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러진 화살>가 ‘예상치 못한’ 흥행을 달리는 가운데 이보다 한 발짝 앞서나가며 같이 흥행몰이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댄싱퀸>인데요. 워낙 <부러진 화살>에 눈길이 쏠리다보니 슬쩍 묻히는 듯하지만 <부러진 화살> 못지않게 생각거리가 잔뜩 안겨있는 영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댄싱퀸>에 더 눈독을 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 같이 정말 울림이 큰 영화들이 지금 상영을 하고 있지만, 굳이 <댄싱퀸>에 대해 끼적이는 까닭은 <댄싱퀸>만큼 요즘 한국사회의 흐름을 아우르며 사람들의 욕망을 콕 집어낸 영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댄싱퀸>에 사람들이 몰리는 까닭은 배우들의 연기가 좋고 ‘웰 메이드 오락영화’로 불릴 만치 쫀득쫀득한 짜임새 덕분이기도 하지만 영화 줄거리 자체가 시대의 변화에 그 뿌리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현실 같은 영화, 영화 같은 현실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은 정치를 아주 ‘살갑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황정민이 ‘서울시장’에, 엄정화가 ‘가수’에 도전하는 것을 같은 층위에서 이석훈 감독은 다루죠. 그러니까 많은 이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슈퍼스타 K’ 에 나가듯 비록 정치판이 ‘똥통’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이 되어 사회를 바꾸는 일은 누군가에겐 ‘아주 소중한 꿈’이라는 것을 영화는 얘기합니다. 정치는 나이 많은 꼰대들이 끼리끼리 쑥덕대는 야로가 아닌 것이죠.
영화에서도 정치와 연예는 빼어나게 버무려지는데, 사실 그 둘의 속성은 빼닮았습니다. 대중들이 좋아해야 스타가 될 수 있듯 ‘정치계’의 원리 또한 매한가지죠. 때론 대중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뻔뻔하게 늘어놓고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쇼’처럼 보여줘야 연예계에서 오래 살아남듯
정치계 또한 거짓부렁을 지껄이고 시장에 나가 ‘쇼’를 해야 하기에 연예인들을 그렇게 좋아한다면 정치를 싫어할 까닭이 없다는 걸 영화는 넌지시 일러줍니다. ‘황정민’처럼 사회를 바꾸려는 ‘젊은 정치인’들이 있기 마련이고,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응원하듯 좋은 정치인들을 밀어주도록 영화는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죠.
그래서 영화 속에서 ‘황정민’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평소엔 별로 정치에 관심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를테면 중국요리를 배달하는 비정규직 젊은이와 동성애로 차별받는 소수자 커플, 그리고 철거를 당하며 쫓겨나게 된 할머니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죠. 그리고 이렇게 ‘정치성향’이 그리 뚜렷하지 않은 이들이 정치에 솔깃해하고, 그들이 ‘울고 웃으며’ 정치에 참여하는 모습을 영화는 그려냅니다.
이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름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한국사회의 모습이니까요. 당원이 아닌 시민들이 경선 후보를 뽑고, ‘나는 꼼수다’를 수백 만 명이 듣는 것처럼 정치를 예능마냥 즐기는 뭇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영화 <댄싱퀸> 속에서 이뤄지는 시민참여 경선과 선거는 감독이 상상하는 그림이 아니라 얼마 전부터 한국사회에 부는 새로운 바람이고, 그 ‘산들바람’을 타고 영화 <댄싱퀸>은 솟아오른 것이죠.
현역 시장이 싫지만 그에 맞설 야당의 후보는 마땅치 않은 가운데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한다는 얘기는 영화 같은 얘기가 아니라 2011년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고, 이런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는 한국사회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에 영화 <댄싱퀸>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죠.
정치는 더럽고 구린 게 아니라 일상을 바꾸고 삶의 고통을 덜어내는 일이며 얼마든지 ‘감동’과 ‘재미’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영화 속 황정민 지지자들이 느낀 까닭은 현실의 대중들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선거에 나가는 것이나 아내가 가수에 도전하는 것이나
무엇보다 이 영화의 돋보이는 점은 웃기고 울리면서도 영화관을 나서면 싹 잊히는 ‘오락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난 뒤 민주주의가 뭔지 생각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아예 대놓고 민주주의로 시작합니다.
사투리를 쓰면서 살짝 지질한 느낌을 풍기는 황정민이 전학을 와 짝을 누구와 할지를 두고 뜬금없이 학급에선 ‘민주주의 회의’가 열리죠. 누구와 어떻게 짝을 할지 같은 일상 자체가 민주주의의 원리가 있어야 한다고 영화는 말을 건네는 셈입니다.
거기다 연세대와 고려대로 상징되는 한국의 사립 학벌들과 그에 따른 사람평가, 그리고 학생운동과 독재권력의 폭력, 강남과 강북의 차이, 분유값도 모른 채 말로만 저출산 대책을 지껄이는 정치인들과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생색내기 봉사들을 곁들이면서 ‘지금 이 순간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비틀며 담아냅니다.
그러면서 머리에 든 건 있지만 가슴이 없는 정치인이 아니라 밑바닥부터 몸소 구르면서 삶의 터를 닦아온 황정민을 내세우며 ‘판갈이의 절실함’을 알려주죠.
이 정도에서 영화가 그쳤다면 나름 정치의식 있는 감독의 꽤 괜찮은 영화에 그쳤을 겁니다. 하지만 대중오락영화로서의 ‘장치’이기도 하지만 엄정화가 남편 뒷바라지 때문에 밀쳐두었던 자신의 꿈을 꺼내면서 영화는 ‘더 정치적인 영화’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러니까 서울시장 선거 나가는 것이나 가수에 도전하는 것이나 ‘똑같이’ 중요한 것이고, 저마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사회가 민주주의사회라는 걸 영화는 엄정화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죠.
정치에 대한 혐오가 득시글하지만 이와 동시에 정치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남성중심문화에 대한 짜증이 들끓지만 그래도 남자가 여자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믿음이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데, 영화 <댄싱퀸>은 여기에 물음표를 던집니다.
남편이 선거에 나가는 것이나 아내가 가수에 도전하는 것은 뭐가 더 중요하고 말고가 아니며, 누구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거 자체가, 가치판단을 내릴 때 쓰는 잣대 자체가 바로 ‘정치적인 것’이라는 걸 영화는 뭉클하게 빚어내죠.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대표자를 뽑는 일만 정치성이 있는 게 아니라 일상 자체가 정치의 현장이라는 걸 영화 <댄싱퀸>은 묵직하지만 산뜻하게 짚어냅니다. 따라서 이 영화 제목은 남자에게 초점을 맞춰 ‘서울시장 도전기’가 아니라 ‘댄싱퀸’인 것이고요.
빠르게 바뀌어가는 대중들과 달라지지 않을 수 없는 정치판을 영화 <댄싱퀸>은 날새게 잡아내었기 때문에 <댄싱퀸>을 보면 기상전망처럼 어느 정도 2012년과 앞으로 사회의 모습을 내다볼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