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싼 전력'의 재앙, 전력 정책 방향타를 돌려야"
기사입력 2011-09-15 오후 7:06:18 프레시안
15일 오후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인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비상용 자가 발전 체계를 갖춘 대기업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난생 처음 겪는 일'이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사람이 갇히거나, 금융 거래가 끊기는 등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규명 중이다. 정부 당국은 '일시적인 전력 수요 급증' 때문이라는 데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이런 진단에 동의한다. 하지만 처방은 다른 경우가 많다. 한국서부발전 사외이사를 지낸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예견된 사고'라며 말문을 열었다. 현행 에너지 수급 체계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게다. 이런 입장은 앞서 터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맞물려 눈길을 끈다. 에너지 수급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라는 것.
"'지산지소' 방식 '분산형 전원' 늘려야"
중앙집중형이 아닌 분산형 전원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런 방식을 도입할 경우, 정전 등 사고가 터져도 피해 범위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는다. 정희정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처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재생가능에너지가 확대 보급돼야 한다"고 말했다. 태양 에너지, 식물이나 해조류에 의해 만들어지는 바이오매스 연료, 풍력 등을 이용해 전력을 만드는 방식이 확산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재생가능에너지는 대부분 지산지소(地産地消) 방식이다. 전력을 생산한 곳과 소비하는 곳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다. 지역이 필요한 전력을 해당 지역이 생산하는 방식이므로, 정전 피해의 범위가 제한된다. 또 생산과 소비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므로, 시민들이 에너지 문제에 대해 민감해 진다.
"전력 낭비 구조 방치하고선 해답 없다"
이어 정 사무처장은 전력 수요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전력을 값싸게 공급하는 데만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이제는 방향을 바꿀 때라는 게다. 지구 온난화 등으로 에너지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공급만 늘려서는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한국은 인구 규모는 세계 25위인 반면,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11위 수준이다. 소득 수준과 비교해도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편이다. 1인당 에너지 소비는 미국, 호주에 이어 세 번째인데, 이는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큰 독일, 일본 등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정 사무처장은 전력 요금 체계의 개편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번처럼 전력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는 상황에선 시민들이 전력 사용을 자제하게끔 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정 사무처장은 시간대별로 전기요금이 달라지게끔 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력 수요가 늘어난 시간대에는 요금이 비싸지면, 이 시간대에는 불필요한 전력 사용을 줄이게 된다는 게다.
"공급 탄력성 낮은 원자력·화력, 대안 아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국장도 "그동안 한국이 너무 싼 값에 전력을 공급해 왔다"며 말문을 열었다. 특히 산업용 전기의 경우 원가보다 싸게 공급해 왔다는 것. 이런 상황에선 굳이 전력을 아껴야 할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게다.
가정이나 가게에 공급하는 전력 역시 마찬가지다. 에어컨을 켜놓은 상태에서 가게 문을 열어 놓은 풍경은 이런 구조의 산물이라는 것. 이런 구조를 방치하고서는 전력 공급을 아무리 늘려도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관련 기사: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전기요금, 올리는 게 옳다", "전기요금, 이젠 올릴 때다")
다른 문제도 있다. 한국처럼 원자력과 화력에 주로 의지하는 전력 생산 구조는 공급 탄력성이 너무 낮다는 게다. "발전소를 가동하고 멈추는데 드는 비용이 너무 커서 수요에 맞춰 탄력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게 불가능하다"라는 게 양이원영 국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해마다 원자력과 화력 발전의 비율을 높이고 있다.
이어 그는 프랑스를 예로 들었다. 대표적인 원전 강국인 프랑스 역시 지난 2009년 겨울 전력 부족 사태를 겪었다. 공급 탄력성이 낮은 원자력 발전으로는, 냉난방 수요가 급격히 변하는 사태에 대응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 "이젠 에너지 전환이다" 관련 주요 기사 모음
|
▲ 대규모 정전 사태로 전국이 아수라장이 된 15일 오후, 전력거래소 풍경. ⓒ뉴시스 |
벼랑 끝에 선 지구, 인류 문명 멸망은 시간문제 (0) | 2011.10.22 |
---|---|
대형발전소 4곳이나 멈춰놓고 전력부족? (0) | 2011.09.17 |
"초유의 '블랙 아웃', 진짜 공포는 겨울이다" (0) | 2011.09.16 |
중국 희토류 생산 축소의 의미 (0) | 2011.09.07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숨겨둔 금화 찾아나선 일본 (0) | 2011.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