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감독하면 떠오르는 단어. '품격'이다. 성품이 다르다는 얘기다. 김 감독은 한국 야구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2009년엔 특히 소속팀 한화 이글스가 하락세였지만, 스프링캠프를 포기하면서까지 WBC 대표팀을 이끌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 야구는 준우승, 시즌 뒤 한화는 꼴찌였다.
프리미어 12에서도 그의 품격은 변하지 않았다. 19일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승리한 직후 인터뷰실에서 있던 일이다. "만약 감독님이라면 오타니를 8회에 교체했을까요." 한 외신 기자가 질문을 했다. "내가 그 팀을 맡지 않은 이상 투수교체는 뭐라고 말할 수 없다. 그 팀의 보이지 않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자리에서 오타니의 투수교체 시기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감독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김 감독은 적장을 예우했다.
김인식 감독하면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또 있다. 바로 '뚝심'이다. 최근 들어 몇몇 사령탑이 '뚝심'의 야구를 펼치지만 원조는 김인식 감독이다. 1998년 타이론 우즈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다.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첫 해 OB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우즈는 시즌 초반 헛방망이질을 하기 바빴다. 변화구에 타이밍이 전혀 안 맞는데다 자존심은 워낙 세 코칭스태프의 말을 무시했다.
그 때 주변에서 '선발 라인업에서 빼자'는 얘기를 했다. '우즈 타석 때 대타를 쓰자'는 등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꿈적 하지 않았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될 지라도 내버려뒀다. 결과는 당시로선 단일 시즌 최다 홈런인 42홈런 폭발. 사상 최초로 외국인 정규시즌 최우수 선수까지 차지했다.
김 감독의 이러한 뚝심은 프리미어 12에서 한국이 일본의 '꼼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초대 챔피언으로 등극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 엔트리에 든 28명의 선수가 모두 '영웅'으로 칭송받는 결과도 만들어 냈다.
21일 도쿄돔에서 미국과의 결승전. 이날의 승리 투수는 왼손 김광현이다. 8대0의 믿기 힘든 스코어 속에 결승타를 친 야수는 다름 아닌 이용규다. 사실 이 두 선수는 준결승까지 부진했다. 이용규는 팀이 치른 7경기 중 6경기에 출전해 24타수 4안타, 타율 1할6푼7리를 기록했다. 기대했던 '용규 놀이'는 나오지 않았고 출루율 2할5푼9리, 장타율은 1할6푼7리였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를 끝까지 중용했다. 타순 변화도 없이 붙박이 테이블 세터였다. 그 결과 선수가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 1회초 무사 2루에서 우중간 2루타를 때리며 단기전에서 가장 중요한 선취점을 한국에게 안겨다줬다.
김광현의 사정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대회 전부터 에이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8일 일본과의 개막전, 15일 미국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모두 5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2경기에서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점은 5.14. 하지만 김 감독은 결승전 선발 투수로 장원준이 아닌 김광현을 선택했다. "두 경기에서 부진했다는 시선이 많은데, 사실 강 팀이기 때문에 힘든 등판이다. 김광현이 조금 좋아졌다"라는 설명과 함께. 결과적으로 이 선택도 우리가 초대 챔피언이 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김광현은 5이닝 동안 72개의 공을 던지면서 4피안타 5탈삼진으로 무실점 피칭을 하며 이번 대회 첫 승을 마지막 경기에서 신고했다.
이처럼 한국 대표팀은 부진했던 선수들이 결승전에서 북과 장구를 나눠 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엔트리에 든 모든 선수가 제 역할을 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지만, 투수 13명, 포수 2명, 내야수 8명, 외야수 5명 등 28명이 만들어 낸 하모니는 완벽했다. 그리고 이를 이끈 건 지휘자인 김 감독. 한국 야구가 일본의 심장 도쿄돔에서 값진 역사를 썼다.
21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프리미어 12 결승전 미국과 한국의 경기가 열렸다. 미국을 꺽고 우승을 차지한 한국 선수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도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11.21.
그 간의 부진을 딛고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맹활약한 이용규(왼쪽)과 김광현. 스포츠조선 DB.
야구대표팀이 15일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티엔무구장에서 미국과 국가대항전 2015 프리미어 12 대회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를 펼친다. 경기 전 선수들이 훈련에 임하고 있다. 김인식 감독이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