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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이 노후대책? 재개발 덫에 빠져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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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2. 10. 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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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이 노후대책? 재개발 덫에 빠져보니…

한순간에 날아간 집, 그리고 생계수단

허환주 기자  기사입력 2012-10-05 오후 2:00:02

 

 

이영섭(가명·56) 씨는 70년대 말께 서울로 올라왔다. 35년 전의 일이다. 고향은 서울에서 400km나 떨어진 시골이다. 왕십리에 터전을 잡았다. 이후 다른 곳으로 이사 간 적이 없다. 여생도 제2의 고향인 왕십리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서울에 온 이후 소규모 공장에서 일하는 것부터 장사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다.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90년대 말 건물을 지었다. 5층 규모 주택이었다. 부동산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맹신이 있었다. 그간 모은 돈으로 집 짓는 비용모두 감당하긴 어려웠다. 기존에 살던 집을 처분한 돈과 은행 대출, 그리고 전세금 등으로 이를 충당했다. 5층엔 살림집을 꾸렸다.

이 씨는 건물을 노후대책으로 여겼다. 언제까지 장사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1층 가게에서 도서대여점을 운영하며 지하 공장에서 나오는 약간의 월세를 받으면, 그럭저럭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순간에 날아간 집, 그리고 생계수단

하지만 이 씨의 노후대책은 서울시의 뉴타운 발표와 함께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뉴타운 덕분에 대박이 났으니 한턱 내라고 했다. 실제 자고 나면 집값이 올랐다. 작은 평수의 집을 가지고 있던 이웃은 앞다퉈 투기세력에 집을 팔고 이사갔다. 1000만 원대 땅값이 뉴타운 발표 후 몇 달 사이에 2000만 원을 넘겼다. 2006년 사업시행 인가가 떨어진 이후엔 그 갑절로 뛰었다.

처음엔 이 씨도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꿈에 부풀었다. 조합임원이나 OS요원이 조합설립 동의서를 받으러 다닐 때만 해도 뉴타운 재개발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재개발되면 1:1로 헌 집을 새 아파트로 바꿔준다는 말만 들었다.

ⓒ프레시안(허환주)


하지만 그것은 얼마 가지 않아 깨졌다. 관리처분 총회 날에도 이 씨 건물 가격이 얼마에 책정됐는지 조합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따져 물어도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거다'라는 말만 들었다. 최소한 내 집이 얼마에 평가받았는지는 알아야 팔던가, 아니면 그대로 살던가를 결정할 수 있겠다 싶었다. 관리처분 총회를 마치고 몇몇 이웃과 '알림방'을 만들었다. 최소한 알아야 할 것을 스스로 알아보자는 차원에서였다.

문제는 심각했다. 이 씨 건물은 현재 거래되는 시세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었다. 조합에서 주변 지역 지가를 고려하지 않은 채 감정평가를 내렸다. 그 금액으론 전세금 돌려주고 나면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집 한 채도 얻지 못했다.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 지역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추가 분담금을 내고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에 들어가기는 방법도 있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생계가 막막해져 어려웠다. 1층 가게도 사라진 마당에 다시 가게를 얻을 돈도 없기 때문이었다. 한평생 모은 돈으로 노후생활을 생각해 건물을 지었는데 한순간에 이 계획이 재개발 때문에 사라지게 됐다.

재개발 늪에 빠진 베이비부머

이런 일은 이 씨만 겪는 일이 아니다. 노후대책의 일환으로 부동산을 장만한 베이비부머가 재개발이란 늪을 만나 허우적대고 있다.

2002년도부터 시작된 뉴타운 사업은 그동안 개별사업지구단위, 즉 재개발로 이뤄지던 사업을 대규모화한 사업을 일컫는다. 소규모 사업 추진에 따른 기반 시설 부족문제를 해소하고 주택재정비사업을 도시재생 차원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추진됐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처음 추진했다.

하지만 사업추진은 쉽지 않다. 2008년에 발생한 금융위기가 문제다. 주택시장이 침체상태에 빠지면서 뉴타운 사업도 늪에 빠졌다. 뉴타운 사업이 시작된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뉴타운 사업이 과열됐지만 금융위기 이후, 다양한 문제가 표출되고 있다.

무엇보다 과도한 추가 분담금이 문제다. 원주민이 서울 도심과 역세권에 가까운 뉴타운 사업 지역 새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자신의 집 이외에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2억여 원이 넘는다. 수도권 지역은 이보다 덜하지만,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역세권 지역은 비용부담이 1억~1억5000만 원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높은 추가비용부담이 나오는 이유는 부동산 경기 하락 때문이다. 과거와 같은 높은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원주민의 집값이 상승하고 그 개발이익으로 신축아파트를 분양받거나 분양권을 전매해 개발이익을 누릴 수 있었던 건 먼 과거의 일이 됐다.

ⓒ프레시안(허환주)


턱없이 높은 추가 분담금으로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

높은 추가 분담금으로 원주민 재정착률은 턱없이 낮다. 서울개발연구원이 미아6구역분석한 자료를 보면 현지거주 조합원의 재정착률은 26.8%에 불과했다. 추가분담금을 내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지분을 보상금으로 받고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모양새다.

뒤늦게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후발 뉴타운 사업 지역 조합원은 줄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2007년~2010년 3월까지 서울시에서 발생한 재정비사업 관련 소송건수는 212건으로 이중 절반가량이 2009년에 발생했다. 자치구별로는 동대문, 성동, 성북, 서대문구 등 재정비사업이 많은 자치구에서 43.5%로 가장 많은 소송이 이뤄졌다.

하지만 뉴타운 사업을 중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간 뉴타운 사업 진행비로 사용된 돈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뉴타운 재개발 조합은 뉴타운 사업이 진행된다는 전제하에 정비회사, 건설회사에서 미리 돈을 빌려 활동비 등으로 사용한다. 문제는 사업이 중단될 경우, 이 돈을 갚을 길이 없다는 점이다. 이 돈은 한 구역당 작게는 몇억에서 많게는 몇십 억에 달한다.

서울시에서 뉴타운 사업 탈출구 방안으로 제시한 뉴타운 지역 해제 정책에 조합 단계는 지역 해제 지역으로 포함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천문학적인 돈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노후대책

이창무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가 2010년에 발표한 '뉴타운사업에 대한 비판적 진단과 해법'을 보면 원주민이 뉴타운으로 걱정하는 것으로 '신규공급 아파트에 대한 부담금이 많아 입주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30.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고급 실내장식, 넓은 평수 등이 부담금을 높이는 원인으로 꼽혔다.

또한, '임대료 수입이 없어져 생계가 막막하다'는 의견도 21.2%나 차지했다. 기존 구역에서 임대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생계유지형 가구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이영섭 씨와 같은 사례다. 말년에 찾아온 재개발로 베이비부머의 노후대책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운명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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