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5년 후' 속 70대 노부부..불안과 욕망은 현재진행형
한경비즈니스입력2016.05.24. 09:55
(일러스트 김호식)
{영화 ‘45년 후’속 70대 노부부…불안과 욕망은 현재진행형}
[김진국 문화평론가·융합심리학연구소장] 앤드루 헤이 감독의 영화 ‘45년 후’는 평온한 일생을 살아온 70대 부부에게 들이닥친 위기를 다룬다.
결혼 45주년 기념식 준비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남편 제프(톰 커트니 분)에게 한 통의 편지가 날아온다. 50년 전에 스위스 알프스로 함께 여행을 갔다가 크레바스, 즉 빙하의 틈새에 미끄러져 들어가 죽었던 제프의 첫사랑 카티야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남편 제프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등 안절부절못한다. 남편의 첫사랑의 존재 정도만 희미하게 알고 있던 부인 케이트(샬럿 램플링 분)는 제프의 이런 모습이 낯설고 못마땅하기만 하다.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쫓는다’더니 빙하 틈새에서 죽은 카티야가 수십 년을 해로해 온 살아있는 부부 사이에 ‘틈새’를 만들고 있다.
◆알프스 빙하에서 발견된 카티야의 시신
제프가 케이트를 만나 결혼식을 올리기 5년 전에 죽은 첫사랑을 그냥 친구 사이였다고 둘러댄 것은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봐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제프는 자기도 모르는 새 카티야를 ‘나의 카티야’라고 부르고 있고 케이트의 예민해진 촉수는 이런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얼마 남지 않은 결혼기념식 준비는 안중에 없고 부인 몰래 스위스행 항공기 티켓을 알아보러 다니는 남편이 야속하기만 한 케이트.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은 케이트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는다.
제프는 한밤중에 다락방에 올라가 부인 몰래 카티야의 사진과 유품을 보며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달래고 케이트도 이를 알아챈다. 특히 카티야가 조난 당시 제프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케이트는 경악한다.
50년 동안 차가운 알프스의 빙하 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던 카티야의 시신이 녹자마자 그 빙하가 녹은 물은 홍수가 되어 제프에게 밀려왔고 해일이 되어 케이트를 덮쳤다. 자신들에게 밀어닥친 거대한 심리적 쓰나미 앞에서 두 사람은 망연자실한다.
고장 난 변기를 고치려다가 엄지손가락을 다친 제프의 모습은 앤드루 헤이 감독이 숨겨 놓은 절묘한 복선이다.
신체 배설물을 배출하는 변기가 고장 났다는 것은 제프와 케이트 사이의 감정 배출에 이상이 생겼다는 말이다. 제프가 손가락을 다쳤다는 말은 둘 사이의 갈등이 순조롭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복선이다.
제프는 말한다. “변기 안의 부레가 고장 났어!” 부레는 수면 아래위로 떠올랐다 가라앉는 부력(浮力) 기관이다. 심리학에서는 무의식 깊은 곳에 억압돼 있던 감정을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리는 것만으로 치료 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이를 ‘의식화’라고 한다. 부레의 고장은 제프가 50년 동안 무의식의 심연에 깊숙이 묻어 뒀던 카티야에 대한 슬픔의 응어리를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의식화가 쉽지 않을 것을 예시한다.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온 ‘그녀’
진화심리학은 사람들에게 7개의 부분 자아가 있다고 본다. 그중 하나가 ‘짝 유지(mate-retention) 부분 자아’다. 이 부분 자아는 자신의 파트너를 빼앗아 갈 위험이 있을 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활성화된다.
남자들은 파트너의 ‘성적인 부정’이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다. 남의 유전자를 양육하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반면 여성들은 파트너가 다른 여성과 ‘감정적인 깊은 관계’에 빠지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의 유전자를 양육하는 데 필요한 파트너의 자원이 경쟁자에게로 향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케이트가 이미 생식과는 거리가 먼 70대라는 것이고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남편 제프의 첫사랑 카티야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제프-케이트 커플 사이에 난 자식의 양육을 위협할 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트는 왜 이리 민감한 것일까.
원래 짝 유지 부분 자아는 파트너와의 장기적인 로맨스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다.
케이트가 70대이고 지난 45년간 행복한 로맨스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50년 전 남편의 첫사랑 카티야가 20대의 아리따운 몸 그대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케이트에게 카티야는 과거에 이미 죽은 존재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남편 제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자신과의 장기적인 로맨스를 깨뜨릴 수도 있는 ‘잠재적인 훼방꾼’이자 ‘실질적인 위협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민감해진 케이트에게는 ‘내면에의 성찰’을 상징하는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도 ‘심리적인 정화’를 상징하는 ‘욕조’에서의 목욕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늪지를 달리는 쾌속정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케이트의 모습은 ‘늪지’처럼 자신을 끌어당기는 어딘가에 깊이 침잠(沈潛)하고 싶은 케이트의 욕망과 ‘쾌속정’처럼 한시라도 바삐 어딘가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상징한다.
우리는 노년이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정심을 유지할 것 같지만 그건 대체로 평균적으로 그러할 뿐이다. 인간은 어느 하나의 틀에 끼워 맞춰 간단명료하게 해석할 수 없는 매우 복잡다단한 존재라는 것을 영화 ‘45년 후’를 통해 앤드루 헤이 감독은 말하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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