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이긴 중국인의 힘,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중국 속에서 15년 34- 사람⑤] 유머는 중국인들의 힘
오마이뉴스 2014.06.26 12:13 최종 업데이트 2014.06.26 14:50 조창완(chogaci)
최근에는 큰 발전을 이룩했지만 중국의 근현대는 그다지 녹록지 않았다. 1949년 중국이 탄생했지만 소련의 원조 거부 등으로 큰 곤란을 겪어야 했다. 1958년 마오쩌둥이 주도해 진행된 '대약진 운동'은 산업구조를 와해시켜 2000만 명 이상의 아사자를 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1966년부터 10년간은 '문화대혁명'이 진행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탄압을 받았고, 사상의 자유 등은 억압받았다.
신중국이 탄생한 직후에 태어난 이들은 이제 60대 중반이다. 그들은 8살을 전후해 대약진을 겪었고, 16살부터 26살까지 홍위병이나 피해자로 시대를 겪어야 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남는 것은 상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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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을 보고 가는 중국 사람들 트럭 한대로 시장을 보고 가는 중국 후난성 펑황마을의 주민들. 고된 삶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다 |
ⓒ 조창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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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처 속에 중국인들을 지킨 가장 큰 힘이 무엇일까? 나는 '유머'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중국어에서 유머는 라틴어에서 따온 '요우머(幽默)'라는 단어로 쓰인다. 그런 중국인들의 웃음을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때가 춘지에(春節) 무렵이다. 우리의 설날인 중국의 춘지에는 중국에서 가장 큰 전통 명절이다.
이 때가 되면 중앙텔레비전(CCTV) 등이 주관해 춘지에완후이(春節晩會)를 벌이는데, 이때 가장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이 샤오핀(小品)이다. 샤오핀은 진(晉)나라 때부터 전해온 '만담'이다. 우리에게는 장소팔·고춘자로 유명하던 과거의 만담을 떠올리면 다르지 않다. 구봉서나 배삼룡이 주도하던 1980년대 코미디와도 닮아있다.
이 샤오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자오번산(趙本山) 등 희극인들이다. 자오번산은 중국 연예인들 가운데 가장 부자로 알려졌는데, 그의 수익이 천문학적인 방송 출연료 등에서 나온 것을 감안하면 중국에서 샤오핀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 수 있다.
일반 중국인들은 한 해가 바뀌는 시간에 고향집으로 돌아가서 시간을 보내는 궈니엔후이지아(過年回家)를 중요한 전통으로 생각한다. 고향 집에서 이 샤오핀을 보는 것으로 한해를 넘긴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텔레비전이 보급된 이후, 방송을 보면서 웃는 모습은 중국인들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다. 때문에 2000년 7월17일 자오번산과 짝을 이루던 연기자 자오리롱(趙麗蓉) 여사가 죽었을 때 어느 정객이 죽은 것보다 애도 분위기가 강했다.
한국전쟁 이후 아주 큰 곡절은 많지 않았던 우리에 비해 더 큰 고난을 겪었던 중국인들에게 유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는지 모른다. 아니 중국 역사도 그랬다. 힘이 약했던 한족들이 강한 유목민족과 정권을 주고 받으면서 흘린 피는 엄청났다. 그런 시간을 넘길 수 있는 것도 유머였다.
그런 유머를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문학작품이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독자가 있는 위화(余華)의 소설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골계미'다. 위화의 초반 작품인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世事如烟)'에서는 비장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소설 전체를 장악한다.
하지만 장이머우를 통해 영화(인생)로도 제작된 '살아간다는 것'이나 '허삼관 매혈기' 등에서는 웃음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된 재료가 된다. 전쟁이나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으로 주변 사람들과 가족이 세상을 떠날 때조차 주인공 푸구이(富貴)는 웃음으로 그 시대를 대변한다.
'자라 대가리'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고, 남의 씨로 난 아들인지 알면서 기꺼이 피를 팔아서 역경을 헤쳐 나가는 허삼관 역시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당대 중국의 졸부들이 탄생한 모습을 배경으로 한 '형제' 역시 기괴하리 만큼 특이한 이야기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모습이 느껴진다.
이런 웃음은 단순한 웃음을 넘어선 깊이가 있다. 어찌보면 초탈의 의미까지 갖고 있는 중국의 웃음을 느껴지게 하는 작가로 차오웬쉬엔(曹文軒)을 빼 놓을 수 없다. 그의 소설들은 이미 우리나라에 십여 권 이상이 번역되어 나왔다. 그런 가운데 그의 좋은 중편소설 4개를 추려서 출간한 <안녕 싱싱>(사계절 간)은 차오웬쉬엔의 문학은 물론이고, 중국인들의 내면에 깊숙이 녹아있는 유머와 순진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한 좋은 작품집이다.
1954년 지앙수성 옌청(鹽城)의 한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문화혁명 후반기인 1974년 베이징대학 중문과에 입학한다. 1983년 2월 '뿔 없는 소'(沒有角的牛)라는 중편소설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그는 모교인 베이징대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아동문학 등을 통해 강력한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만들어간다.
<안녕 싱싱>에는 그의 소설 가운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야풍차', '열한 번째 붉은 천', '흰 사슴을 찾아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야풍차'는 바람으로 물을 대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얼바옌즈와 그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아들에게 수송선을 쌀을 훔치게 하다가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시작되고, 논의 곡식들은 말라간다. 곡식이 타는 만큼 심장도 타 들어간다. 그러던 중 태풍이 불고, 풍차조차 미친듯이 돌아가서 위기에 빠진다. 돛을 올려야만 풍차가 물을 논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미친듯 돌아가는 풍차를 아버지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 얼바옌즈는 풍차에 올라가고 어렵사리 돛을 올린다. 바람에 날린 얼바옌즈는 호수에 빠져 목숨을 건지고, 아버지는 얼바옌즈의 등을 두드려준다.
마을 사람들에게 소외받으면서 홀로 살아가는 곰보 할아버지와 물에 빠져 숨이 넘어가는 이를 업고 달리는 소의 이야기를 다룬 '열한 번째 붉은 천'이나 도시에서 하방되어 시골에 온 야 누나와 소년의 마음을 담은 '안녕, 싱싱', 아버지 간에 사이가 나쁜 아이들이 눈사태로 묻힌 후 필사적으로 빠져 나오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그린 '흰 사슴을 찾아서'는 모두 따스한 마음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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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798에 전시된 위에민준 그림 혁명을 상징하는 마오쩌둥의 조형물과 웃는 일반을 담은 위에민준의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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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도 당대 역사가 가진 모순을 웃음으로 승화한 경우가 많다. 1962년생으로 중국 화단의 기린아 중 하나인 위에민준(岳敏軍)은 당대를 겪어온 중국인들의 삶을 웃는 얼굴로 승화해 세계 화단을 흔들었다.
물론 위화나 자오원쉬엔, 위에민준이 중국인들의 마음을 모두 대변한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필자가 시간을 두고 만난 중국인들에게 느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런 정과 유머다. 이런 이들은 도심의 화려한 장소보다는 베이징의 후통(胡同)이나 상하이의 스쿠먼(石庫門) 같은 낡은 도시 혹은 중국인들이 여유를 찾는 공원에서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런 기질은 정치인들에게도 종종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가 오뚝이 정치인 덩샤오핑이다. 1978년 10월 덩이 부총리의 신분으로 일본은 방문했을 때, 신칸센을 태워주면서 이렇게 묻는다.
"현재 시속이 240킬로미터입니다. 느낌이 어떻습니까" 그러자 덩은 잠시 웃다가 답한다. "빠르다는 게 느껴지네요. 바쁜 사람이 재촉하면서 달려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일행에게 이렇게 빠른 기차가 왜 필요한가요."
이런 말들은 나중에 작은 영토를 가진 일본에서 왜 이렇게 빠른 기차가 필요한지를 묻는 방식으로 확장됐다. 자국의 능력을 자랑하는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구기지 않으며, 응수하는 방식으로는 최선이었다.
현재는 고속열차의 시속을 상용속도 350킬로미터까지 운행하고, 시험열차의 경우 605킬로미터까지 성공했으니 중국인들이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