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영화다.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 달달한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기도, 지구를 구하는 슈퍼맨이 되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영화가 끝나고 어둡던 상영관에 불이 켜지면, 큰 통 수북이 아직 남아 있는 팝콘과 콜라를 미련 없이 휴지통에 던져버리고 우린 그 가상의 세계를 지체 없이 떠난다. 주차권의 무료주차 시간을 확인하고 저녁은 뭘 먹을까 궁리하며 총총히 흩어진다.
자정을 넘긴 신데렐라처럼, 허겁지겁 돌아간 우리를 맞는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구차한 현실이다. 언제나 일상은 영화보다 무겁고 집요하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극장을 찾는다. 울고 싶을 땐 우는 영화를, 웃고 싶을 땐 웃는 영화를 골라 잠시나마 자기 위안의 시간을 구한다.
개봉 이후 연 5주째 폭발적 연쇄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변호인>에서 관객들은 과연 무얼 구하고 싶었을까. 천만 관객의 뇌관을 건드린 공명의 코드를, 감독은 어떻게 찾아냈을까. 지난 8일, 서울숲이 내려다보이는 한 찻집에서 양우석(45) 감독을 만났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15분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올린 짧은 머리에 사각의 안경테,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점잖은 회사 중역이나 공무원 같은 인상이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인사를 건네자 그가 고개를 숙이며 짧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숫기 없고 나지막한 음성이었다. 차를 주문하며 영화 흥행에 대한 소감부터 물었다.
<흑인 오르페> 충격으로 문사철 관심
-곧 천만 돌파를 앞두고 있는데 요즘 기분이 어떤가?
"뭐, 처음 들어갈 때부터 담담했는데… 관객들한테 고맙고 반가운 마음이지만 개인적으론 성격이 워낙 둔해 그런지 그저 담담하고…."
-그럴 리가? 흥행에 신경을 별로 안 썼단 얘긴가?
"그렇다."
-흥행에 신경을 안 쓰는 감독도 있나? 더구나 첫 작품인데?
"처음부터 영화로 계획했던 것도 아니고… 초기엔 독립영화 스타일도 각오를 했던 터라 상업적으로 큰 기대를 안 했다. 송강호 선배가 출연 결정을 하면서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변했지만 영화의 규모가 어떻게 되든 본질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뿐이었다."
많이 알려진 대로 <변호인>은 양우석이 쓴 웹툰용 시나리오에서 출발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위더스의 최재원 대표와 우연히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다음달부터 포털에 연재한다"고 웹툰 얘기를 꺼내자 최 대표가 "웹툰 말고 영화로 만들자"고 전격 제안한 것.
처음엔 "중량감 있는 감독"이 맡아 주기를 바랐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어, 결국 시나리오를 쓴 양우석이 직접 메가폰을 잡게 되었다. 40대 중반에 조연출 경험 한 번 없이 최고의 배우와 첫 작품을 한 것만도 꿈같은 일인데 그렇게 만든 데뷔작이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초대박 행진을 계속하고 있으니 웬만한 사람 같으면 입이 귀에 걸릴 만하건만, 그는 정말로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천성이 묵직한 사람인 듯했다. 1969년생. 2형제의 맏이, 미혼이다.
-생각보다 키가 크시다. 무대인사 사진으로 볼 땐 몰랐는데.
"워낙 다들 체격이 크셔서. 송강호 선배나 곽도원씨나…."
-어려선 우량아 소리 들으셨겠다.(웃음)
"아니다. 미숙아로 태어나서 성장이 더뎠다. 이빨도 굉장히 늦게 나서 부모님이 걱정을 하셨다는데 이가 나면서부터 이유식도 안 하고 육식으로 바로 건너뛰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거의 육식으로 몇 년을 살면서 그때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래서 또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애가 자꾸만 커지니까….(웃음)"
아버지가 교육공무원이어서 양우석은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았다. 서울에서 났지만 어려선 주로 천안에서 자랐고 고등학교 때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이공계열로 대학에 입학을 했다가 적성에 안 맞아 그만두고 다시 시험을 봐서 고려대 문과대에 입학했다. 대학에선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철학을 하면서 영문학을 복수전공한 이유가 뭔가? 취직 안 될까 봐?
"아니,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을 두루 공부하고 싶었다. 20세기 문학은 영어권이 세니까. 역사책 읽는 건 원래 좋아했고."
-문사철에 왜 관심을 가졌나?
"중학생 때 우연히 교육방송(EBS)에서 방영한 <흑인 오르페>란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그게 나한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때까지는 주로 서부영화만 봤었는데…. 브라질의 빈민층인데 가난에 찌들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는 젊은 청년들의 얘기. 영화에 흑인들만 나오는데 내용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Orpheus & Euridice)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차용해온 것이고…. 나한테는 거의 혁명이었다. 그 뒤부터 지리와 역사를 좋아하게 되고 영화광이 됐다. 영화를 하려면 대학에서 문사철(인문학)을 꿰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학생운동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영화광이었지만 영화를 전공하거나 영화동아리에 들지도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엠비시(MBC)프로덕션 영화기획실과 에스케이(SK) 계열의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을 했다. 현재도 그는 '로커스'라는 컴퓨터그래픽과 애니메이션 제작회사의 이사로 일한다.
남들이 볼 때는 갈지자 행보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양우석은 삼십년 전 자신이 정한 바대로 영화를 향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을 뿐이다. 인문학을 기초로, 기술을 알고, 시나리오와 콘티를 짜는 것.
-그런데 왜 영화 쪽 일을 안 하고 웹툰 작가가 되었나?
"그건 오해다. 웹툰은 진짜 취미로 한 거다. 내가 쓴 웹툰 시나리오들은 길이가 항상 영화 길이였다. 영사되는 방식도 영화랑 똑같다. 필름이 지금은 디지털 방식이지만 옛날 필름은 웹툰처럼 아래로 내려간다. 영화와 유사성이 아주 높은 게 웹툰이다. 나로선 영화를 하기 위한 과정상의 일이다."
누구든 분노는 쉽게 한다
그 분노가 명백한 목표점 향해 변하지 못하면 그냥 분노일 뿐 송우석은 7년 뒤인 87년에도 변함없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빨 용기가 없는 게 문제다 방바닥 닦아 더러워졌다면 화장실 가서 빨고 다시 와야지 닦지 않는 거, 빨지 않는 거 결국 우린 피곤과 싸우는 거다
대구에서의 무대인사, 깜짝 놀랄 만큼 뜨거워
-지금까지 발표한 웹툰들을 봤다. <로보트 태권브이>의 속편 격인 <브이(V)>,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말기 암 환자와 호스피스의 사랑을 그린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김정일 사후 남북한 전쟁 위기를 그린 <스틸레인> 등이 있는데 다 다른 색깔의 작품들이다. 그냥 보면 전혀 다른 작가들이 한 것처럼 느껴진다. 원래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나?
"나는 주제보다는 이야기 자체로 대중과 소통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 난 모든 이야기가 언론적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카프카 식으로 표현을 한다면 작가의 역할은 '얼음호수를 내려찍는 얼음도끼'와 같다. 쩍 내려치면 얼음바다가 깨지지는 않지만 안에 있는 고기들이 그 소리를 듣고 '저건 뭐지?' 하고 쳐다볼 것이다. 그렇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게 작가의 임무다."
-그럼 <변호인>을 통해서 환기시키고 싶은 메시지는 뭐였나?
"대한민국 현대사만큼 격동적인 역사가 없다. 건국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불과 60여년 전인데 어느 순간 우리 사회가 급속도로 조로(早老)했다. 60년 만에 이렇게 조로하다니…. 그래서 우리가 청년이던 80년대의 치열함을 한 인물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영화를 81년도 부림사건으로 끝내지 않고 말미에 87년 상황을 덧붙였다. 이건 뭔가? 묵직한 분노로 끝낼 수도 있었을 텐데, 관객들 스트레스 덜 받게 하려고 대중적, 상업적 배려를 한 건가?
"송 선배(송강호)랑 농담 삼아 나눈 얘기가 있다. '만약 우리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도 으�으� 하는 마음에 일시적으로 분노할 수 있었을지는 모른다. 부당한 사건을 보면 오천만 국민 중에 절반 이상은 분노하고, 충분히 그랬을 수 있다. 문제는 '그게 7년이나 지속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7년이라면, 81년에서 87년?
"그렇다. 누구든지 잠깐은, 며칠은, 몇 달은 분노할 수 있다. 근데 그 분노를 냉철한 이성으로 단련하고 제련해서 시대를 끌고 나가는 힘으로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 우리 같은 사람은 분노는 쉽게 된다. 근데 그 분노가 명백한 목표점을 향해 변하지 못하면 그냥 분노다. 송우석은 7년 뒤에도 변함없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떻게 그 분노가 신념으로 바뀌고 그 신념을 전파하기 위해 자기가 치러야 할 희생을 어떻게 기꺼이 치렀는지. 그런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야 한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이 영화의 형식은 상당히 독특하다. 역사적 인물을 다룬, <닉슨>이나 <링컨> 같은 영화들을 보면 보통 연대기적인 사실이나 사건은 실제 고증에 따라 하고 사료에 드러나지 않은 인물의 고뇌나 갈등은 허구적으로 창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변호인>은 서로 다른 역사적 사건들을 한 사건처럼 조합한다거나 여러 인물을 한 인물로 재구성하고 있다. 왜 이런 방식을 택했나?
"송우석이란 인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건 맞지만 누차 밝혔듯이 이 영화는 실화적 요소를 차용하고 각색한 픽션이다. 아주 정밀한 실증적 고증을 쫓아가는 건 이미 많은 분들이 해오셨고 앞으로도 하실 거고… 난 이 시대를 광각(廣角)적으로 프리즘처럼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젊은 시절의 노무현은 그 시대의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축약해서 드러내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80년대를 한 이야기 속에, 기승전결에 맞춰 보여드리려고 만든 픽션적 구성이다."
-빠른 속도로 천만 관객 돌파를 향해 가고 있는데, 영화의 소비 측면에서 보자면 어떤가? 지역적으로 관객 수의 차이가 있나? 이를테면 보수 성향이 짙은 대구·경북 지역 같은 경우….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태까지 무대인사를 다닌 곳 가운데 가장 뜨거웠던 곳 중 하나가 대구였다. 개봉도 하기 전이었는데 상영관에도 못 들어갈 만큼 인파가 모였다. 우리도 깜짝 놀랄 만큼."
민주화운동 세대 자격론, 난 다르게 생각한다
- 임시완 때문 아닌가?(웃음)
"시완이는 그때 가지도 않았는데…."
-그랬나?
"대구에 있는 지인들로부터도 문자도 종종 받는데 '오늘 매진'이라고…. 어찌 보면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편견과 몰이해가 오히려 문제인 것 같다. 오해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그러니까, 조금 힘들더라도 자꾸 이해를 높일 수 있게끔 서로 설득하고 소통하는 길밖에 없지 않을까. 내 얘기가 순진하고 나이브(naive)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다른 방법이 있겠나? 헬렌 켈러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데 그게 헬렌 켈러의 잘못일까. 누군가는 설리번이 돼야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대로 송우석의 일부는 양우석의 것이다. 순진하고 우직하고 낙관적인…. 아니, 그런 양우석이어서 노무현 대통령을 렌즈 삼아 80년대를 그리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간 여러 차례 무대인사를 통해 "평범한 우리도 좀 더 용기를 가지고 상식을 지키며 치열하게 살면 좋겠다"고 얘기하신 걸로 알고 있다. 근데 "평범한 우리"는 "용기"를 내기도 어렵고, "치열하게" 살 만큼 과감하지도 않다. 사실 송우석이 평범한가? "평범한 우리"는 대개 찌질하게 산다.
"내가 볼 때, 우린 찌질한 게 아니라 피곤한 거다.나폴레옹이 말하기를 '보통 사람과 영웅의 차이는 5분'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이 5분 더 용감하면 영웅이 된다는 얘기다.우리 사회는, 한번 삐끗해서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든 구조다. 그러다 보니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그러느라 피곤에 지쳐버린다. 비겁해서 외면한다기보다는 피곤해서 더 이상 어떻게 반응하기가 힘든 거다. 피곤이 가져온 마비라고나 할까.마비만 풀어내면 다시 달릴 수 있다고 본다. 5분 차이다."
-요즘 사람들이 희망을 못 갖는 결정적 이유는, 리더가 없다는 거다. 송우석처럼 숙련되지는 못해도 바탕이 돼 있는 사람이라면, 믿고 의지하고 만들어가겠다는 마음들이 있다. 겉으론 다들 번지르르해 보이지만 정말 마음으로 신뢰할 만한 리더가 없는 현실, 그게 사람들을 절망케 한다.
"기업경영론에 나오는 얘긴데 '기업을 혁신할 수 있는 최고의 인재는 기업 내부에 있다.' 근데 그 사람을 못 찾은 거다. 효종 북벌운동이 일어났을 때 실록의 역사를 보면 '왜 우리는 청나라에 졌을까?' 답이 심플하다. '이순신이 없어서.' 난센스 아닌가? 이순신은 하늘에서 내렸나? 우린 자꾸 어떤 리더를 신격화하고 영웅화하려는 습성이 있다.
회사를 혁신할 리더는 분명 회사 내부에 있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다. 시이오(CEO)가 게을러터지고 무능해서 못 찾는 것뿐이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인데 왜 국민이 리더를 못 찾고 있을까. 노무현이라는 한 개인을 대선후보로 만든 게 누군가? 그 사람이 엄청난 영웅이어서가 아니다. 그때 그를 리더로 만든 건 국민이었다. 리더가 없다는 건 국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주인 된 마음으로 찾지 못한 탓이 아닐까."
-영화에서 오달수가 '오늘부터 니 편한 인생 니 발로 찬기다' 하니까 송강호가 말한다. '내 아들딸들은 이런 세상에 살게 하지 않으려고 이런다.' 이 말이 80년대 집회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부모가 돼서, 나 옛날에 그렇게 말했다고 하면 자식들이 뭐라고 할까.
그런 80년대적 진정성을 가졌던 사람들이 그 뒤 30년을 어떻게 살았나. 아파트에 목숨 걸고 증권에 목숨 걸고 사교육에 목숨 걸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스스로 마모되었다. 과거 치열성에 대한 향수로 관객을 위로하면 안 되지 않나? 그들이 자식에게 그런 얘기를 들려줄 자격이 있을까?
"80년대를 살아온 분들한테는 순결에 대한 묘한 정서가 있는 것 같다. '네가 그런 말할 자격 있어?'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입을 닫게 만드는…. 난 거꾸로 생각한다. 우리가 욕할 때 '걸레'라는 말을 쓰는데, 걸레만큼 좋은 게 없다. 더러워지면 다시 깨끗하게 빨아서 쓰고 또 더러운 걸 닦는다.
목욕은 좋은 단어라고 하면서 걸레를 빠는 건 왜 나쁘게 생각하나. 중광 스님은 본인을 걸레로 불러 달라고 하지 않나. 예를 들어 아버지가 80년대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다가 사는 게 바빠서 잠깐 잊었어, 하지만 다시 영화를 보고 깨끗해지셨다면 다시 빨고 아들딸이랑 얘기해볼 수 있는 거지….
빨 용기가 없는 건지? 오히려 그게 문제다. 방바닥을 닦아 더러워졌다면 화장실로 빨리 가서 빨고 다시 오셔야지. 또 닦아야지. 그래서 문제는 찌질함이 아니라 피곤함이라는 거다. 닦지 않는 거, 빨지 않는 거. 결국 우리는 피곤과 싸우는 거다. 어떤 이념의 순수성보다 태도가 중요하다고 본다. 지치지 않는 삶의 태도."
황지우 시 떠올린 "이라믄 안되는 거잖아요!"
-당신이 그려낸 송우석은 누군가?
"송강호 선배에게 한 초년병 기자가 물었단다. '배우란 무엇인가?' 그 대답이 이랬다고 한다. 배우란 '우리가 잃어버린 얼굴을 찾아주는 직업'이다. 송우석 변호사는, 그 모티프가 되는 노무현 대통령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잃어버린 얼굴이기도 하다. 내가 웃고 슬퍼하고 화내고 했던 것들이 있는데, 어느 순간 피곤에 찌들면서 잊어버린 거다. 배우는 그걸 적극적으로 표현해 준 거고. 타자의 얼굴이 아니고 우리 안에 있는, 우리가 언젠가 잃어버린 얼굴, 그게 송우석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를 울린 건 송강호도, 노무현도 아닌, 우리 자신의 잃어버린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꼽는 <변호인>의 여러 명대사들이 있지만 내가 그중 하나를 꼽는다면 "이라믄 안 되는 거잖아요!"였다 말하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양우석은 이 대사를 쓸 때 황지우의 시가 떠올랐다고 했다.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영하 이십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찻집 유리창 너머로 앙상한 나무들의 숲이 보였다. 아직 여기는 겨울이지만 "무방비의 나목"들은 죽은 게 아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뜨거운 외침을 품고 찬바람에 부대끼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