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래서 넥센팬이 됐다" 어느 택시기사의 고백 출처
스포츠경향|김은진 기자|입력 2014.10.31 06:33|수정 2014.10.31 10:13
지난 28일 플레이오프 2차전을 보기 위해 목동구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놓쳐 급하게 택시를 타고 "목동야구장 가주세요"했더니 기사 아저씨가 말했다. "오늘도 야구장 앞이 통닭들로 가득하겠구먼."
야구장을 찾은 팬들의 먹거리 얘기를 시작으로 기사 아저씨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 야구 대화를 나눴다.
결혼한 아들 둘을 둔 기사 아저씨는 "하나는 LG, 하나는 두산 팬이고, 나는 넥센 팬"이라고 야구 팬인 가족을 소개했다. "다들 같이 살면 이번 포스트시즌을 보며 엄청 싸웠겠지만, 모두 분가했기 때문에 흩어져 보는 게 다행"이라며 "아들이 올해는 분명히 LG가 한국시리즈까지 가서 우승할 것이라고 장담하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반박했다"며 껄껄 웃었다.
↑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강정호가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 경기에서 2회초 1사 솔로 홈런을 치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2014.10.30 /목동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기사 아저씨는 "원래 LG 팬이었는데 넥센이 생긴 뒤 넥센을 응원한다"고 전했다. 다른 팀도 아니고, 충성도 강하기로 유명한 LG에서 넥센으로 옮겼다니, 이유가 궁금했다.
아저씨는 "넥센 선수 중에 이택근을 제외하면 큰 몸값을 받고 출발한 선수가 아무도 없다. 어떻게 보면 다들 원래 팀에서 버려진 선수들이다. 그런 선수들이 언젠가부터 프로야구를 뒤엎어버렸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노력을 했겠나. 이 선수들의 성공이 너무 기특하고 감동적이라 응원하고 싶다"고 넥센 선수 하나하나 이름을 언급했다.
그러다 목동구장에 도착했다. 택시를 탄 시간이 오래지 않아 더 듣지 못한 것이 아쉬웠을 만큼 아저씨의 넥센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올해 프로야구 정규시즌은 넥센의 무대였다. 타격 타이틀 경쟁으로 시작된 넥센의 집안 잔치는 페넌트레이스 MVP 경쟁으로 이어졌다. 모두가 아픔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극복해 성공 신화를 썼다.
지난해까지 2년 연속 MVP를 차지하며 3년째 홈런왕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는 박병호는 LG에서 2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6년을 보냈다. 성남고 시절 훈련하다 자꾸만 홈런을 쳐 유리창을 깨는 바람에 학교에서 초대형 그물망을 설치했다는 일화로 유명한 '고교생 4연타석 홈런'의 주인공이지만 프로 입단 이후 자리를 잡지 못해 긴 좌절의 시간도 보냈다. 넥센으로 트레이드돼 '4번 타자' 타이틀을 단 박병호는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받았던 설움을 '뻥뻥' 날렸다.
2012년 신인왕에 오른 뒤 올해 타격·안타·득점 1위를 독식하며 잠재력을 완전히 터뜨린 서건창은 신고선수 출신이다. 그나마 1년 만에 방출된 뒤 육군 현역으로 군대에 다녀오고나서 넥센에 다시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군 복무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야구 생각을 쉬지 않고 하며 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서건창의 성공 스토리는 이미 신인왕 시절에도 잘 알려졌다. 불과 2년 만에 서건창은 약점을 고치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프로야구를 평정해버렸다.
이 대표적인 두 선수를 비롯해 윤석민·김민성·이성열 등 넥센의 많은 선수들이 다른 팀에서 트레이드 등을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이 선수들의 존재감은 전에 있던 팀보다 넥센 합류 이후 더 강해졌고, 이들이 모인 넥센 타선은 위력을 더해 '강타선'이라는 최강의 팀 컬러를 만들었다.
항상 하위권에 머물던 넥센은 이렇게 달라진 팀 컬러를 앞세워 서서히 올라섰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더 강해진 채 이 가을 잔치의 주인공이 돼 있다. 넥센은 '영웅 우승 도전'을 이번 포스트시즌의 테마로 정해 외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다.
이제는 자유계약선수(FA) 한 번 하면 몇십억을 한 손에 쥐게 되는 시대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프로야구 선수들도 알고 보면 각자 하나쯤은 아픔을 겪었다. 그 중에서도 더욱 큰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견뎌내 모인 선수들이 여기 넥센에 있다.
꼴찌에서 성공으로 달려온 넥센의 이 기특한 영웅들. 이 가을잔치의 감동을 더해주는 또 한 가지의 이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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