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 김동렬슨생
◎ 질서 2의 패턴들 강약, 강유, 개폐, 경조, 경중, 경향, 고락, 고저, 곡직, 공과, 공사, 광협, 교학, 군신, 굴신, 귀천, 고금, 길흉, 난이, 남북, 남여, 내외, 다소, 단복, 당락, 대소, 동서, 동정, 득실, 노사, 노소, 이합, 이해, 매매, 명암, 모순, 문답, 미추, 부모, 부부, 부침, 빈부, 사제, 상하, 생사, 선악, 성쇠, 손익, 수수, 수족, 승강, 승패, 시비, 시종, 본말, 수미, 신구, 심천, 안위, 앙부, 애증, 영욕, 옥석, 완급, 왕래, 우렬, 우총, 원근, 유무, 음양, 인과, 자매, 자웅, 자타, 장단, 전후, 조석, 주야, 조손, 존폐, 종횡, 좌우, 주객, 주야, 증감, 진퇴, 집산, 착탈, 첨삭, 출입, 표리, 피아, 허실, 형제, 호오, 화복, 화전, 흑백, 흥망, 희비
대칭은 ‘남녀’와 같이 둘로 짝지워져 있지만 실제로는 셋이다. 어떤 둘이 마주보고 얽혀 있으면 반드시 둘을 얽히게 하는 제 3의 존재가 숨어 있다. 단지 감추어져 있으므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부부가 결혼이라는 형태로 얽혀 있는 것은 가운데서 둘을 잡아주는 자녀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과 같다. 위 100개의 단어들은 모두 '정반합'과 같은 셋으로 세팅할 수 있다. 생사(生死)는 둘이지만 '탄생-삶-죽음'의 셋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강유(剛柔)는 무르고 굳은 둘이지만 경도(硬度) 하나 안에 들어간다.
합(合)안에 정반(正反)이 들어가서 '정반합'을 이루는 것과 같다. 음양은 빛 하나로 통일되고, 주야(晝夜)는 하루로 통일되고, 빈부(貧富)는 소득으로 통일된다. 이 모든 것은 상호작용 하나로 설명할 수 있고, 방향성 하나로 다 설명할 수 있다.
순서는 둘이나 방향은 하나다. 2의 번거로움을 버리고 1의 편리함을 취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갈등과 오해는 2의 상대어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다. 언어가 잘못이다. 언어를 바꾸어야 세상이 바뀐다.
이렇듯 둘로 나누고 마주보게 하여 대립시키는 것이 상대어다. 이는 흑백논리의 사고, 선형사고, 이분법적 사고에 해당된다. 이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비참한 것이다. 둘을 시소에 태우면 축이 드러난다.
마주보고 대칭된 둘은 바텀 포지션이다. 축의 탑 포지션으로 올라서야 한다. 상대어를 버리고 절대어를 취해야 한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아야 한다. 멀고 가까운 원근(遠近) 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소실점이 있다. 애증(愛憎)의 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긴장이 있다. 그 하나의 긴장이 애(愛)로도 나타나고 증(憎)으로도 나타난다. 장단(長短)의 둘이 있는게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 있다. 하나의 화살이 운동량에 따라 길거나 짧은 사거리로 나타난다. 공격과 수비가 있는게 아니라 하나의 포지션이 있다. 자웅 둘이 아니라 성별이며, 남녀 둘이 아니라 인간이며, 선악(善惡) 둘이 있는게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다. 인간은 언제라도 공동체의 중심으로 쳐들어 가라는 본능의 명령을 따른다. 성공하면 선(善)이고 잘못되면 악(惡)이다. 둘 다 공동체와의 상호작용을 늘리려는 본질은 같다. 공동체와 개인 사이에 긴장을 조성하여 그 관계를 긴밀하게 하려는 행동이 선과 악으로 나타난다. 서로 밀접해지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밀접해질수록 선(善)이고, 이명박은 밀접해질수록 악(惡)이다. 고슴도치는 밀접할수록 가시에 찔리고 강아지는 밀접할수록 털이 포근하다. 시종(始終) 둘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세스로 보아야 맞다.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보아야 복제와 증폭이 가능하다. 결과에만 맞추면 반드시 왜곡된다. 상대어는 방향에 혼선을 일으켜 우리의 모든 시도를 실패로 이끈다. 모순(矛盾) 둘을 하나의 방향성으로 풀어야 한다. 두 개의 노로 방향을 잡으려 하므로 모순이 일어나는 것이며 하나의 키로 방향을 잡으면 갈등은 해소된다. 승패 둘이 아니라 하나의 전투력으로 평가해야 바르다. 승강은 둘이지만 엘리베이터는 하나다. 화복(禍福) 둘이 있는게 아니라 하나의 반응성이 있다. 긴장과 이완은 둘이지만 그 팽팽해지고 느슨해지는 활시위는 하나다. 왕래는 둘이지만 트래픽은 하나다. 우성과 열성은 둘이지만 유전적 다양성은 하나다. 경중은 둘이지만 비중은 하나다. 개폐는 둘이지만 문은 하나다. on, off는 둘이지만 스위치는 하나다. 고금은 둘이지만 세월은 하나다. 남북은 둘이지만 지축은 하나다.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방향성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절대어다. 상대어를 버리고 절대어로 써야 한다. 나침반은 남극과 북극 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단지 지축 하나와 나란할 뿐이다. 결코 나침반은 N극과 S극을 가리키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지축을 복제한 것이다. 깨우침이 있어야 한다. N극과 S극은 허상이다. 허상을 버리고 진상을 얻어야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충분히 훈련되어야 한다. 훈련하여 모든 대립되고 모순되고 충돌하고 갈등하는 것의 숨은 조정자를 찾아낼 때, 숨은 자이로스코프를 찾아낼 때, 차동기어의 유성기어처럼 모순되어 충돌하는 두 바퀴를 동시에 조정해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보이지 않는 손을 획득하게 된다. 두 개의 노로 방향을 잡을 때 들어가는 에너지가 100이라면 한 개의 키로 방향을 잡을 때 들어가는 힘은 1이다. 아니 그 이하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 두 개의 노는 땀이 나도록 열심히 저어야 배가 방향을 틀지만, 한 개의 키는 가만 있어도 방향이 잡힌다. 키를 트는 반대쪽으로 더 많은 힘을 받기 때문에 키를 돌리는 힘이 가속되는 것이다. 자동차의 핸들이 처음에는 잘 꺾이지 않다가 한 번 돌아가기 시작하면 홱 돌아가는 것과 같다. 배가 거꾸로 키에 힘을 보태온다. 탑 포지션을 차지하면 전혀 힘이 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저절로 호주머니에 보너스가 두둑히 쌓인다. 힘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힘이 생겨난다. 하부구조의 둘을 경쟁시켜 놓으면 가만 있어도 알아서 가져다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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