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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고 맛있으면 장사는 성공한다 >>> 대여섯 가지의 요리, 회원제, 고수들의 아지트, 철저히 물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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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6. 3. 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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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맛있으면 장사는 성공한다

이코노미조선|김유진 맛칼럼니스트|입력2016.02.29. 20:22

 

 

 

 

연회비 3만원의 회원제로 운영되는 진진의 회원수는 8000명이 넘는다. 회비로 안정적 수익 기반을 만들고 판매가를 낮출 수 있었다.

 

난 레스토랑 회원제는 뉴욕의 맨해튼이나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나 있는 건줄 알았다. VIP 회원으로 가입하면 무엇보다 예약할 때 번호만 불러도 된다. 폼 난다. 게다가 일정 정도의 회비만 지불하면 식대도 할인해준다. 대접받는다는 기분이 들어 좋다. 가족들과 한우 등심 한번 먹으려면 카드를 두 번이나 긁어야 하는 생계형 평론가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래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수없이 올라온 연남동 진진의 포스팅을 애써 외면했다. 단골들의 면면이 대단하다. <음식강산> 저자 박정배, 서울대 푸드비즈랩 문정훈, <생각하는 식탁>의 저자 정재훈, ‘여자 백종원’ 김인복, <식객>과 <커피 한잔할까요?>의 이호준, <월간식당>의 황해원…

이분들이 올린 요리와 백주 사진을 보며 얼마나 침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들은 서로를 회원번호로 부르고 있었다. “3번 한잔 받으시게”, “난 0번이야”. 이 양반들이 해만 지면 드나들던 곳이 바로 중식당 진진이다. 표정만 봐도 천국이 따로 없다. 당신들의 천국 같아 일부러 관심을 끊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정배 선생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회동이 있다고. 작당모의라도 할 분위기에 빠질 수 없어 콜을 외쳤다. 그렇게 진진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제사 이야기지만 딱 세 가지가 궁금했다.

 

내가 아는 이연복, 여경래 형님들보다 선배인지, 왜 서교동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았는지, 그리고 회원제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는지.

 

경북 안동이 고향인 왕육성 사부는 한국에서 태어난 화교다. 주물 기술자였던 아버지는 초청을 받아 중국 천진에서 이 땅으로 건너왔다. 고추 떨어진다고 아들내미들은 부엌 근처에도 못 오게 하는 우리네 어머니들과 달리 화교들은 아들에게 일찌감치 요리를 가르친다. 요리를 돕다보니 어린 나이에도 칼질과 볶음 요리가 능숙해졌다.

 

동네 사람들은 밥 때만 되면 잔치 하느냐며 왕 사부집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만두도 나누고 볶음 요리도 돌렸다. 비결은 돼지기름이었다며 웃는다. 넉넉한 미소의 대가가 가르쳐주는 비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돼지비계를 사다가 팬에 볶으면 기름이 나온다. 이 기름을 항아리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쓴다. 파, 마늘을 볶다가 채소며 고기를 넣으면 요리가 된다. 이 향이 담을 넘으면 이웃들이 침을 꼴깍였다.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지만 영웅 스토리는 대개 비슷하다. 태생의 비밀이나 아버지의 부도 같은 극적인 스토리가 꼭 등장한다. 왕육성 사부 역시 그런 방황의 시간이 있었다. 가계를 돕기 위해 학교를 그만뒀다. 중학교 까까머리 시절의 이야기다. 이모뻘 되는 분 식당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타고난 성실함 덕분일까, 조금씩 재량권이 늘었다. 홀에서 손님도 응대하고 주방 일을 돕기도 했다. 주방장이 병가를 내거나 예비군 훈련에라도 동원되는 날이면 어린 왕육성의 독무대였다. 본격적으로 장사가 배우고 싶어졌다.

 

기술을 배우러 찾아간 당시 유명했던 중식당 대관원(大觀園) 주방에 여유가 없던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홀 직원으로 인정받아 3개월 만에 정식 캡틴으로 승격한다. 칼이나 웍(중식용 둥근 팬)을 잡을 수는 없었지만 고객 읽는 법을 배웠다. 매일 오전 주방장과 상의하며 스스로 메뉴를 개발하는 능력도 키웠다. 단골들의 입맛을 기억했다. 그날 최고의 식재료를 권했다.

 

여기서 왕육성의 진가가 발휘된다. 메뉴에도 없는 요리를 고객에게 권하고 주방에 전달했다. 이렇게 탄생한 메뉴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기록했다. 주방장이 하고 싶은 요리가 아니라 고객이 먹고 싶은 요리가 만들어졌다. 중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당대 최고라고 불리던 서울역 앞 대우빌딩 지하 홍보석에 적을 두었다. 아이디어가 차고 넘치니 당할 자가 없었다. 비록 월급은 적었지만 주방장 일의 절반을 도맡았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중화요리의 세계는 도제식이다. 실력 있고 성실하다는 입소문이 돌면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진다. 딱 1년 만에 월급이 4배로 뛰었다.

 

아직 젊었던 왕육성은 중식계의 전설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신촌 만다린에서 곡금초 사부를, 그리고 사보이호텔 호화대반점(豪華大飯店)에서 장홍기 선생과 5년 후배 이연복을 만났다. 2년 8개월간 주방을 지키며 전설을 만든 만다린, 딱 1년만 도와주는 조건으로 이적한 다리원(多利苑), 동시에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던 동보성(東寶城)과 국빈(國賓). 중원(中原)을 말 달리던 무협지 속 장수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플라자 호텔에 입성한 1982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호텔 중식당이다. 격이 다른 만큼 최고의 재료로 극상의 맛을 내는 비법을 터득했다. 이후 왕사부는 원칙이 생겼다.

 


남녀 막론하고 요리를 배우는 화교문화 덕에
왕육성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칼질과 요리에 능했다.

 

왕육성 대표는 원재료의 질을 올리고, 고객을 모은 다음 최고의 식재료로 만든 초고가 요리를 선보여 흑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매출이 안 좋은 업장을 맡으면 원가율을 올리는 것으로 개혁을 시작했다. 당시는 33%만 식자재에 투자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이 룰을 깨고 45%까지 양질의 재료에 투자하자 고객이 몰려들었다. 매출이 급상승하니 하나 둘 적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떻게 만들어 놓은 시스템인데 일개 주방장이 다 뜯어 고치려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내는 이들이 늘었다.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는 치기 어린 행동이었지만 왕사부는 그들을 안았다. 매일 밤 쓰린 속에 소주를 부으며 아군을 만들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매출을 올리고 수익을 극대화시킬 아이디어가 생기면 중간 관리자들에게 그 공을 돌렸다. 훌륭한 아이템들을 그이들에게 토스했다. 이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게 호텔 앞 입간판과 세븐코스(냉채, 게살샥스핀, 소고기, 브로콜리 볶음, 디저트)다.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 단순히 가격 정책만 펼친 게 아니다.

 

퀄리티 높은 요리 사진이 매출을 올린다는 믿음을 실천했다. 죽은 매장 살리는 데 도사라는 별명이 돌기 시작했다. 원재료의 질을 올리고, 고객을 모은 다음 최고의 식재료로 만든 초고가 요리를 선보여 흑자를 만들었다. 매출을 10배까지 올리자 코리아나 호텔에서 연락이 왔다. 중식당을 맡아보지 않겠냐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경쟁이 치열했지만 그 자리의 적임자는 왕육성이었다.

 

호텔 오너의 지원 사격은 든든했다. 음식은 맛있어야 한다는 오너의 철학을 관철시키는 데 왕육성만한 적임자는 없었다. 호의는 호의를 부르는 법. 고객과 직원에게 잘 하니 매출도 절로 춤을 추었다. 1년 뒤, 당시 만년 적자였던 대우빌딩 지하의 만다린을 맡아보라는 곡금초 사부의 제안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만다린 프로젝트 3단계다.


 

첫째, 여행사를 끌어들이자.
둘째, 화교들의 잔치를 유치하자.
셋째, 주위에 대기업이 많으니 최고의 재료를 쓰고 가격을 20% 올리자.

 

왕육성 대표는 82년 입성한 플라자 호텔에 이어 코리아나 호텔 중식당까지 평정했다.

 

밀려드는 단체 여행객을 받느라 제대로 식사조차 할 수 없었다. 결혼식은 물론 돌잔치, 수연(晬宴) 등. 360평의 운동장 같은 매장이 화교들의 아지트로 변했다. 법인카드로 결제하던 인근의 샐러리맨들은 오히려 가격인상을 반겼다. 장사의 신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전략이었다.

작지만 강한 진진의 구상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비싸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중화요리의 가격을 낮출 수는 없을까? 그래서 결심한 게 바로 노 권리금, 노 인테리어. 대신 재료는 호텔급으로! 가격을 낮추기 위해 과감히 양을 줄였다.

 

서너 명이 와서 대여섯 가지의 요리를 먹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모든 계획은 예순 살을 기점으로 제2막 인생을 살고 싶다는 왕육성 사부의 시나리오에서 출발한다. 평생 버는 데만 집중했으니 이제는 제대로 쓰면서 살자. 직원들 월급을 더 주자. 진심으로 열정이 있는 직원에게는 가게를 내주자. 진진은 친절하다는 소문 역시 복리후생이 뒷받침되었으니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진진의 전략 중 가장 돋보이는 건 바로 회원제다. 회원제는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다. 3만원이라는 연회비는 코스트코의 그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대단하다는 칭찬이 아깝지 않다. 누구라도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마케팅 비법이다.

 

비록 등록 시에는 약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회원 가입날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어느 누가 마다하겠는가! 코스트코도 이렇게 성장했다. 일행이 넷이라 치자. 일행 중 한명이라도 회원이면 20% 할인을 받는다. 넷이서 2만원짜리 요리를 하나씩 주문하면 8만원. 20% 할인하면 1만6000원을 디스카운트 받는다. 회비의 절반을 오늘 퉁(?)치는 시스템이다.

 

주류는 이에 해당이 없다. 그래서 더 기가 막히는 묘수다. 입신의 경지에 오른 바둑의 신이나 쓸 법한 한수다. 요리에서 혜택을 받는다고 뇌를 설득당한 고객은 그 혜택을 십분 활용하고 싶어진다. 돈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난다. 이는 곧 주류 매출로 직결된다. 대한민국 외식업자들이 주류 매출을 못 올려 안달인데 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훌륭한 노하우냔 말이다.

 

자주 드나들면 매번 20%를 할인해 줘야하니 결과적으로는 적자 아니냐고? 이런 답답한지고. 재방문하는 고객이 늘면 늘수록 장사는 성공한다. 입소문이 빠르게 난다. 꼬리에 꼬리를 문 신규 고객들이 달려와 회원 가입에 목을 맨다. 그럼 업주 입장에서는 일거삼득. 회원 늘리고, 회비 적립하고, 매출은 늘어난다. 진진의 회원수는 8000명이 넘는다.

 

한명당 회비 3만원이라고 했으니 다들 계산이 되시리라. 해서 너그럽고 풍족하게, 저렴한 가격에 퍼줄 수 있는 거다. 해만 지면 인적이 드물어지는 서교동 끄트머리에 똬리를 튼 것도 다 이 치밀한 작전하에 탄생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회비 3만원은 백두산 호랑이 잡던 전설의 사냥꾼들이 즐겨 쓰던 올가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0번 오면 돈 벌어간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었다.

 

 

왕사부는 진진을 고수들의 아지트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철저히 물관리를 한다. 소주도 한라산만 판다. 회원제도 결국은 소속감을 심기 위해서 시행한 거다. 왜 예약이 이리도 밀리는데 점심 영업을 하지 않는지 물었다.

 

“옆에 식당이 서너 군데 있어요. 권리금 주고 들어왔다는데 장사가 안돼서 울상이에요. 내가 점심을 시작하면 최소한 15~20%는 더 장사가 안 될 것 같아서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할까요? 저랑 직원들이랑 약속을 했어요. 2년간은 요리 값 동결하자고요.”

인터뷰 중 손님이 들어오자 인사를 하러 자리를 뜬다. 첫 손님이라며 칭타오 맥주를 한 병 선사한다. 하마터면 벌떡 일어나 중국 무협 영화의 주인공처럼 양손을 모으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쓰부~”


(문의 : 070-5035-8878)

 


▒ 김유진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MBC 프로덕션 예능제작국 PD, 국립중앙박물관 식음료 총괄 컨설턴트, 신세계백화점 F&B 자문.
저서 <나도 부자될거다>, <장사의 신> 등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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