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무엇이 문제인가?
구조론연구소 김동렬슨생 2012..1.3
불행은 김문수가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뚱맞게도 피해자 중학생의 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한 야후 웹툰의 만화가 윤서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예전에도 무수히 잘못을 저질렀고 지금도 잘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잘못을 저지를 것이다. 왜? 상부구조로부터의 보이지 않는 손에 조종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조종된다.
김문수는 여전히 말을 잘못했다거나 표현이 서툴렀다고 생각할 것이다. 본의를 알아주지 않는 국민들에게 야속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 소방관을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소방관이 선출된 국민의 대표자는 아니다. 그러나 국민의 관점에서는 대표자다. 김문수가 국민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들켰다. 그 대표성이 포착해야 할 상부구조다.
문제는 김문수가 왜 그런 마음을 먹었느냐다. 역시 대표성이다. 소방관 중에 대표로 한 사람만 손봐주면 소방관 조직 전체가 바짝 얼어서 앞으로는 자신에게 알아서 기지 않겠느냐 그런 거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먹은 이면에도 역시 대표성이 자리하고 있다. 무엇인가? 콤플렉스다. 문제의 그 장면은 굴곡 많았던 김문수 자신의 인생을 함축하여 대표하는 명장면인 것이다.
점철된 변절과 배신으로 무수히 양심에 찔리며 고통받아온 인간 김문수 일생의 설움을 그 야비한 보복 한 방으로 떨치려 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지불식간에 그러한 자기 인생의 대표성이 불쑥 튀어나온다는 거다.
극복해야 할 감추어둔 ‘에고’가 불쑥 튀어나오는 거다. 그래서 문제다. 그런데 원래 인간에게는 하나의 작은 사건에 자기 인생 전체의 무게를 대표하여 반영하려는 본성이 있다.
관객들이 나가수에서 임재범의 고해를 부른 박완규의 열창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면 역시 자기 인생의 깊은 부분에서 설움이 끌어져나온 것이다. 울컥 하고 쏟아져 나오는 것이 있다. 그것이 대표성이다.
단지 노래가 훌륭해서 눈물이 쏟아지는건 아니다. 자기 인생의 대표성이 그 노래와 문득 반응해서 공명한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평소에 쌓아둔 것이 없다면 반응하지 않는다.
좋은 노래를 들어도, 좋은 그림을 보아도 반응하지 않는다. 뜨겁게 반응하기는커녕 차갑게 냉소하게 된다. 반응하는게 중요하다.
만약 어떤 남자(여자)가 어떤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여자(남자)를 보고 가슴 한 켠이 짜릿했다면 단지 그 여자(남자)가 예뻤기(좋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쁜 사람, 좋은 사람은 TV에도 많고 길거리에도 많다.
자신이 평소에 무수히 생각하고, 갈망하고, 그리워하고, 기대하고, 꿈 꾸며 설레어 했던, 느낌들이 가슴 속 한 구석에 켜켜이 쌓여 있다가 왈칵 쏟아져나온 것이다. 그렇다. 반응한 것이다. 대표성이다.
어쩌면 소년 김문수는 암행어사 박문수를 100번 쯤 읽었을지도 모른다. 이름도 비슷하니까. ‘암행어사 출도’를 놓는 장면을 무수히 상상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전화기에다 대고 암행어사 출도를 놓아버렸다. 이건 실패다.
‘김문수 어사 떴다.’ ‘암행어사 출두라구.’ ‘나 김문수야.’ ‘김문수.’ ‘도지사.’ 근데 반응이 없다. ‘이런 우라질.’ 암행어사가 떴는데도 소식이 없다니. 용서할 수 없다. 보복 들어간다.
윤서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만화를 그렸을까? 그의 잠재의식에서 무엇이 튀어나온 것일까? 그는 과거에도 무수히 사고를 쳤다. 친일발언, 이명박찬양 등 레파토리도 다양하다.
그는 아마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품었던 마음 속의 앙심. 꾹꾹 눌러둔 바로 그것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가 평소 마음 속에 기르고 있던 괴물이 불쑥 튀어나왔다.
“혹시 마음 속에 괴물 한 마리 기르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들이 반성하고 회개할 가능성은 없다. 그들의 생각은 이렇다. 팩트만 보자. 소방관과 도지사인 나의 일대일 관계다. 그들은 부주의하게 근무했고 나는 이를 바로잡았다. 뭐가 잘못이지?
대표성? 그런거 생각 안 한다. 그거 생각하면 힘들어진다. 왜? 인생을 통째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 속 깊은 곳에 기르고 있던 괴물이 불쑥 튀어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 콤플렉스다. 억누르고 있던 것이 터져나온다. 그는 인간에 대한 적의를 가지고 있다. 윤서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무개념의 자유분방한 행동인것처럼 물타기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 분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들킨 것이다.
무엇인가? 이것은 공동체적 동물인 인간이 개인의 스트레스를 집단에 전가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어리광이다. 자기 문제를 집단에 떠넘겨 집단에 고통을 가함으로써 문제의 존재를 집단에 알리는 것이다.
이는 타자에 대한 공격행동이면서 동시에 자기파괴 행위다. 인격이 미성숙한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벗어날 수 없다.
TV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연예인의 발언 대부분 이와 같은 경우다. 무의식중에 인간에 대한 적대감이 터져나온 것이며 들킨 것이다. 특히 자신이 힘겹게 쌓아올린 것을 다중이 인정해주지 않을 때 이런 보복심이 축적된다.
김흥국이 대표적이다. 바닥시절 강석이 시키는대로 방송국 복도를 집으로 삼고 PD들 잡심부름이나 하며 쌓아둔 설움이 터져나온다. 당한 만큼 사회에 복수하는 거다. 앙갚음이다. 역시 대표성이다.
*** 그들은 당사자와의 일대일 관계이며, 사건 자체로만, 사건의 팩트 부분만 축소시켜 보자고 강변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인생 전체의 무게가 실린 것이며, 평소의 생각이 함축, 대표된 것이며, 평소에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사는지 들킨 것이다. 비뚤어진 본성이 나타난 것이다. 마음 속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전여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문장력은 전여옥이 유재순보다 뛰어날지도 모른다. 만약 유재순이 먼저 책을 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몇만부 팔려서 고작 몇 천만원의 인세수입을 올렸을 것이다.
“어차피 유재순 네가 책을 냈으면 책을 많이 팔아봤자 몇 천만원 정도 벌었을텐데 내가 책을 냈으니 무려 십억대를 번 것이다. 그래도 친구인데 니가 뒤로 조용히 부탁했다면 내가 몇 천 정도 성의표시도 안 할 정도로 양심없는 사람도 아니고.
근데 니가 대책없이 언론에 떠들어서 네 지명도가 올라갔으니 그걸로 셈셈이 치면 되는 거고. 그랬어도 네 책이 안 팔린건 네 책임이고. 그랬으면 됐지 이제 와서 내 금뺏지까지 떼려는건 뭐냐? 이건 경우가 아니잖아.”
이건 하나의 논리다. 아전인수지만 이 논리 하나를 꽉 부여잡고 자신의 양심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즉 유재순과 전여옥의 개인관계로 보는 것이다. 표절이나 범죄나 윤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의 관점은 들이대지 않는다. 대표성은 생각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유재순 대 전여옥의 개인문제로 본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질이 아닌 입자 단위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때 네가 안 그랬으면 나도 안 그랬을 거다’는 식이다.
그러나 어쩔수 없이 인간은 인류의 대표자로 운명 앞에 선다. 그리고 심판을 받는다. 문제는 대표성이다. 개인의 인생 전체가 한 장면에 함축 된다. 공동체의 집단의지 전체가 하나의 사건에 압축된다.
그것이 마음의 상부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인류라는 공동체의 상부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인간의 마음 안에도 무의식적으로 조종하는 것이 있고, 인류의 공동체 안에도 무의식적으로 조종하는 것이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그 보이지 않는 손이 마음 안쪽에서 팽팽하게 긴장을 불어넣는다. 자기도 모르게 은밀히 진행된다. 바람이 가득찬 풍선처럼 팽대해지면 어느 순간에 빵 터진다. 자기는 파괴된다. 정신차려야 한다.
단 한 마디 말에, 단 한 번의 쏘아보는 눈빛에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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