 50여 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20여가구만 남았다. 나머지 집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廢家)로 변했다. 마을 주민 70대 김모씨는 "젊은 사람은 도시로 떠나버리고, 지금 사는 주민들마저 세상을 떠나면 사람 없이 집만 덩그러니 남은 유령 마을이 될 지경"이라고 말했다.
2일 서울 도심 한복판인 종로구 사직동 경희궁 맞은편. 골목을 따라 들어가자 두 집 건너 한 집꼴로 빈집이 나타났다. 콘크리트벽이 무너져 내려 여기저기 집 내부가 훤히 보였고, 문 앞에 '재난 위험 시설 D등급 지정 안내' 표지판이 서 있는 곳도 눈에 띄었다. 이 동네에서 30년째 살고 있다는 김모(63)씨는 "낡을 대로 낡은 동네에 재개발 추진으로 주민이 대거 떠났고, 이후 사업이 지지부진해 빈집이 흉가처럼 남았다"며 "밤이 되면 뭔 일 날까 봐 빈집 근처에는 얼씬도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일본형 '빈집 쇼크'가 현실화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주택 과잉 공급까지 맞물리면서 지방뿐만 아니라 서울에도 일본처럼 '빈집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서울에만 빈집이 8만가구에 육박하자 서울시가 리모델링 자금 지원 등 '빈집 살리기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경기도엔 빈집이 14만5000가구에 달한다.
◇나홀로 노인 증가… 빈집 문제 악화
한국의 빈집 문제는 해가 지날수록 심각해질 전망이다. 한국국토정보공사는 2050년엔 전체 주택의 10%(302만가구)가 빈집이고, 강원·전남 등 일부 지역에선 네 집 중 한 집에 사람이 살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빈집 증가는 주택 수요가 왕성한 청장년층이 감소하고, 노인 가구와 혼자 사는 가구는 계속 늘어나는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국토정보공사는 "65세 이상 혼자 사는 가정이 2010년 147만가구였지만, 2050년엔 429만가구로 늘면서 전체 가구 중 19%를 차지할 것"이라며 "노인 인구가 병원이나 요양시설로 옮기면 그 집은 자연스럽게 공가(空家)로 전락한다"고 분석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A아파트는 입주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 집 중 한 곳이 비어 있다. 교통이 불편해 수요가 많지 않은 데다, 은퇴 계층이 원하지 않는 대형 아파트(전용 163㎡ 기준) 단지이기 때문이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1인 가구 증가로 작은 집을 선호하는 경향이 심화되면서 경기도 일부 대형 면적 아파트는 빈집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마다 수십만 가구 신규 주택이 쏟아지는 것도 빈집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2015년 전국 주택 인허가 물량은 76만5328건으로 1977년 관련 조사 시작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작년에도 11월까지 인허가된 주택은 63만6823가구. 연말까지 합치면 2년 연속 70만가구를 넘을 것이 확실하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빈집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지자체마다 무조건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주택 공급 위주 도시 계획을 짜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집값 장기 침체… 일본 전철 밟을 수도
전문가들은 주택 활황기에 과잉 공급한 주택 때문에 빈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사회 문제로 번진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1988년 394만가구였던 빈집이 생산 가능 인구 감소, 저출산·고령화 등 영향으로 급증, 2013년엔 820만가구까지 증가했다.
일본에서 빈집이 증가한 지역은 주변 부동산 가격이 장기 침체하고 상권(商圈)도 위축됐다. 이에 따라 유동 인구가 감소하면서 지역이 더욱 황폐해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일본처럼 우리도 폭증하는 빈집으로 인해 도시 경관 악화, 붕괴나 화재 위험 증가, 범죄 발생률 증가 등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정부가 주택 인허가 등 건축률을 관리하면서 빈집 정비율을 동시에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중언 기자 jinmir@chosun.com]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