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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5. 10. 1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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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형성되기 전에 먼저 선점해야

2015-10-13   이경만의 지식비타민

 

 

 

증권거래소,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과 더불어 런던의 금융시장을 상징하는 곳이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험사 '로이즈 오브 런던(Lloyd's of London)'이다. '자동차 보험' 등 오늘날 대부분의 보험 상품을 최초로 고안해낸 로이즈는 한때 보험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했다. 전 세계 도처에서 로이즈의 이름을 갖다 붙인 보험사, 선주, 조선소 등까지 생겨났기 때문에 혼동을 피하기 위해 '로이즈 오브 런던'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됐다.

설립 327주년을 맞는 보험의 대명사이지만 로이즈의 전신(前身)은 런던 템스 강변의 한 커피숍이다. 당시 카페는 사업가, 금융가, 선장, 정치가, 의사 등 각계 인사들이 모이는 런던 사교 생활의 중심지였는데, 일부 사업가는 단골 카페를 회사 주소로 신고하기도 했다. 로이즈 카페에는 늘 많은 손님이 북적였는데, 주인인 에드워드가 화물선의 출발 시각이나 도착 날짜, 바다의 날씨와 만조 시각, 해적이 출몰하는 지역 등 중요한 해상 무역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카페 주인에서 정보 중개인으로 발전한 에드워드는 해상무역 도중 위험한 상황을 맞게 되는 선원들에게 보장의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 그는 선원의 사고를 보상해주겠다는 손님과 선원을 연결해주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영국 해상보험의 시초가 됐다.

당시 런던에는 3000여개의 커피숍이 있었다. 그중에서 로이즈만이 역사에 남는 보험 업자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어떤 요인이 300년 동안 이 회사를 살아남게 했을까.

'로이즈 오브 런던' 잉가 빌 CEO 로이즈의 최고경영자(CEO) 잉가 빌(Beale· 52)을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객을 단순히 돈을 버는 영업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들의 입장에서 뭘 필요로 할지 고민하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역할이 창출돼 또 다른 수익으로 연결되는 원리가 로이즈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빌 대표는 로이즈 창사 325년 만에 나온 최초 여성 CEO다. 그는 GE 보험 부문 계열사, 취리히 보험 등에서 근무하며 30년간 보험 업계에서 일해왔다.

보험업을 시작한 이후로 300년 넘게 로이즈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빌 대표는 '신속한 보험금 지급으로 쌓은 신뢰'를 꼽았다. 로이즈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빠르게 보험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12년 타이태닉호 침몰 당시 천문학적인 보상금(140만파운드)을 24시간 안에 바로 지급했을 정도다. 개별 직원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문화 역시 로이즈 경영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한다. 바리스타의 코, 여배우의 미소 등 로이즈의 이름을 알린 각종 이색 보험 상품은 대부분 고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브로커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100여개의 보험업자 노하우의 집결

로이즈의 회사 형태는 대단히 낯설다. 로이즈는 자신을 '기업'이 아니라 '시장'이라고 부른다. 재래시장 상인들의 협동조합 같은 것이 발전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 그러면서도 이 특이한 구조로 300년을 달려왔다.

―300년 넘게 보험 시장을 주도해 왔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로이즈가 다른 일반 보험사들과 다른 것은 하나의 기업이 아닌 여러 개별 보험업자와 보험 중개사들이 모인 '시장' 혹은 '조합(組合)'이라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보험회사를 만들자'고 시작된 조직이 아니라 커피숍에서 선주와 선원, 사업가, 정치가, 의사 등 각계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보를 나누며 위험을 줄여 보고자 한 모임에서 출발한 조직입니다. 따라서 일반 회사와 비교해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리스크를 분석하는 면에서 탁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이즈에서 활동하는 개인 보험 업자들은 각자가 특정한 보험 부문에 주력해온 전문가들입니다. 일반 회사에서는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전문가를 직접 고용하거나, 다른 기관과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로이즈에서는 보험업자끼리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합니다. 좀 더 자유로운 지식과 경험 공유가 가능하지요. 아울러, 큰 계약이 있을 경우 여러 보험업자가 모여 큰 담보를 제공하기도 쉽습니다."

맥킨지 서울사무소 전은조 파트너는 "보험업의 본질은 지금까지 감수해보지 않은 리스크를 측정해 보험료를 산정하고, 도전하는 것인데, 로이즈는 하나의 회사가 아니라 각계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해보지 않은 다양한 사업에 대한 언더라이팅(underwriting·보험 인수)이 가능하다"며 "대부분의 보험회사가 위험도가 높거나 사전 위험분석 모델이 없는 경우 보험을 잘 받아주지 않지만 로이즈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금융 업계의 혁신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사고 수습은 빠르게… 위기는 기회로

―로이즈는 190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참사 후 3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보험금을 7일 만에 지급하면서 미국에서 인지도와 점유율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위험이 커지는 게 아닌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이미 각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에 사고를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보험 사업에서 보험업자의 신뢰를 좌우하는 것은 보험금 지급 능력과 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의사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험업자는 보험 사고가 발생할 경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로이즈는 '합당한 보험금 청구는 결코 거절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지켜왔습니다. 오랜 전통으로 구축한 각종 관행들이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고, 우리도 많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로이즈의 행보는 '최초'의 연속이다. 언제나 세상에 없던 상품을 내놓았다. 금융 전문가들은 로이즈가 '보험업의 혁신'을 주도했다고 평가한다. 로이즈는 화재보험의 재보험을 인수해 최초로 비해상 재보험 시장을 열었고, 처음으로 도난 보험을 고안했고 인공위성에 대한 보험도 최초로 인수했다.

―로이즈 자체가 보험의 역사라 할 정도로 시장을 주도하는 상품들을 내놓았습니다.

"그 부분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로이즈는 가장 혁신적인 금융사 중 하나로 알려졌는데, 늘 새로운 산업군이 자리 잡기 전에 새로운 상품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로이즈가 처음으로 자동차 보험을 내놓았을 때만 해도 '자동차'라는 용어가 없어 '바퀴가 달린 선박(vessel on wheel)'이라고 지칭했을 정도예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기술의 리스크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산업군이 형성되어 자리를 잡게 되면 보험 업자로서 선점하긴 늦었다고 봅니다. 앞으로 산업 전반을 주도할 분야가 무엇인지, 그곳에 어떤 위험이 있고, 어떤 보험을 만들 수 있을지 등을 미리 앞서 내다보고 남들보다 빠르게 진출해야 합니다.
로이즈가 명성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300년 동안 많은 산업 지형의 변화를 거치면서, 새로운 보험 수요를 예측하는 노하우가 생겼기 때문이죠. 현재 미국 다우존스 상장사의 97%, 영국 FTSE100 상장사의 94%가 로이즈 시장을 통해 보험에 가입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보험 상품이 나올까요?

"현재 글로벌 CEO들이 주목하는 리스크는 '평판'과 '규제' 두 가지 키워드로 나뉩니다. 인터넷과 모바일 등 플랫폼의 발달로, 기업의 평판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퍼지게 됐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통해 목격했듯이, 한번 무너진 평판을 살리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또 많은 사업가가 한 도시가 아닌 전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하면서 국가별, 도시별 규제가 사업에 주요한 영향을 주게 됐습니다. 규제는 정치와 직결되기 때문에, 국정 리스크도 하나의 요인이 됐지요.

과거에는 신체, 집, 자동차 등 물리적인 재산 손실에 보험이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사이버 공격, 개인 정보 유출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큰 자산 손실로 이어지는 사고가 보험 산업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테러와 주식시장 붕괴 같은 경제적, 인적 재난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리스크가 어느 산업에 집중될지 예측할 수 있어야, 우리도 그에 맞는 보험 상품을 준비할 수 있겠지요."

● 큰 조직일수록 개별 직원의 창의성 존중해야

로이즈에는 이색 보험 상품이 많다. 특히 다양한 신체 부위에 드는 보험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로이즈에 두 다리 보험을 들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두 눈을, 마돈나는 가슴을, 벳 데이비스는 가느다란 허리에 보험을 들었다. 영국의 유명 바리스타는 혀에, 네덜란드 와인 제조 업자는 코에, 심지어 미국의 한 미식축구 선수는 트레이드마크인 긴 곱슬머리에 12억원짜리 보험을 들기도 했다.

―특이한 보험 상품이 많던데,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습니까?

"보험 업자들은 인간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위험에 대해 보험을 들어줘야 합니다. 상품 아이디어를 위해서 브레인스토밍이 중요한데, 대부분의 일차적인 아이디어는 각 도시에서 영업하는 브로커들이 제안합니다. 상위 경영진보다 직접 고객을 상대하는 그들이 시장 상황에 대해 너무나 잘 알 것이기 때문이죠. 경영진은 이들 의견을 가감 없이 들어주는데, 대부분의 제안이 실제로 상품화되곤 합니다. 자동차, 인공위성 등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항상 로이즈가 가장 먼저 보험 인수를 할 수 있었던 건 새로운 산업을 개척하려는 브로커들 덕분이지요."

―300년 전통의 회사를 이끌고 계십니다. 특별하게 전통을 중시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상품과 사업 방향 면에서는 혁신을 추구하지만, 단체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전통의 가치는 지켜나가야 합니다. 로이즈가 300년 이상 세계 보험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올 수 있었던 건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 국민의 자부심이 부여된 강력한 브랜드 파워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새로운 기술은 적극 도입하되, 전통의 가치는 잃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로이즈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자부심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로이즈 본사에는 '로스 북(loss book)'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주요한 대형 사고를 기재하는 책인데, 여전히 백조의 깃털로 만든 펜을 든 17세기 영국식 복장의 직원이 손수 기재하는 등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합니다."

―회원사 각각의 능력이 다 다른데 문제가 되지 않나요?

"개인 보험 업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재력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한 번도 지급 불능 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재 작은 전문 기업부터 대규모 다국적 기업까지 100개 이상의 보험중개회사가 로이즈의 보험중개인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로이즈는 회원 자격을 획득하고자 하는 지원자들에게 엄격한 자산 테스트를 매년 시행하고, 각 신디케이트의 지급 능력도 감사합니다. 기존의 회원들도 감사 요구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예탁금을 인상하거나 보험 인수를 중단하도록 합니다."



배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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