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 기사를 읽다보면 링호우(零後)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중국에서 연도를 읽을 때 10, 20, 30처럼 뒤에 영이 붙은 해를 숫자에 맞추어 시링(十零), 얼링(二零), 싼링(三零)으로 부르는데, 요즘 많이 등장하는 파링호우(八零後)나 지우링호우(九零後)는 1980년과 1990년 이후에 태어난 연령대를 뜻한다. 사실 한국에도 '386세대'나 '486세대'처럼 컴퓨터의 발전에 따른 세대 명칭도 있고, 베이비붐 세대나 IMF세대 등 곡절에 따른 세대 이름이 있으니 그다지 낯설지 않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왜 단순하게 10년 단위로 세대명을 붙알까. 그리고 그 세대들이 함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연도처럼 단순한 측면도 있지만 중국 현대에서 각 10년이 갖는 의미는 나름대로 독특한 의미가 있다. 중국을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태어난 시대별로 특색과 역사적 배경을 한번 더듬어 보자.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호칭 '링호우' 중국 정치의 세대를 구분할 때는 보통 혁명1세대 등 핵심 지도자의 변화를 통해 정치세대를 구분한다. 혁명 1세대는 마오쩌둥이나 저우언라이, 주더처럼 중국 공산화를 이룬 이들이다. 다음은 장정에 막내로 참여했던 덩샤오핑과 그 비슷한 연령대가 2세대를 이루고, 이후에 집권한 장쩌민이 3세대, 다시 이후에 집권한 후진타오가 4세대, 그리고 지금 주석인 시진핑 세대가 5세대다. 보통 세대의 마지막은 정치국 상무위원에 취임할 수 있는 나이 한계가 70세이기 때문에 이들의 연령으로 맞추면 지도자의 연령을 가늠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의 열여덟 번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임기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다. 나이순으로 보면 위정셩(1945년생), 장더장(1946년), 장가오리(1946년생), 류윈산(1947년생), 왕치산(1948년), 시진핑(1953년생), 리커창(1955년생) 순이다. 때문에 2018년에 새롭게 출범하는 열아홉 번째 상무위원회에는 앞에서 서너 사람이 빠지고, 차기 지도자 주석 후보인 후춘화(1963년생)와 쑨정차이(1963년생)를 비롯해 한두 사람 정도가 상무위원에 포함될 것이다. 상무위원을 되기 위해서는 보통 25명 정도로 구성되는 정치국 위원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후보가 될 수 있는 인물은 195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왕양(1955년생), 자오러지(1957년생), 왕후닝(1955년생), 한정(1954년생), 장춘셴(1953년생) 정도가 후보군에 포함될 수 있다. 정치 지도자의 순번대로 보는 것이 정치 중심이라면 태어난 후의 연대를 기점으로 본 '링호우' 호칭은 좀 더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호칭이다. 중국에서 보통 링호우 세대는 1950년에 태어난 우링호우(五零后)부터 시작된다. 쓰링호우(四零后)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죽은 영혼(死靈)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같아 보편화되지도 않았고, 너무 연령이 많은 대에게 붙이기에는 적당치 않아서 부르지 않는다. 반면에 '우링호우(五零后)'는 1953년생인 장루오쉐(张若雪)라는 작가에 의해 책으로도 출간돼 문화적 코드로도 자리 잡았다. 1950년에 태어났다면 환갑을 넘은 나이인데 올해 지도자로 부상하는 시진핑(習近平)이 1953년생이어서 그들과 문화적 공감대가 일치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연대적 기억에서 가장 깊게 끄집어 내는 것으로 문화대혁명(아래 문혁, 1966~1976)을 설정했다. 1953년생이라면 문혁 당시 나이가 14살 정도 된다.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부터 대학을 졸업할 시간까지 그들의 기억은 온통 문혁의 기운이 팽배했다. '지식청년'(知靑)으로 불리지만 정작 지식을 습득할 기회를 잃어버린 세대인 셈이다. 이런 기운은 1951년생인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영화 <인생>의 후반이나 이보다는 늦게 태어났지만 지앙원 감독(1963년생)의 <햇빛 쏟아지던 날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우링호우가 역사의 수레바퀴에만 짙 눌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장루오쉐의 책에 나타나듯 이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보상받으려는 듯 월드컵 등을 즐기는 세대다. 이제는 대부분이 인정하는 역사의 오류로 인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도량은 넓어 환갑도 되기전에 현직에서 물러나 앞세대와 뒷세대를 잇는 역할을 했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성공에 대한 열망 높은 류링호우 세대
1960년 이후에 태어난 류링호우(六零后)는 상대적으로 이 세대 구분에서 존재가 뚜렷하지 않다. 이들은 문화대혁명의 후반을 약간 체험했다. 이들에게 큰 흔적은 아마도 개혁개방일 것이다. 마오쩌둥이 죽은 짧은 화국봉시대가 지나고 덩샤오핑 시대가 온다. 덩샤오핑이 실권을 장악하던 1980년에 그들은 스물이 넘는다. 때문에 개방의 환경에서 성공에 대한 열망을 키우기에 적합했던 세대들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의 화인이 강하게 찍히지만 이들은 중국 근대화의 기수라할 수 있는 세대다. 한국의 386세대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은 50대의 중산층이다. 중국은 한국보다 산업화가 약간 늦어, 경제발전의 중심세대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와 비슷한 산업화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시대를 맞아 비즈니스를 한 세대도 많기 때문에 중국 경제의 허리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앞세대에 비해 시대가 주는 최악은 피했고, 능력에 따라 지도자로 부각하는 이들이 많은 세대이기도 하다. 정치계에서 가장 부각하는 인물은 1963년생인 후춘화(胡春華) 광동성 당서기다. 상무위원으로 가는 동아줄인 중앙정치국 위원이며, 시장이나 네이멍구 지역을 거쳤다 큰 흠결이 없는 한 차기 지도자로 주목을 받을만하다. 같은 1963년 생으로 46세에 농업부 부장을 거친 후 지린성에 이어 복잡한 지역인 충칭시 서기를 맡는 쑨정차이(孫政才)도 주목받는다. 그밖에도 1960년생으로 46세에 인구 1억 가까운 후난성 성장을 지낸 저우지앙(周强)이나 1967년생으로 지난해 헤이룽장 대리 성장에 임명된 류하오(陸昊)도 관심받는 류링호우 정치인이다. 비즈니스계에서 류링호우는 더욱 도드라진다. 중국 최대 포탈 바이두를 만들어 600억 위안(한화 10조 원가량)의 재산을 갖고 있는 리옌홍(李彦宏 1968년생), 알리바바의 창시자 마윈(馬雲 1964년생) 등 IT업계나 롱후그룹 우야쥔(吳亞軍64년생) 등 부동산 개발의 기획자들의 상당수가 류링호우다. 확 달라진 세대 분위기
치링호우(70后)부터는 쉽게 아라비아 숫자를 붙여도 될 만큼 이런 단어들가 익숙해졌다. 이 세대의 특징이 있다면 공산화로 억제됐던 중국인들의 본능이 살아나 키워진 세대라는 것이다. 이들은 부모들이 가진 교육열이나 부자되려는 욕망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소황제'라는 단어가 보편화될 만큼 귀한 존재로 자라난 이들이 많다. 대학 정원도 늘어나면서 고학력자들도 생겨났다. 유학도 본격화돼 일본, 한국, 미국이나 유럽 등으로 급속히 유학도 늘어났다. 아직 정계에서는 두드러진 인물이 많지 않지만, 최근 들어 차기 지도 그룹인 공청단(共靑團)의 최고 책임자(書記)는 대부분 치링호우로 채워지고 있다. 가장 부각하는 인물은 1976년생으로 36세에 구이저우성 공청단 서기가 된 마닝위(馬寧宇), 1975년생인 후베이성 서기 장구이화(張桂華) 등이 꼽힌다.
링호우 세대가 가장 의미를 부여받은 세대는 파링호우(80后)다. 바로 한 집에서 한 아이만 태어나게 하는 독생자녀제도가 확고하게 만들어진 뒤 태어난 세대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과 더불어 중국의 부를 위해서 한자녀만 낳게 하는 정책을 강하게 시행했다. 자식이 곧 부라는 인식이 강했던 중국에서 이 문화는 많은 비극적 사태도 양산했지만 다른 세대들과 구분하는 독특한 그들만의 세대적 특징을 만들었다. 독생자녀들의 다른 호칭은 '작은 황제'(小皇帝)인데, 이 말에서 나타나듯 이들은 지극히 보호받은 세대다. 이들은 서서히 커가는 부모들의 경제력을 배후로 해서 모든 면에서 호강받는 세대이기도 하다. 한 아이에게는 부모님들과 조부모, 외조부모 등 6명의 시선이 아이로 쏟아지는 만큼 다양한 호사를 누렸다. 하지만 호사는 스무살이 넘어가면서 부담으로 바뀔 수 밖에 없다. 한 아이가 부모는 물론이고 환갑을 막 넘긴 양 조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주의국가라 상대적으로 부양의무는 덜하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세대임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20대에 2008년 올림픽을 보고, 엑스포도 본 세대로 중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유학생들도 급격히 늘었고, 사업에 대한 열정도 억제되지 않은 세대다. 이 세대의 한 청년인 차이종따(蔡宗达)라는 청년이 쓰듯 이들은 젊은 시절에 홍콩이나 대만 드라마를 봤고, 첩보물 등도 익숙했다. 밤 문화도 생겼고, 패스트푸드, 별자리도 알았다. 한한 같은 재기발랄한 청년 작가도 한 세대도 힙합이나 저우룬지에(周杰伦) 같은 가수의 음악을 듣고, 육상스타 류샹이나 농구스타 야오밍과 어깨를 함께했다. 물론 이외에도 세계적인 스타가 된 장즈이나 올림픽 스타들도 이들 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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