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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산기부에 대한 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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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6. 8. 2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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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기부에 대한 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8183825


이 기사는 우리나라의 GDP 대비 기부액은 0.87%로 미국(2.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특히 선진국에 비해 고액기부자가 적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사 말미에는 "부유층이나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 기부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우리나라는 부유층의 기부문화가 선진국에 비해 훨씬 뒤떨어져 있습니다. 미국은 20세기 최고의 부호 앤드류 카네기와 존 록펠러가 세운 기부의 전통을 현재 최고의 부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그리고 마크 주커버그를 비롯한 신진 거부들이 이어받아 왕성한 기부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결과 미국에서는 사회의 다양한 필요를 정부의 개입보다는 기부에 의해 충당하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카네기에서 빌 게이츠까지 미국의 대부호들은 개같이 돈을 벌어 정승같이 쓰는 두 얼굴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개같이 돈을 벌어 본인의 많은 욕구들을 충족시킨 다음에는 그 돈을 남을 위해 정승같이 써서 ‘존경과 인정’을 받습니다.

 


 

2006년에 워런 버핏은 자신의 재산 중 99%를 자선재단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고, 2010년에 빌 게이츠 부부와 워런 버핏은 미국의 억만장자들에게 최소 전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도록 권하는 캠페인인 기부서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기부서약운동의 공식 홈페이지 ‘더 기빙플레지(www.givingpledge.org) '에 따르면 이 운동이 시작된 지 6주 만에 미국을 움직이는 40명의 갑부가 재산 기부를 약속했고, 기부액 규모는 1,25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작년 말에 마크 주커버그는 딸의 출생을 기념해서 앞으로 본인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기빙플레지에 서약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합니다.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서약한 부호는 한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다 부자들이 기부하더라도 대체적으로 존경보다는 냉소에 가까운 시선을 보냅니다. 어쩌면 재벌회장으로 상징되는 대부호들이 그동안 잘못했던 점들이 너무 많아서 일부 재산의 기부정도로 존경을 얻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과부의 동전 한닢은 부자들의 금화보다 값어치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은 불경에도 나옵니다. 할머니가 공양한 작은 등불은 다른 등불이 모두 바람에 꺼져도 홀로 보물처럼 찬란히 빛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분들은 이 말씀들을 너무 확대해석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부의 한닢이나 할머니의 등불은 그들의 전재산입니다. 그들의 기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이고, 그들의 베풂에 자비와 긍휼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우리나라 언론과 국민들은 과부의 한닢이나 할머니의 등불에 대해 마땅한 칭송을 보냅니다. 평생 푼돈으로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는 할머니에 대한 기사에서 국민들은 감동하고 이 세상에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사들은 제법 자주 뉴스와 지면을 장식합니다. 그분들을 칭송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분들보다 훨씬 많은 돈을 기부하는 부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한닢을 기부하는 과부를 칭송하는 것이 백냥을 기부하는 부자를 폄하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성경이나 불경에서 과부의 한닢의 비유는 더 가진 사람들을 폄하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넉넉한 형편 때문에 열닢을 낸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 한닢을 냈음을 가지고 자기보다 못한 행동을 했다고 비웃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과부의 한닢에는 세상을 덮을만한 선한 마음이 담겨있지만 부자의 백냥에는 눈꼽만큼의 선한 동기가 없다고 비웃습니다. 심지어는 부자들의 기부 행위가 노동자의 계급투쟁 의지를 약화시키고 현실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고도의 의식적 전략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우리나라에도 가끔 거액을 기부하는 부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기부행위를 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가진 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세금감면을 위해, 못 가진 자들의 불만을 해소하여 사회적 안정성을 높이고 기득권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또는 이런 동기들이 전부 합쳐진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돈에는 이름표가 붙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닢이 과부에게서 나왔든 부자에게서 나왔든 한닢은 한닢입니다. 나의 굶주리는 배를 채워줄 한닢이라면 그것이 부자에게서 나온 것인지 과부에게서 나온 것인지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한닢보다는 백냥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 줄 수 있습니다.


 

 

불법과 악행으로 큰돈을 벌었던 미국의 존 록펠러가 교회에 돈을 기증하려고 했을 때, 처음에는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그 더러운 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곧바로 깨달았습니다. 돈에는 이름표가 붙어있지 않다는 것과 록펠러가 기부하겠다고 한 액수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을 만큼이라는 것을. 결국 교회는 그의 돈을 받았고, 록펠러는 죽기 전까지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부자의 기부가 냉소를 받는 사회라면 부자들은 기부 대신에 재산을 자식에게 전부 물려주려고 미술품 사재기를 할 수도 있고, 자신이 지배하는 계열사들을 동원해서 아들에게 편법적인 돈 몰아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진심어린 기부는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부자들이 거액을 기부하는 것을 비웃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부자들이 내는 백냥이 그들이 가진 것에 1%정도밖에 안된다고 해도, 그들을 비웃기 보다는 그들이 훨씬 많은 것을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나라를 위해 훨씬 더 바람직한 일입니다.


 

 

저는 금융업 주변에서 일을 도와주면서, 부자들도 많이 만났고 부자를 질시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부자들의 기부를 비웃는 사람들 중에 그 이유가 “내가 부자라면 그보다 더 낸다.”는 경우를 적지 않게 목격했습니다. 그들 중에 아주 소수는 정말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부자가 된 사람들은 돈을 기부하기는커녕 자기보다 못 가진 사람들에게 반푼이라도 더 빼앗으려고 처절하게 발광하는 게 제 눈에 들어왔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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