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정글만리>는 우리 문학계에 오랜만에 등장한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지난해 여름 출간 이후 100쇄를 넘었고, 130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그 기세는 올 여름에도 이어져서 이 소설은 '직장인들이 여름휴가철에 읽고 싶은 독서 목록'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정글만리>는 조정래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점을 여실히 확인시켜줬다. <정글만리>는 소설임과 동시에 중국정보서 혹은 중국소개서이기도 한데,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과 달리 문학비평가들이나 중국전문가들에게는 혹평을 받고 있다. 특히 중국정보서·중국소개서 차원에서의 평가는 더욱 좋지 않다. 일반 독자나 중국 관련 업무에 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 중국에 갓 파견된 주재원들은 <정글만리>에 좋은 평가를 내놓는다. 이 소설을 통해 중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국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나 중국에 주재한 지 오래된 상사원들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소설 속 중국에 대한 정보가 중국 패키지 투어 가이드의 소개 멘트 수준이며, 중국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가득 찬 책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심지어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둔 사람들은 절대 보지 말아야 할 책'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다면 <정글만리>에 대한 이런 부정적 평가는 무엇 때문이고, 왜 <정글만리>는 '위험한' 중국소개서일까.
소설 <정글만리>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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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의 소설 <정글만리> 1~3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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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는 대략 세 가지 차원에서 검토가 가능하다. '소설'이라는 차원과 '중국 정보'라는 차원 그리고 <정글만리> 신드롬이라는 대중문화 현상 차원이다. 이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일은 중국이 G2 대국으로 부상하는 지금, 한국에서 일어난 대중문화 현상의 하나로서 그 의미를 따져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부상하는 상황에서 중국을 다룬 기업 소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정글만리> 신드롬의 의미를 따져 보는 것은 중요하다. 소설적 성취보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중국 이야기가 <정글만리> 흥행에 큰 몫을 했다. <정글만리>에는 중국에 관한 격언들이 가득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중국에는 절대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3대 금기가 있다. 첫째 마오쩌둥에 대한 험담, 둘째 공산당에 대한 비판, 셋째 대만 독립에 대한 지지.""당원의 기본 자격이 뭔지 알아? 인물, 실력, 언변이 3대 요건이야.""고급 관리들은 자기네 단골식당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과 약속을 할 때 이쪽에서 먼저 장소를 정해버리는 것은 중국 사람들의 멘쯔(面子, 체면)를 깎는 일을 저지르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런가 하면, 소설에는 중국 학생들이 미국이나 마오쩌둥·덩샤오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중국인들이 중국 공산당을 보는 눈, 중국인이 한국을 보는 시각 등등 한국인이 알고 싶고, 궁금하게 여기는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일반인들이 중국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요소들을 집대성해 놓고 작가 나름대로 답을 내놓기도 한다. 독자들이 이 소설을 중국소개서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소개서 차원에서 서구가 보는 중국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중국 내부 시각을 통해 드러내고, 이를 통해 중국인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게 한 점 등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을 이해하는 데 다소 위험한 <정글만리>그런데 <정글만리>에는 이런 미덕만 있는 건 아니다. 중국에 관한 잘못된 정보, 피상적 정보 등 위험한 정보도 많다. 조정래 특유의 남성중심 성향이 이번 소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가령, 중국 여성을 성적으로 방종한 '헤픈 여자'로 해석하면서 그 배경을 마오쩌둥의 여성 정책에서 찾는다든지, 카드를 위아래로 긁기 때문에 '卡'(지킬 잡)자를 최근에 만들었다거나, 차를 스스로 우려낼 줄 알아야 중국 비즈니스가 가능하며, 중국 공무원들은 축첩과 부패에 혈안이 돼 있다는 등의 정보가 그렇다. 이 책에 나온 중국 정보를 믿고 그대로 중국인과 비즈니스를 한다면 영락없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 책에서 수도 없이 강조하는 '꽌시'(關係, 관계) 문제도 그렇다. 소설에서는 꽌시를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학연, 지연, 혈연을 다 합친 그 어떤 것'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중국의 꽌시는, 중국의 사회학자 페이샤오퉁(費孝通) 교수의 지적대로 '개인을 출발점으로 하여 동심원으로 확대되는 차서(差序) 구조'라는 점에서 강한 집단주의 특성을 지닌 한국의 학연·지연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연줄과 빽이 최신형 스마트폰처럼 만사형통으로 잘 통하는 세상"(<정글만리> 3권 107쪽)이라면서 중국을 '꽌시 사회'로 규정하고, 꽌시만 있으면 중국 비즈니스에서 뭐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꽌시 만능주의'를 설파한다. 꽌시를 위해서라면 뇌물과 같은 부정한 방법까지 총동원해야 하는 것처럼 돼 있다.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인들이 이 책을 믿고 꽌시를 맺기 위해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소설 <정글만리>는 중국에 대한 정보를 작가의 분신인 장대광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매우 단정적이고, 확신에 찬 어조로 전달한다. 이것이 중국이고, 이것이 중국인이라고, 중국인은 이렇게 상대해야 하며, 중국 비즈니스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작가의 태도는 때로는 전지전능한 교주 같고, 때로는 수능을 코앞에 둔 수험생에게 족집게 특강을 하는 사설학원 강사 같다. 카리스마 넘치고, 명쾌하고도 단정적인 어투로 중국인과 중국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는 까닭에 사실 여부를 떠나 듣는 이들은 쉽게 휩쓸리게 된다. 그럴수록 소설 속 중국에 관한 정보는 위험하고 무책임해질 우려가 있다. 일반인들이 소설 속 중국 정보를 높게 평가하는 반면, 중국 비즈니스에 오래 종사했거나 중국 전문가들이 이 소설을 낮게 평가하고 위험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정래는 10년 전의 정보이거나 부분적 혹은 표피적인 정보를 확신에 찬 어조로 단정적으로 이야기한다.
형편없는 불량국가 중국...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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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정글만리>속 중국은 '형편없는 불량국가'로 그려진다. 과연 그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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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소설 속 중국에 대한 이미지다. 중국은 G2 경제대국이다. 그런데 소설 <정글만리>에서 중국은 무지와 부정부패, 혼란, 탈법이 난무하는 나라로 그려진다. 경제규모만 G2일 뿐, 중국인들의 소질이나 도덕의식·사회의식·질서의식·준법의식은 형편없는 불량국가인 것이다.이런 묘사는 소설 시작서부터 나온다. 소설 초반부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시끄러운 중국(호떡집에 불난 듯이 시끄럽다는 중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고정적 이미지의 부각)과 돈벌이를 위해 교통사고를 위장해 길에 누워버리는 중국인이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중국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첩, 이른바 '얼나이'가 있고 뇌물만 밝히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진다. 부정과 부패, 혼란과 무법천지의 나라가 중국이고, 타이완까지 사찰이 이뤄지는 경찰국가가 중국인 것이다.작가는 서문에서 "중국이 오늘을 이루어내는 동안 겪은 삶의 애환과 고달픔" "그 얘기를 두루 엮어보고자 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농민공의 죽음을 상투적으로 다룬 게 그나마 이 언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소설 전편에 '부패한 중국' '혼란스러운 중국'에 대한 이야기만 있을 뿐, 중국인 삶의 애환과 고달픔은 보이지 않는다.
<정글만리> 신드롬이 탄생한 이유이런 문제가 있는데도 <정글만리> 신드롬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정글만리> 신드롬을 문화 현상의 차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물론 기본적인 흥행요소가 있다.작가 조정래가 <태백산맥><아리랑><한강> 등 잇단 밀리언셀러를 통해 안정적인 고정 독자층을 확보한 작가라는 점, <네이버> 연재로 사전 홍보 효과를 누렸다는 점이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거의 팬클럽 수준인 고정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조정래와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가 만난 게 흥행의 든든한 배경이 된 셈이다. 그런 든든한 배경에 중국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추가됐다. 여기서 중국이라는 변수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중국이 G2 대국으로 부상하며 중국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시기 차원의 변수이고, 다른 하나는 소설의 배경으로서의 변수다. 두 차원의 변수가 흥행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정글만리>에 관한 수많은 인터넷 독후감이 그렇듯 중국이 G2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시기에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에 관한 정보를 담았다는 점이 독자들의 관심을 촉발시킨 것이다.세계 각국이 다 그렇긴 하지만, 특히 한국은 대중국 진출 전략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값싼 노동력과 원료를 바탕으로 세계 공장 노릇을 하던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시대에서 세계 최대 시장이 된 중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메이드 포 차이나(Made for China)' 시대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중국 바라보는 한국의 복잡미묘한 시각중국 내수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고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중국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지금, 한국인들의 심리는 실로 복잡미묘하다. 중국의 급부상 앞에서 한국도 동반성장하면서 살 길이 생길 것이라는 '중국기회론'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화주의와 패권주의가 부활할까봐 근심하면서 중국위협론에 마음이 기울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소설 <정글만리>는 중국의 부상을 두고 한국인이 느끼는 기대와 우려에 절묘하게 접속한다. 독자 입장에서 볼 때, 소설에 등장하는 종합상사원 전대광과 철강 대기업 상사원 김현곤은 중국 시장과 더불어 성장하는 한국의 상징이다. 중국에는 한국에서 실패한 성형의사도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하나만 잘 팔아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또 소설 속 송재형과 리옌링의 결혼이 상징하듯이 중국과 한국은 동반성장의 파트너이자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는 동맹군일 수 있다. 이러한 중국 이미지는 한국인의 중국기회론에 부응한다. 그런가 하면, 부패와 무질서 등으로 상징되는 부정적인 중국 이미지, 미국에 당당히 맞서는 중국 젊은이들의 이미지, 한국인이 타이완에서 한 발언까지 추적해 응징하는 중국의 국가 이미지는 '중국위협론'을 충족한다. G2시대 한국인들이 중국을 보는 양가적 인식을 골고루 충족시켰다는 점에서는 조정래의 능력이, 그의 탁월한 대중적 감각·흥행 감각이 돋보인다.한편, 기업과 젊은 남성 회사원들은 <정글만리> 신드롬의 또 다른 중요한 주역이었다. 많은 회사들이 사원 교육용으로 이 책을 단체 구매할 정도로 이들의 <정글만리> 독서욕을 자극한 것은 무엇일까. <정글만리>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 세일즈맨의 자기계발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정글만리>를 읽은 세일즈맨이라면 아마도, 광활한 중국시장에 뛰어들어 세일즈맨으로서 인생을 던져 보고 싶은 욕망을 느꼈을 것이다.
'과거'에 대한 향수 뿌려놓은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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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정글만리>를 내놓은 조정래 작가. 사진은 2013년 9월 <오마이뉴스> '보이는 이털남' 녹화 당시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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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관통하는 세계 최대 시장 중국에서 펼쳐지는 종합상사원들의 분투기는 기업과 회사원들의 독서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한국 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은 과거 수출 한국이 지상 목표이던 시절에 세계 오지 시장을 개척하며 세일즈하던 찬란한 신화를 잊지 않고 있다. 애국심과 시장 개척의 열정으로 뭉쳐 세계 시장에서 온몸을 바쳐 전쟁을 치르던 시절에 대한 강렬한 향수가 있다. 조정래는 <정글만리>에서 그 향수를 자극한다. 과거 한국 경제가 도약하던 개발 연대 시대에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세계 오지를 휘저으며 시장을 개척하던 종합상사원들의 열정과 애국심에 조정래가 얼마나 향수를 느끼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정래는 그 시절, 박정희와 박태준 시대일 것으로 짐작되는 그 시절에 수출 한국의 상징이었던 종합상사 시스템에 대한 진한 향수로 작품을 물들인 듯하다.조정래의 눈에 "한국 기업의 주재원들은 불가사의한 존재들"이며 "명문대 출신들이고 하나 같이 집념과 열정의 소유자"이자, "중국 시장에 들어가면 곧 미친 듯이 중국어를 익히는 사람"들이다(<정글만리> 3권 251쪽). 소설에서 한국 상사원들의 집념과 열정 그리고 능력은 중국어도 못하고 중국 룸살롱만 들락거리는 일본 상사원들과 비교된다. 조정래는 <정글만리>에서 과거 수출 한국 신화의 상징인 종합상사 시절의 영웅들, 실력과 열정·집념·애국심을 지닌 전대광 같은 영웅들이 G2시대 중국을 무대로 다시 부활하기를 희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정래의 작품들이 대개 그렇지만, <정글만리>에서도 조정래는 참으로 민족주의적이다. 그리고 그의 특유의 민족주의가 G2시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기업소설 <정글만리>에서 다시 한 번 개화한다. 요컨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배경으로 그의 민족주의 성향과 종합상사 시절의 향수가 만나는 지점에 <정글만리>가 있다. 적어도 한국 기업과 한국의 젊은 회사원에게 <정글만리> 열풍은 민족주의와 G2시대 중국시장 개척 욕망의 결합물이다. 그리하여, <정글만리>를 읽는 독자들은 그저 더위를 쫓는 흥미 차원에서 이 작품을 읽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중국정보서나 중국소개서 차원으로, 우리가 숙제처럼 안고 가야 할 중국 문제를 생각해보는 기회로 여기지 않길 권할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욱연씨는 서강대 중국문화전공 교수입니다. 이 글은 중국학보(2014.06.)에 실린 서평을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