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들 왜 이렇게 자주 바뀔까, 그 이유는..
조선일보 | 권승준 특별취재부 기자 | 입력 2013.12.21 15:33
저는 지난 5월부터 조선일보가 시작한 '댁의 아파트 관리비 새고있진 않나요'시리즈의 취재팀에 있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국민 60%가 사는 아파트의 관리 비리 문제를 파헤치는 기획이었습니다. 보통 매달 10만∼20만원가량 부과되는 관리비는 입주민 입장에서 큰돈은 아닙니다. 그 돈이 어떻게 부과되고, 어떻게 쓰이는지 관심을 가지는 주민은 드물지요. 하지만 그 돈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매달 수억원이 넘는 돈을 만지게 됩니다. 수억원이 넘는 돈을 집행하는 주체는 아파트 관리소장과 선거로 선출된 수명의 아파트 동대표들입니다. 매달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큰돈, 무관심한 주민, 소수의 몇명에게 집중된 아파트 관리시스템. 자연히 비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 간 시리즈를 통해 동대표나 관리소장의 관리비 횡령은 물론, 공사 수주 대가로 수천만원의 뒷돈을 받거나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지자체 보조금을 횡령·유용하는 등 각종 비리를 다뤘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시리즈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하나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아파트 경비원 문제입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아파트 경비원들을 왜 이렇게 자주 바뀔까?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아파트 경비원 10여명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일한 기간이 평균 6∼12개월 정도였습니다. 3년 전부터 경비원으로 일하는 경비원 김영조(69)씨의 경우 5개 단지를 옮겨 다녔습니다. 일한 지 3개월 만에 해고된 적도 있었습니다. 재직 도중 경비용역업체가 바뀌었는데, 고용 계약이 승계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업체에서는 "나이가 많다"며 김씨를 고용하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단지 전체로 보면 윤곽이 더 확실해집니다.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1500세대 규모의 A 아파트 단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아파트의 경비원 정원은 16명. 그런데 2010년 7월부터 2012년 6월까지 2년간 이 단지를 거쳐 간 경비원은 52명입니다. 경비원 한 명당 평균 재직 기간이 8개월밖에 되지 않는 셈입니다. 왜 이럴까요? 여기에는 법의 허점을 이용한 교묘한 아파트 비리가 숨어 있습니다. 일정기간 이상 일한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지급되는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한 '꼼수'라는 것입니다. 현행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8조에 따르면 퇴직금은 1년 이상 일한 사람에게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 이상을 지급하게 돼 있습니다. 경비용역업체는 이 조항을 악용해 1년이 되기 전에 갖은 사유를 들어 경비원을 해고하는 것입니다. 경비용역업체들은 경비용역 계약을 맺을 때는 경비원들의 퇴직금과 연차수당을 모두 포함해 임금을 책정합니다. 이 금액을 기준으로 관리비에서 경비원들 임금이 지급됩니다. 하지만 경비원들이 1년이 되기 전에 일을 그만두면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됩니다. 경비용역업체는 중간에서 이 돈을 챙기는 것이지요. 광명시 A 아파트의 경우 계약 금액의 10%가량이 퇴직금과 연차수당으로 책정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지급된 사례는 1건도 없었습니다. 한 주민이 나서서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관리사무소에서는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해고하면서 지급해야 할 연차수당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1년 미만 재직한 근로자라도 퇴직 시에 연차수당을 지급하도록 돼 있지만, 경비업체들은 법을 잘 모르는 경비원들에게 이 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파트 위탁관리업체들은 "관리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 '을(乙)'도 되지 못하는 아파트 경비원
퇴직금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아파트 경비원들이 최저임금이나 그 이하의 돈을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8월 전국의 55세 이상 경비원 874명을 대상으로 한 '감시·단속직 노인근로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89.7%가 100만∼150만원의 임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2013년 기준 최저임금이 월 101만 5740원(시간당 4860원)입니다. 최저임금보다 아래인 월 100만원 미만을 받는다고 응답한 비율도 4.7%였습니다. 위법은 아닙니다. 아파트 경비원은 1987년 최저임금제도가 생길 때부터 적용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2007년부터 최저임금의 70%,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80%까지 줄 수 있도록 규정했다가 2012년부터는 전면 적용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유예돼 2014년까지는 최저임금의 90%만 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임금은 이렇게 박한대도, 근무 여건은 다른 직종보다 훨씬 열악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경비원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61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의 1.5배입니다. 게다가 대부분 근무 형태가 24시간 맞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체감시간은 더 길 수 있습니다. 또 휴식시간에도 "과중한 업무 탓에 충분히 쉴 수 없다"(48%), "관리자의 눈치가 보여 쉴 수 없다"(23.7%)고 합니다. "휴식 시간이 아예 없다"(7.8%)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실이 이런데도 대부분의 경비원은 항의나 불만을 제기하지 못합니다. 대부분 계약직(95.5%)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게다가 경비원들은 대부분 경비용역회사와 고용계약을 맺고 있지만,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회사와의 계약권을 쥐고 있어서 양쪽 모두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경비원 김씨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갑(甲)'이면 경비회사는 '을(乙)'이고 경비원은 '병(丙)'이나 '정(丁)'"이라며 "동대표들의 마트 장보기 심부름을 하는 경비원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자리마저도 이제는 점점 노인들의 손에서 떠나고 있습니다. 최근 몇년간 들어선 주상복합아파트에서는 20∼30대 젊은 사람들을 경비원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경비 업무를 더 잘 볼 수 있고, 외부인들에게 이미지도 더 좋다는 이유에서라고 합니다. 이 젊은 경비원들은 대부분 정규직이고 월급도 200만∼250만원 수준입니다. 경비원 세계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노인 경비원들의 여건이 이렇게 열악해지는 것은 결국 관리비 인하 압력 때문입니다. 경비원들의 인건비가 관리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관리사무소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이 비용을 줄이려고 합니다. 경비원들의 간접고용이 점점 늘어나고, 최저임금 적용이 계속 미뤄지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하지만 경비원들은 이렇게 경비원 여건을 열악하게 만드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중앙대 곽도 교수는 "경비원은 결국 아파트 보안을 책임지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근무 여건이 열악해지는 것은 결국 아파트 주민들에게 피해로 돌아오게 돼 있다"고 말합니다. 아파트 비리로 새나가는 돈을 철저히 감시해 경비원들 여건 향상에 쓰자는 말도 나옵니다. 지난 6월부터 5개월간 경찰이 실시한 아파트 비리 단속결과 확인된 횡령·금품 수수액은 64억원에 이르렀습니다. 이 돈이 경비원들 여건 향상에 쓰였다면, 아파트도 더 안전해지고 노인 근로자들의 복지도 향상되지 않았을까요. 이래저래 아파트 비리를 뿌리 뽑는 것이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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