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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스 2014.02.20 11:15
[출처] http://blog.hani.co.kr/maporiver/56744
책이 드디어 이번 주 후반부터 배포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몇 개월이면 쓸줄 알았는데 얼추 일년이 걸렸군요. '머리글'입니다.

하지만, 정보의 중요성에 방점을 두는 본래의 의미는 많이 퇴색했다.
오히려 그 물리적 양이 넘쳐나는 세상을 말하는 듯 하다.
그럴 만 하다. 눈길 닿는 곳, 손길 머무는 곳 그 어디라도 정보가 넘쳐난다.
아날로그 정보는 이제 추억이 돼버렸다.
종이를 벗어난 정보는 소리로 동영상으로 이 세상을 가득 채운다.
디지털화된 정보는 거의 실시간으로 밀려든다.
우린 정보의 폭우를 맞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만들어낸 홍수 속에 갇힌다.
너무 많은 정보로 우리 뇌는 가동을 멈췄다.
아날로그 정보는 생각할 여유를 준다.
하지만 방죽을 무너뜨리고 밀려드는 디지털 정보의 홍수로 우린 그것을 잃어가고 있다.
그저 보고 듣기만을 강요하는 현대의 일방적 정보는 침잠을 통한 생각의 자유를 빼앗는다.
우리 대부분은 이미 새장에 갇힌 새다.
그저 주는 모이만을 먹고 있다.
넘쳐 흘러가는 정보에 손과 눈만 바쁠 뿐이다.
뇌가 분주해야 하는 데 말이다.
현대의 정보는 더 이상 생산자가 공급하는 게 아니다.
그와 별개인 매체에 의해 가공되어 대중에게 확산된다.
신문, 방송과 같은 매체는 불편부당함을 내세우며 공공성을 강조한다.
우리 대부분은 막연히 이들 매체가 선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특정 개인이 전하는 정보보다 그 신뢰성에서 앞선다고 믿는다.
그들이 공급하는 정보에 거짓 혹은 의도적 방관이 스며있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보란 본래 각색되기 마련이다.
가공이 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문제다. 각색이란 변형을 의미한다.
통상 현대의 매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보를 가공, 각색한다.
심지어 자신의 입맛에 맞게 본래의 정보를 교묘하게 왜곡하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이런 짓은 눈 밝은 이들에게 그 의도가 간파되는 게 보통이다.
종편의 근거 없는 주장에 혹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대부분은 그냥 웃으며 채널을 돌려버린다.
더 큰 문제는 현실에 대한 방관이다.
통상 이런 행태는 ‘팩트’를 그대로 전한다는 미명하에 이루어진다.
다음과 같은 기사가 대표적이다.

어찌 보면 매체로서의 사명을 완수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사가 ‘진실’을 전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진실은 규제완화가 과연 투자활성화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위 기사는 규제완화가
투자활성화 혹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거란 등식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반면, 그에 대한 반론은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때문에 이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막연히 ‘규제’를 악으로 생각하고
그 ‘완화’를 선으로 생각하며 대통령의 조치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대통령의 결단으로 ‘투자활성화’가 이루어져 경제가 쭉쭉 커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현대를
규정하는 단어 중 하나가 ‘법’이다.
법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법’이야 말로 큰 틀로 보면 ‘규제’다.
그것을 철폐 혹은 완화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박수를 보낼까.
마찬가지이다.
규제 없는 시장은 불가능하다.
규제 혹은 규칙이 생겼을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을 완화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길거리 신호등 하나를 없앨 때도 고민이 필요한 법이다.
보행자의 수, 통행량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니 시장 경제의 신호등 역할을 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 혹은 완화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위 기사의 두 번째 화두인 ‘투자활성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치 경제활성화를 방해하는 것이 규제인 냥 말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규제를 풀면 경제는 살아날 수 있는 것인가.
이명박 정권은 수많은 규제완화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비즈니스 프렌드리’를 외치며 친기업 정책을 시행했지만
특정 재벌의 비대화로 인한 한국 경제의 양극화만을 심화시켰을 뿐이다.
그것도 삼성, 현대차 등 극소수 대기업만 혜택을 봤지
대부분의 대기업은 진창 속에 있는 게 현실이다.
언론의
사명이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이란 명제는 마치 신화와 같이 굳건하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위의 사례처럼 대중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멀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매체가 진정한 언론이 되기 위해서는 사실 추구도 중요하지만 진실을 안내하는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팩트만을 고집하며 진실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눈을 감는 것은 일종의 방관자적 태도에 불과하다. 언론이 전해야 하는 건 사실 뿐 아니라 진실이다.
하지만
이것을 기대하는 건 어쩌면 순진한 바램일 수 있다.
현대의 매체는 기본적으로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기관이다.
본질적으로 자본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이익을 위해선 권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존재이다.
조지 오웰의 말처럼 글쓰기는 가장 정치적인 행위이다.
더불어 말하기 또한 정치적인 행위이다.
그 논리에 따르면 공공성을 주장하는
매체의 글쓰기, 말하기야 말로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
정치란 ‘프로파간다’를 동반한다.
그것에 매체는 필수다.
현대의 정치가 매체를 가장 훌륭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유이다.
곤혹스런
것은 우리가 이 같은 행위에 스스로 녹아 들고 있다는 것에 있다.
정보의 홍수는 우리에게 ‘사유’를 앗아간다.
신뢰성과 공공성이란 갑피로 무장한 매체의 일방적 정보를 사실을 넘어선 진실로 받아들인다.
우린 흔히 ‘방송에서 들었어’, ‘신문에서 봤어’란 말을 들으면 의심을 풀어버린다.
반론을 펴고 싶지만 매체의 위력에 주눅이 들어 좀처럼 하지 못한다.
하지만, 매체가 하는 일이란
자신들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미 ‘정치적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들의 입장에 맞게끔 정보를 가공, 각색하기 마련이며
그도 여의치 않을 때는 ‘팩트’만을 전달하기 급급하다.
사실, 이런 류의 기사나 방송은 전문 분야일수록 심하다.
보통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분야일수록 각색의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인들이 어려워하기 때문에 현실을 왜곡하기가 쉽다.
흔히 성장률이 높아지면 국민 개개인의 삶도 나아질 거라 생각하지만 오산이다.
대부분의 경제 통계는 ‘평균’의 함정을 내포한다.
국어가 100점, 수학이 40점이면 평균은 70점이다.
무난한 점수라 생각하지만 수학은 낙제 점수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경제통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인당 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했다 해서 모두가 그 정도의 삶을 영위하는 건 아니다.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가졌다면 대부분의 삶은 어려울 수 있다.
이처럼 원자료를 가공한 이차정보는 ‘사실’임엔 분명하지만 현실을 비틀어 보여주기 일수이다.
때문에
우린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쓴 이유 역시 마찬가지이다.
생각에 대한 열망, 반론의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내 주장은 온전히 내 것일 뿐이다.
나에겐 옳지만 다른 이에겐 틀릴 수 있다.
그러니 다른 누군가는 내 의견에 얼마든지 반박을 할 수가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열린 장에서의 토론이다. 민주주의란 참여를 기반으로 한다.
정보화 시대의 민주주의는 더욱 그래야 한다.
일방적으로 공급되는 정보에 함몰될 일이 아니다.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기사와 방송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반드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어야 가능한 것은 아니다.
공부는 일종의 연습이다.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왜?’, ‘정말?’이라 묻고
또 물을 때 우린 진실에 한 걸음씩 가까워질 수 있다.
나의 책 쓰기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를 묻는 작업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도 내게 ‘왜’냐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책은 의미를 갖는다.
많은 이들의 반론을 기대한다.
우리 모두는 논쟁을 통해 사유의 지평을 넓혀 나가야 한다.
그것만이 매체가 전하는 일방적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는 길이다.
책을
낸다는 것은 언제나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친한 친구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수많은 낯선 대중들에게 벌거숭이가 된 자신을 보여준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쓸 수 밖에 없었다.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행위이다.
정치적 행위를 한다는 건 민주 사회 구성원의 책무이다.
난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썼다.
모두가
스스로의 힘으로 꼿꼿이 설 수 있길 기대하며……
경제기사가 말해주지 않는 28가지
편집된 사실 뒤에 숨겨진 불편하고 낯선 경제
책소개
경제기사가 전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진실'이다!
『경제기사가 말해주지 않는 28가지』는 경제 비평가이자 칼럼니스트 윤석천이 우리가 알기 어려운 불편한 경제의 진실을 파헤친다. 경제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사면서, 단순히 보이는 것 이외의 진실이 숨어 있는 기사를 발췌해 인용하고 그 뒤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진짜 경제를 보여준다. 경제기사를 읽는 것을 넘어 사유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본문은 거짓은 아니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은 교묘히 피해 가거나 다른 중요하지 않은 사실에 관심을 집중시켜 진실을 왜곡시킨 28가지 경제기사를 살펴본다. 주식시장의 전망은 기관과 외국인들에게만 좋다는 진실, 재벌과 대기업의 높은 성장세엔 99%들의 희생이 있다는 진실 등 저자는 이러한 경제기사에 의문을 던지고, 그 뒤편의 불편하고 낯선 세상에 한 걸음 다가간다.
머리말 경제기사에 ‘왜’냐고 물어보라 ㆍ4
1. 경제기사는 돈을 잃게 하는 통로다
01 금융 선진화가 황금알 낳는 거위를 죽일 수 있다 ㆍ19
02 골드만삭스와 알루미늄 독과점 ㆍ28
03 ‘공유형 모기지’의 의미는 이자 없는 세상의 실험이다 ㆍ37
04 주식 시장 전망은 늘 좋다 그런데 기관과 외국인들에게만 좋다 ㆍ46
05 중앙은행의 비트코인 위험성 강조엔 중앙은행들의 물타기가 있다 ㆍ55
2. 경제기사는 기업의 본질을 외면한다
06 노동자를 탄압한다고 사용자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ㆍ67
07 환율 떨어진다는 호들갑은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흉이다 ㆍ77
08 재벌과 대기업의 높은 성장세엔 99%들의 희생이 있다 ㆍ86
09 혁신의 상징 애플과 수만의 눈물 ㆍ94
10 더는 기술 혁신이 일자리를 만들지 못 한다 ㆍ103
11 노키아가 몰락한 핀란드, 만약 삼성이 몰락하면 한국은? ㆍ112
3. 경제기사는 거품 낀 꿈과 희망을 선물한다
12 민영화? 사유화가 바른 말이다 ㆍ123
13 기부가 일상화된 나라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ㆍ132
14 권상우의 빌딩 재테크에 승자독식이라는 달콤한 독약이 묻어 있다 ㆍ140
15 국민에게 매달 300만 원씩 주는 웃기는 이야기가 공론화할 수 있는 까닭 ㆍ149
16 세금 강화와 세목 증설 반대편엔 늘어나는 서민 세금이 있다 ㆍ160
4. 경제기사는 성장의 역설을 외면한다
17 물가 상승률이 세금이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ㆍ171
18 경기를 살리려는 인플레이션은 늘 디플레이션을 부르게 돼 있다 ㆍ179
19 국민소득 증가에 가난해지는 가계가 볼모로 잡혀 있다 ㆍ187
20 경기 호전 뉴스에 절대 체감 경기 좋아진다는 소식은 없다 ㆍ196
21 성장 집착은 되레 고용을 줄이고 임금을 깎는다 ㆍ205
22 거품은 실제가 아닐 수 있다 ㆍ213
5. 경제기사는 거시경제를 축소하고 왜곡한다
23 양적 완화의 실제 목표는 ‘부의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ㆍ225
24 수출이 늘었다며 축배를 들 때 환율 정책으로부터 오는 고통은 사라진다 ㆍ234
25 선진국을 쫓은 신흥국들의 금융 완화책에 담긴 한숨 ㆍ243
26 상하이 개방에 숨겨둔 위안화 굴기 전략 ㆍ252
27 통화정책의 진짜 복병은 고령화다 ㆍ262
28 신흥국들 위기가 더는 위기가 아닌 이유 ㆍ271

출판사 서평
경제기사로부터 당신을 구하는 안내서
경제기사를 쉽고 재미있게 읽도록 도와주는 책들이 많다. 경제기사가 대체로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다 보니 용어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그런데 이렇게 개념 공부를 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경제기사가 놓은 덫에 덜컥 걸려들고 만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스스로 길드는 게 대표적이다. 경기침체를 어쩔 수 없는 흐름으로 당연시하거나 경제적 실패를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여기 해당된다. 경제 정보를 얻는 거의 유일한 통로인 경제기사라서 그 폐해는 심각하다. 권력과 자본의 시녀로 전락한 언론일수록 더 그렇다.
이 책은 거짓은 아니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은 교묘히 피해 가거나 다른 중요하지 않은 사실에 관심을 집중시켜 진실을 놓치게 하는 경제기사로부터 진짜 경제를 만나게 해주는 지침서다. 일례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했다며 호들갑 떠는 경제기사를 만났다고 해보자. 흔히 1인당 소득이 높아지면 삶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경제 통계 대부분에 ‘평균’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상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했다면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은 부를 가져갔다는 뜻이며, 99퍼센트에 이르는 보통 사람들은 더 어려워졌다는 어두운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기사들에는 늘 개개인 삶의 질이 향상됐다는 소식은 빠져 있다. 이렇게 원래 자료를 가공한 이차 정보인 경제기사는 ‘사실’임엔 틀림없지만, 현실은 비틀려 있기 일쑤다.
그렇기에 저자는 경제기사를 읽을 때 단순히 정보만 읽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의문을 가지고 기사가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사실을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경제기사를 볼 때 한 번쯤 ‘왜?’, ‘정말?’이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생각할 때 진실에 한 걸음씩 가까워질 수 있다.
#내년 증시 전망 ‘장밋빛’…“최고 2,500선 가능”
경제기사에서 내놓는 주식시장 전망은 언제나 낙관과 긍정으로 일관한다. 이유가 있다. 개인들을 주식시장에 끌어들여야 기관투자자들이 살기 때문이다. 대규모 주식을 가지고 있는 기관투자자들이 주식을 팔기 시작하면 주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 기관투자자들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살 개인투자자가 없다면 이들은 이익을 얻을 수 없다. 시장은 누군가 돈을 벌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 잃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제로섬’의 정글이다. 그래서 그들의 전망은 언제나 낙관적일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장밋빛 전망은 희생양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에 불과할 수도 있다.
#공유형 모기지 ‘집값 오를 만한 곳’만 대출
부동산 대책을 이야기하는 경제기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단어가 ‘공유형 모기지’다. 주로 공유형 모기지에 대한 설명과 그것이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경제기사는 공유형 모기지가 진정 지향해야 할 바를 담고 있지 않다. ‘공유형 모기지’의 진정한 의미는 이자 없는 세상의 실험이다. 금융기관이 피대출자와 위험을 공유하고 수익을 나눔으로써 현대 금융의 불공정한 속성을 개혁하려는 것이다. 즉, 이자를 기반으로 한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를 이자가 없는 진정한 파트너십으로 변화시킨다.
#중앙은행도 “비트코인 투기적”…각국 금융당국 경고 잇달아
경제기사가 설명하는 ‘비트코인’은 허점투성이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말을 인용해 이 새로운 디지털 화폐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이런 경제기사만 읽은 대중은 비트코인을 위험하고 허술한 화폐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경제기사에는 각국 중앙은행의 물타기가 있다. 중앙은행은 자신들의 화폐 시스템에 누수가 생긴 사실을 대중이 눈치채고 대안을 찾는 것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비트코인을 비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비트코인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 자체가 네트워크의 공개성과 유연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 시가총액 전 세계 1위 재탈환
애플 제품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뛰어난 디자인과 기능에 철학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다. 경제기사도 항상 애플의 성공에 찬사를 보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애플의 혁신 뒤에 피눈물을 흘리며 제품을 조립해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 하청업체 뒤에는 시간당 몇천 원의 임금을 받으며 초과근무에 시달리는 수많은 노동자의 고된 땀이 있다. 애플은 이런 하청업체의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을 방조하고 있다. 물론 이들 피와 땀은 고스란히 애플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대우조선 착용로봇 내년 배치, 입으면 작업자 작업능력 배가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 놀라운 혁신을 이루고 있다. 어제와 오늘, 아침과 저녁이 다를 정도다. 사람들은 기술 혁신이 일자리로 연결된다는 경제기사를 추호도 의심치 않는다. 특정 산업이 집단화해 활성화하면 해당 산업의 종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서비스업도 성황을 이뤄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논리다. 하지만 특정 기술 혁신으로 늘어난 고용자만 볼 게 아니라, 퇴보하고 있는 낡은 기술군에서 탈락한 노동자 수도 고려해야 진정한 고용 효과를 논할 수 있다. 실제로는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한 ‘기계’가 수많은 제조업과 단순 사무 일자리에서 인간을 대체하게 된 것이다.
#올해 물가 2.2퍼센트 상승…6년 만에 최저
대중은 보통 체감 물가와 차이가 나더라도 물가상승률이 낮다는 경제기사만 보고 물가가 안정됐다고 안도하곤 한다. 물가 오름세가 당연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이 물가지수 통계에 함정이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평균은 실체를 감추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식료품 가격은 폭등하는데 공산품 가격은 내린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평균적인 물가지수는 비교적 안정적일 것이다. 그러나 가격이 폭등한 식료품에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은 물가 안정을 전혀 체감할 수 없다. 평균은 현실을 오도할 뿐이다.
#양적 완화 엔저 공습…올 한국 경제 ‘日쇼크’ 휘청
몇 년 전부터 경제기사에는 ‘양적 완화’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세계 각국의 공격적인 ‘돈 찍기’ 통화정책이 계속되고 있는 탓이다. 중앙은행의 무제한 돈 풀기에도 실물경제의 회복은 더디기만 하다. 그럼에도 양적 완화를 고집하는 건 그 목표가 실물경제 회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목적은 자산시장이 오르면 부자가 된 듯한 느낌에 소비가 늘고 투자가 촉진되는 ‘부의 효과’와, 신흥국 투자를 통한 자본이득 실현이다.
#아시아 신흥국 증시, 양적 완화 축소 연기에 ‘폭등’
경제기사는 항상 양적 완화로 인한 자산 가격 상승만을 주로 얘기하지, 그 폐해는 침묵한다. 무엇보다 연준이 양적 완화 축소를 연기하는 것은 이미 실패를 자인한 셈이란 사실을 애써 숨긴다. 선진 각국이 엄청난 규모의 양적 완화를 시행했음에도 효과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정책 실업률은 계속해서 고공 행진 중이고, 인플레이션은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치를 밑돌며 되레 디플레이션을 위협하고 있다. 양적 완화 정책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책은 사실을 전달한다는 명분으로 진실에 눈을 감고 있는 28가지 경제기사에 의문을 던지고, 그 뒤편의 불편하고 낯선 세상에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
책속으로 추가
한국은 ‘통 큰 사재 출연’이 심심치 않게 이뤄지는 국가다. 물론 대부분 재벌이 행하는 기부다. (중략) 위 기사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아직도 세상은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기사는 ‘팩트’를 내세우며 재벌 총수의 통 큰 기부를 훈훈하게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재벌 총수가 2006년 4월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을 당시, 사재 1조 원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약속한 사실은 이 기사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132쪽, 기부가 일상화된 나라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월 200만 원 소득자가 외식비로 월 55만 원을 썼다면 그는 한 달에 부가가치세 5만 원을 부담한 것이다. 월 1,000만 원 소득자가 같은 금액을 식비로 썼다면 그 역시 5만 원을 부담한 것이다. 일견 공평해 보인다. 하지만 월 200만 원 소득자가 자기 소득의 2.5퍼센트를 세금으로 내는 반면 월 1,000만 원 소득자는 자기 소득의 0.5퍼센트를 부담하는 것에 불과하다.
164쪽, 세금 강화와 세목 증설 반대편엔 늘어나는 서민 세금이 있다
평균은 실체를 감추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예를 들면 어떤 이는 식료품에 많은 돈을 쓰고, 다른 이는 공산품 혹은 문화비에 많은 지출을 한다. 그런데 식료품 가격은 폭등하고 공산품 가격은 내린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평균적인 물가지수는 비교적 안정적일 것이다. 그러나 가격이 폭등한 식료품에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은 물가 안정을 전혀 체감할 수 없다. 반면, 가격이 내려간 공산품 구매에 지출을 많이 하는 사람은 물가 안정을 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172쪽, 물가 상승률이 세금이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이라는 개념 뒤에는 또 하나의 함정이 있다. 총소득에서 개인에게 돌아가는 몫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위 국민총소득에는 기업이 번 것도 포함된다. 따라서 기업이 개별 주주들에게 배당금 등으로 지출한 것을 제외한 기업 저축은 빼야 한다. 그러고도 남는 몫이 전부 개인 소득은 아니다. 또 빼야 할 게 있다. 정부가 징수하는 세금과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부담금을 제외해야 한다. (중략) 이렇게 따져 보면 국민소득에서 순수하게 개인 몫으로 돌아가는 비중은 57.9퍼센트에 불과하다.
188쪽, 국민소득 증가에 가난해지는 가계가 볼모로 잡혀 있다
양적 완화로는 절대 대출을 늘릴 수 없고 민간 부문의 경제 회복도 촉진하지 못한다는 현실은 철저히 무시된다. 사실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이 양적 완화의 실패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양적 완화를 고집하는 건 그 목표가 반드시 실물경제 회복에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연준 의장 버냉키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자극이 양적 완화의 실제 의도임을 더는 숨기지 않는다. “주택가격이 오르면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을 갖게 되고 더 소비하려 한다. 그 가격이 계속 오르면 향후 기대수익 때문에 더 사려 한다.”
230쪽, 양적 완화의 실제 목표는 ‘부의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이 기관이나 외국인과 같은 전문가 그룹의 호객 행위에 혹해 시장으로 밀려들 때가 평가이익을 실현수익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최적의 시점이란 말이다. (중략) 자신들의 매물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라도 소화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연못 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들이 낙관과 긍정으로 편향된 전망을 내놓는 이유라 할 수 있다.
51쪽, 주식 시장 전망은 늘 좋다 그런데 기관과 외국인들에게만 좋다
중앙은행은 자신들의 시스템에 누수가 생긴 사실을 대중이 눈치채고 대안을 찾는 것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비트코인을 비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비트코인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존재 자체가 네트워크의 공개성과 유연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63쪽, 중앙은행의 비트코인 위험성 강조엔 중앙은행들의 물타기가 있다
노사문제가 발생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대립으로만 문제를 국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는 노동자와 노동자 간에 벌어지는 갈등이다. 사실 사용자라 칭하지만, 신분주의 개념으로 보면 대부분의 사용자들 또한 누군가의 하급자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들 중간층 이상의 관리자들이 더는 윤리적이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75쪽, 노동자를 탄압한다고 사용자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1969년 말 약 300원에서 2013년 4월 24일 1,118원으로 내려갔다. (중략) 반면, 엔화는 같은 기간 약 350엔에서 99엔으로 가치가 거의 3.5배 상승했다. (중략) 한국과 일본은 환율 측면에선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고 볼 수 있다. 원화는 내렸고, 엔화는 올랐다. 국민의 상식에 반하지만 사실이다.
81쪽, 환율 떨어진다는 호들갑은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흉이다
노키아는 거의 무너졌지만 핀란드 경제는 건재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정 국가 경제의 3분의 1을 책임지는 거대 기업이 뿌리부터 흔들려도 국가 경제가 건강할 수 있다니 말이다. (중략) 노키아가 흔들리면서 일자리를 잃은 다수의 연구개발 인력이 창업했는데, 이들이 세운 중소기업들이 오히려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면서 핀란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114쪽, 노키아가 몰락한 핀란드, 만약 삼성이 몰락하면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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