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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도 푹 빠진 '인천 대세' 막걸리, 이유는?>>>한국인, 한국 음식 그리고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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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6. 2. 2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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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도 푹 빠진 '인천 대세' 막걸리, 이유는?

[허시명의 술 생각 ⑬] 막걸리 같은 미국인 척 교수 이야기

오마이뉴스  2016.02.22 14:17l최종 업데이트 16.02.22 14:17l

 

 

 

20년째 인천 인하대에서 영어 회화를 가르치고 있는 척 교수. 그는 미국인이다. 그는 막걸리를 좋아해, 일주일이면 네 번 정도 막걸리를 마신다. 그를 서울 마포 연남동의 '숨은골목'이라는 막걸리 전문점에서 만났다.

척 교수는 시카고에서 3시간 떨어진 일리노이주의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산이 없고 콩밭과 옥수수밭이 드넓게 펼쳐진 동네란다. 척 교수의 이름은 찰스 미들톤이다. 그가 태어나기 몇 해 전 영국 찰스 황태자가 태어났고, 그 이름이 유행했고, 찰스 황태자와 먼먼 친척이기도 하여 그는 찰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찰스라는 이름이 줄어 척이 되고, 학생을 가르치면서 척 교수가 됐다. 그는 미국에서 20년 동안 고등학생을 가르치다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년 동안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고, 아시아에 살고 싶던 차에 한국을 오게 됐다. 그게 21년 전 일이고, 5년 전에는 한국 영주권을 얻었다. 해마다 고향을 다녀왔는데, 이제 부모님도 형제도 모두 돌아가셔서 한국에서 남은 생을 살고 싶어한다.

 


소성주의 매력이 무엇인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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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교수와 함께 맛본 막걸리와 닭요리.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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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좋아하는 것을 물었더니, 한국인, 한국 음식 그리고 막걸리를 꼽았다. 한국인은 인정이 넘쳐 좋다고 했다. 맥주는 배가 부르고 가스가 차는데, 막걸리는 많이 마셔도 속이 편해서 좋다고 했다. 우리의 눈길은 막걸리 진열장으로 향했다. 진열장 안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다양한 막걸리들이 도열해 있었다. 척 교수는 한국말이 서툴지만, 한국말로 소통하려고 애썼다. 까다로운 표현은 동행한 탁 교수가 통역을 맡았다. 어떤 막걸리를 선택하더라도 꺼리지 않을 만큼, 척 교수는 다양한 막걸리에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선택한 막걸리는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 양조장에서 빚은 청량주였다. 퇴계 이황이 머물기도 했던 청량산에서 따온 이름이지만, 청량주에서는 막걸리의 특징 중 하나인 청량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떤 막걸리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척 교수는 인천의 소성주와 삼양춘을 꼽았다. 그는 애향심 가득한 인천 사람이 돼 있었다. 마침 '숨은골목'에도 소성주가 있었다. 소성주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척 교수는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미 소성주의 맛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 맛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소성주 제조장도 가봤는데, 건물만 보고 내부는 구경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언제든지 집 앞 단골식당 '일구네'에서 소성주를 마실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소성은 인천의 옛 이름이다. 소성주는 부평에 있는 인천탁주합동제조장에서 만든다. 소성주는 부평을 경계로 해 서울 장수막걸리의 유통을 방어하면서, 인천의 대세 막걸리로 군림하고 있다. 숨은골목의 주인도 소성주 매력에 말을 보탰다. 냉장고에 오래 보관해도 군내와 잡내가 안 난다고 했다. 다른 막걸리들은 맛이 빨리 무너지는데, 소성주는 보존성이 좋고, 맛이 더 깊어진다고 했다.

 



스페인 사람들과 닮은 한국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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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작이 화려한 척 교수.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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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내게 낯설었던 것은 말할 때 보이는 그의 현란한 손동작이었다. 마치 교향악단의 지휘자 같았다. "언어를 가르치는 척 교수만 그래요? 미국인들은 다 그래요?" 궁금해 물어봤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손을 많이 사용한다고 했다. 독일어나 프랑스어 등 언어권이 다른 사람들이 사는 미국 다문화 사회의 영향이라고 했다. 서로의 뜻을 오해하지 않도록 손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의 손동작이 내게 낯설었던 것처럼 척 교수 눈에도 이상하게 비친 한국 문화가 있었다. 상사나 선배가 술을 권하면 반드시 마셔야 하는 관습이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술을 못 마시면 거절하는 것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스페인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인과 스페인 사람의 기질이 닮아있다고 했다. 열정적이고 감성적이며 음주가무를 즐기는 형태가 흡사하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춤과 노래와 기타 연주가 어우러진 정열의 스페인 플라멩코와 한국의 노래방이 오버랩됐다.

막걸리 안주로 닭 염통 볶음을 시켰다. 척 교수는 입안에서 꼬들꼬들한 씹히는 맛에 크게 만족스러워했다. 한국인들이 잘 안 먹는, 그러나 그가 좋아하는 안주로 닭의 간을 꼽았다. 먹을 게 얼마나 있을까 싶은데, 미국인들이 좋아해서 미국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 매장에서도 판다고 했다. 튀기거나 찌기도 하고, 날 것을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기도 하는데, 우유에 하루 담갔다가 요리하면 잡내가 사라진다고 했다.

그는 집 앞 단골 식당인 '일구네'에서 특별 주문해 먹는다고 했다. 척 교수는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소간보다 닭간이 "진짜 맛있어요"라면서 엄지를 세웠다.

 



한국의 밤, 막걸리 같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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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빚고 있는 척 교수.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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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척 교수도 '막걸리 마니아'가 돼 있었다. 동인천의 삼치 골목을 자주 찾아간다. 고소하고 바삭한 삼치양념구이 한 점에 막걸리 한 잔이면 입안이 깔끔하게 비워지고, 다시 삼치 한 점에 손이 가게 된다. 그 골목에서는 인천집이 그의 단골집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친구가 왔을 때 찾아간 서울 광장시장 빈대떡집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때 친구들 셋과 함께 마신 막걸리 14병을 앞에 두고 찍은 사진을 내게 보여줬다. 술 앞에서 그들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척 교수는 요새 막걸리 빚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올여름에 미국에 가서 광장시장 막걸리 맛을 잊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직접 막걸리를 빚어주기 위해서란다.

우리는 주점의 냉장고에 들어있는 막걸리를 종류별로 순례하듯 맛봤다. 과즙 맛이 상큼하게 도는 부산 금정산성 마을 막걸리를 맛보고, 1920년대에 지어진 양조장에서 빚은 곰곰한 냄새가 옛 추억처럼 고인 지평막걸리도 맛보고, 김포 금쌀로 빚은 선호 막걸리도 맛보았다. 오후 6시에 만나 막걸리 냉장고에서 한 종류씩 꺼내 먹다 보니, 어느덧 전철 막차 시간이 다가왔다. 척 교수의 한국말이 많아지고, 나의 서툰 영어도 튀어나오고 있었다. 술은 사람을 거리낌 없게 만들었다.

'치어스(Cheers)!' 건배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척 교수는 주점 냉장고 문을 열어 손에 잡히는 막걸리 한 병을 꺼내 옆자리의 대학생들에게 선물했다. 척 교수는 한국 사람 흉내를 내본 것이라며, 이것이 한국에 살면서 즐기는 한국적인 멋이라고 했다. 그가 살던 미국 도시의 밤은 적막한데, 한국의 밤은 와글와글 따뜻하다고 했다. 막걸리 같은 밤, 막걸리 같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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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점에서 옆 탁자의 손님과 인사를 나누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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