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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집으로 노후 준비하던 男, 반토막 나자…

부동산

by 21세기 나의조국 2012. 9. 2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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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 강도원 기자 | 입력 2012.09.21 06:12

 

 

 

"집값은 떨어지고 대출금 이자는 계속 갚아야 하고···. 그래서 집을 팔려고 내놨지만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전혀 없네요."

18일 경기 용인 성복동의 한 부동산업체에서 만난 K씨는 한숨만 내쉬었다. 2006년말 3억원의 빚을 내 산 10억원짜리 아파트(164㎡·64평)가 요즘 5억원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달 대출이자만 200만원이라 차라리 집을 팔기로 결정했지만 4개월이 넘도록 집을 보러오는 사람도 없는 상황이다.

↑ 용인시 한 공인중개소 앞 모습/조선일보 DB

 

부동산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K씨처럼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생각에 빚을 내 집을 사 나중에 팔아 노후를 대비하려던 베이비부머들이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고 있다.


◆ 베이비부머들, 집 하나만 믿었는데…


베이비부머들(1955~1963년생)은 집값 급등기였던 2006년을 전후로 유행처럼 132~198㎡(40~60평)대 대형 아파트를 대출받아 샀다.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생각에 대형 주택을 사두면 노후 걱정을 안해도 된다는 계산 때문이다.

 

특히 참여정부 때 다주택자에 대해 양도세 중과세 제도가 도입되면서 소형 아파트를 여러 채 갖기 보다는 대형 한 채를 갖는 것이 재태크 면에서 유리하다는 점도 대형 아파트 열풍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경기 불황 여파로 부동산 거래량이 급감했고 수도권의 대형평형 아파트들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가 폐지되면서 낙폭이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집을 팔아 노후를 대비하려 했던 베이비부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대우 푸르지오 아파트에 사는 L씨도 최근 156.88㎡(49평)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기 위해 알아보는 중이다. 매입 시기인 2006년 4월 시세는 9억원. 하지만 현재 이 집의 시세는 6억원으로 하락했다. 아직 갚지 못한 대출금이 1억5000만원 정도 남아 있어 130.28㎡(39평)로 집을 줄이면 8000만원 정도 남는다. 이 돈으로 노후를 보내야 한다.

L씨는 한 은행과의 상담에서 "40평대 아파트가 이렇게 가격이 많이 내릴 줄 알았으면 예전에 20평대 아파트를 두 개 사둘 걸 정말 후회된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Y씨도 2006년 용인 구성지구에 161㎡형을 투자 목적으로 6억원에 샀다. 대출금도 최대 한도인 60%(3억6000만원)까지 받았다. 하지만 현재 이 집의 시세는 4억원 수준. Y씨는 "매달 이자만 200만원씩 내고 있다"며 "문제는 1억원 정도 손해를 보고 집을 내놔도 안팔린다는 것"이라며 "대출이 너무 많아 전세 세입자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민이 에이플러스리얼티 팀장은 "너무 비싼 집은 가격이 적정한 수준까지 하락하는 게 맞지만, 은퇴 후 노후 준비 수단이 없는 베이비부머들은 정말 큰 문제"라며 "지금의 불황도 집값 하락에 따른 소비 감소로 내수가 살아나지 못해 발생하는 것으로 정부의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주택거래량 급감에 소형이 대형 가격 역전


현재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책은 주택 경기가 살아나는 것이다. 하지만 주택 거래량은 갈수록 줄어든다.

국토해양부가 17일 발표한 8월 주택 거래량은 총 4만788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6% 감소했다. 2006년 거래량을 조사한 이후 8월 물량으로는 최저 수준이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의 경우 하락폭이 도드라졌다. 서울의 8월 주택거래량은 2074건으로 지난해 4428건의 절반 수준이었다. 3.3㎡당 평균 가격 역시 1693만원으로 2006년 이후 가장 낮았다. K씨가 사는 용인 지역 아파트 값은 8월 3.3㎡당 997만원을 기록했다. 전국적으로 청약 광풍을 일으켰던 판교 아파트값 역시 분양가 수준까지 하락했다.

주택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서 작은 집이 큰 집보다 비싼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국토해양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용인 수지구 성복동 버들치마을 성복 힐스테이트 3차 167.58㎡형(50.6평)은 8억2732만원에 매매됐다. 하지만 153.25㎡(45평)는 8억6208억원에 팔렸다. 작은 집이 큰 집보다 4000만원 이상 비싸게 팔린 것이다.

성남시 분당신도시 정자동 정든마을 동아 1차는 6월 전용면적 154.89㎡가 6억7000만원, 전용면적 164.77㎡가 6억원에 팔렸다. 김포시 고촌읍 수기마을 힐스테이트 3단지는 6월 전용면적 156.91㎡형이 6억2500만원인데 반해 전용면적 164.26㎡는 5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화곡푸르지오는 1분기 144.12㎡는 7억원에, 156.88㎡는 6억6000만원에 팔렸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팀장은 "불황으로 급매물이 속출하고 있고 관리비 부담 때문에 작은 걸 선호하다 보니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며 "대형평형이 소형평형보다 비싸다는 기본 시장 질서는 무너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 정부 정책이 불황 가속화 시킨 꼴


전문가들은 지금의 주택시장 불황에 대해 정부의 정책이 불황을 키운 꼴이라고 지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증 환자에게 정확한 진단 없이 감기약만 계속해서 처방한 것과 다름이 없다"며 "세종시 이전, 혁신도시 개발, 인구구조의 변화와 같은 근본적인 시장 상황의 변화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집값 급등기인 참여정부 시절 생긴 강남 투기지역 지정은 5·10 대책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는 3개월 후인 8월에 각각 대책을 내놨지만 다 반박자씩 늦었다"며 "최근 취득세·양도세 완화 역시 주택 거래량을 늘리기보다는 오히려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 분양 아파트들은 각종 규제로 꽁꽁 묶어놓고 싼 가격에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는 정부 정책은 결국 부동산 시장을 깊은 불황에 빠지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주택시장을 살리기 위해 대규모 양적 공급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했지만, 우리나라는 죽어가는 중견기업들을 위해 정부가 어떤 일을 했느냐"며 "시장 질서 재편도 중요하지만, 업계 자체가 위기라는 점을 정부가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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