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 김동렬슨생 2012.01.23
콤플렉스형 인간 완전성형 인간
세상을 근원에서 뒷받침하는 법칙은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다. 사람의 인생 역시 작용반작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삶의 작용은 동기부여고 인생은 그 반작용이다. 동기부여가 삶의 에너지를 퍼올려 공급하면 인생은 그 에너지를 소비한다.
두 종류의 동기부여가 있다. 하나는 완전성이며 하나는 불완전성이다. 완전성은 내 안에 가치판단의 시소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고 그 시소를 가동하여 내 안의 것을 밖으로 표현하려는 것이고, 불완전성은 시소가 나의 바깥에 있고, 상부구조에 있고, 공동체에 있어서 그 시소에 매달려 엉기려는 것이다.
내 바깥의 시소에 올라탐으로써 외부로부터 삶의 목표를 조달하는 것이 콤플렉스다. 스스로는 삶의 목표를 조달할 수 없으므로 누군가와 대척점을 세운 다음 상대의 행동을 보고 거기에 연동시켜 나의 행동을 결정하려는 본능이다.
◎ 완전성의 동기부여 – 내 안의 시소를 가동시켜 표현한다.
◎ 콤플렉스 동기부여 – 외부의 시소에 올라타려 엉겨붙는다.
각인효과가 있다. 닭이나 오리는 알에서 깨어나 처음 본 것을 어미로 알고 평생 따라다닌다. 한 번 콤플렉스의 길로 방향을 잡은 사람은 그 방향으로 계속 간다. 완전성의 길로 방향을 잡은 사람 역시 그 방향으로 계속간다.
완전성의 길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스스로 완전해질 때 반응할 수 있다. 타인과 수평적으로 반응할 때 친구를 얻게 된다. 친구에서 팀으로 발전하고, 팀에서 세력으로 발전하고, 세력에서 세상을 다 바꾸는 혁명으로 발전하게 하는 것이 방향성이다. 널리 상호작용 하는 것이다.
어원으로 보면 ‘Social’은 사귄다는 뜻이다. 사귄다는 것은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역시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 사귐이 사람과의 사귐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역사와 사귀고, 자연과 사귀고, 진리와 사귀어야 한다.
역사와, 자연과, 진리와 팀을 이루어야 한다. 크게 세력을 이루어야 한다. 그 방법으로 인류를 진보시켜야 한다. 인류의 문제해결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완전성 그 자체를 철저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신이 아닌데 뭐가 완전하다는 말인가?’ ←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 많다. 완전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개에게는 개의 완전이 있고, 닭에게는 닭의 완전이 있다. 개는 도둑을 지켜야 완전하고, 닭은 알을 낳아야 완전하다. 사람은 소통하여 집단지성에 참여함으로써 제 안의 가능성을 드러내야 완전하다.
무엇이 완전한가? 친구와 상호작용하고 친구와 반응하는 것이 완전하다. 그렇게 팀을 이루고 세를 이루는 것이 완전하다. 우일신 하는 것이 완전하다.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진도나가주는 것이 완전하다.
완전한가 불완전한가가 아니라 어디에 기준을 맞추고 세상의 어느 방향을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다. 중요한건 방향이다. 콤플렉스에 의해 동기부여 되는 사람들은 대개 마음 속의 라이벌을 정해놓고 있으며, 그 상대를 꺾는데서 인생의 의미를 얻는다.
혹은 특정한 국가를 미워하여 가상적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그들은 반북이든 반미든 누군가를 반대하는 방법으로만 자기의 목표를 세울 수 있다.
무형의 라이벌도 있다. 돈을 라이벌로 삼기도 하고 출세를 라이벌로 삼기도 한다. 그들은 결국 실패한다. 왜? 인간에게 콤플렉스가 존재하는 이유는 삶의 동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기가 없다. 인생의 허무다.
돈으로 목표를 삼은 사람은 돈을 벌어도 계속 돈이 부족하다. 왜? 돈이 필요해서 돈이 목표가 된게 아니고, 실은 삶의 목표가 필요한데 그 목표가 없으므로 돈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스스로 납득이 되는 삶의 목표를 만들어 낼 때까지 콤플렉스라는 망령은 떨어지지 않고 계속 괴롭힌다. 콤플렉스란 결국 삶의 분명한 목표를 만들어내라는 본능의 압박이다. 콤플렉스란 어디엔가 화가 나 있는 것이다. 왜 화가 났을까? 그 화를 낼 분명한 대상이 없기 때문에 화가 나 있다.
노숙자 관련 기사에 많은 네티즌들이 악플을 달고 있다. 그들은 왜 화를 낼까? 원래 마음 속에 화가 가득 들어차 있는 판에 마침 화를 터뜨려도 뒷탈이 없는 만만한 상대로 노숙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그 사람의 내부에 1만 기압의 화가 팽팽하게 들어차 있었던 것이다.
◎ 콤플렉스 - 내게 없는 것을 채운다.
◎ 완전성 – 내 안에 가득찬 것을 터뜨려 표현한다.
완전하면 통하고, 통하면 낳고, 낳으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허무를 극복한다. 허무를 극복하면 더 이상 콤플렉스에서 동기가 부여 되지 않는다. 그 경우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다. 스스로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가 된다.
내게 없는 것을 채우려는 욕망이, 내 안에 있는 것을 표현하려는 욕망으로 대체된다. 인생의 태도와 자세가 바뀐다. 가는 길이 바뀐다. 목표가 바뀌고 동기가 바뀐다. 삶이 바뀐다.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반응이다. 사람들이 화가 나 있는 이유는 상대가 내게 반응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프로포즈에 상대가 응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이력서에 회사가 답신을 보내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성공을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콤플렉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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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를 타는 서퍼는 물 위에서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으려 하지만 실제로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물의 치고나가는 힘이다. 그 치고나가는 기세에 온전히 몸을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이 파도를 노는 것이 아니라 물이 서프를 놀리는 것이다. 완전성의 문제는 인간이 완전한가 불완전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의 문제이다. 불완전성에 초점을 맞추면 외부와 상호작용을 하지 않으므로 계속 나빠지고 만다. 파도를 타면서 물과 친하지 않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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