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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답변, 어느 독자의 메일에 대한 그리고 모두를 위한.

◆경제지혜·미래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5. 1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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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답변, 어느 독자의 메일에 대한 그리고 모두를 위한.   

2011.5.14  호호당의 김태규님

 

 

독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적잖이 메일을 받는지라 성가신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간단하게 답변을 드렸다. 묻는 내용 간단해도 답해야 하는 내용은 그보다 훨씬 길다. 또 자세하게 답변을 해도 상대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독자에게 더 자세한 답변을 드릴 겸 다른 여러 사람들과도 공통된 부분이 많다고 여기는 까닭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메일을 보낸 독자는 여성이고 경력 20 년의 공무원,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고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라 한다. 빚은 없고 약간의 재산이 있다고 했다. 남들로부터 살기 편하겠다는 말을 듣지만, 스스로는 홀로 되신 친정아버님도 돌봐야 하고 직장 다니며 아이들 키우느라 어려움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현재 보직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공무원 생활에 회의도 생겨서 그만 두고 싶은데 남편을 포함해서 주변에서는 안정된 급여를 왜 포기하느냐 등의 만류를 받고 있다 한다.

 

이 정도 내용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얘기, 특별히 독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것은 아닌 것 같아 얘기했다.

 

그런데 공무원 그만 두면 앞으로 어렵게 될까봐 걱정이 좀 되고, 아이들의 학업도 시원치 않아 걱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지금 운세흐름이 상승기에 있는지 아님 하락인지 좀 알려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자신의 운이 상승 중에 있다면 아이들에게 신경도 더 쓸 겸 자신이 평소 하고 싶던 일도 해보기 위해 마음 편하게 직장을 그만 둘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개 이런 메일을 받게 되면 나는 답변을 하지 않는다. 답변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또 답변을 한들 상대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나는 답변을 한 것이며, 이렇게 글까지 쓰는 것은 달리 무슨 까닭일까?

 

메일의 내용과 질문을 보면 보통 사람들이 갖게 되는 지극히 인간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소망, 궁금증, 걱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게 보내오는 메일의 한 典刑(전형)이고 표준이기에 글을 쓴다.

 

블로그에 올림으로서 지금까지 왔고 앞으로도 오게 될 메일들에 대한 표준 답변으로 삼고자 함이다.

 

약간 재미나고 엉뚱한 생각도 든다. 이런 메일에 대해 내가 돈을 받고 답변하는 사람이라면, 장문의 표준 답변을 써놓고 약간씩만 수정하고 양념까지 쳐주면 제법 장사가 되겠다는 생각.

 

장문의 답변이니 상대는 무척이나 성의가 담겼다고 여길 것이고 그러면 갈수록 장사가 잘되지 않겠는가? 이거 비즈니스 모델 되는데! 하며 키득거려 본다.

 

객소리 접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간다.

 

수만 명의 사람을 상대로 상담을 해본 경험이 있는 나는 처음 만난 사람일지라도 인사 간단히 나눈 뒤 몇 마디 말만 들어보면 그 사람의 운세방향이 어느 쪽인지에 대해 거의 틀리는 법이 없다.

 

그 말고도 상대의 얼굴과 어투, 자세 등등을 통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과거와 현재의 상황, 또 미래의 흐름들을 감지해낸다.

(반복은 천재를 훨씬 능가하는 법이니 이를 ‘짬밥 내공’이라 한다.)

 

왜 이런 말부터 하느냐 하면 자신의 운세 흐름 정도는 조금만 스스로를 객관화시킬 수 있다면 굳이 나 같은 道士(도사)를 찾아오지 않아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앞서 그 분의 상황을 놓고 얘기해보자.

 

경력 20 년의 공무원이고 남편도 직장에 잘 다니는 성실한 분이라고 했다. 게다가 빚도 없으니 재산이 얼마냐는 다음 문제이고 얼마나 편하게 살고 있는가? 남편이 속을 썩이기를 하나, 빚 독촉에 시달리기를 하나?

 

아이들 학업이 시원치 않다고 하는데, 한 반에 30 명의 학생이 있다고 할 때 위에서 5 등 안에 들지 못하는 25 명의 자녀는 그 부모가 그런 마음을 당연히 가질 것이다. 학업이 시원치 않은 아이가 시원한 아이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정상 아니겠는가?

 

그리고 남들은 편하다고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혼자 계신 친정아버지도 돌봐야 하고 직장과 자녀 양육을 병행하느라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친정아버지 돌봐야 하는 딸이 세상에 어디 한 둘이며, 여성으로서 양육과 직장을 같이 하는 고충은 오늘날 일반적인 일이니 또한 정상이다.

 

그러니 남들이 하는 말, 살기 편하다는 말이 더 진실이고 정확한 말임을 알 수 있다.

 

공무원 일이라는 것이 사실 어디 특별히 재미난 일이라면 오히려 문제가 된다. 재미난 일은 고생도 많고 험난한 고비도 따르기 마련인 것이니 공직이 그래서야 세금 내는 국민만 고생시키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문제는 이제 모든 생활이 안정된 결과 남은 것은 단지 심심하다는 것이다.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만 둘까 하고 고민 좀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민을 두고 행복한 고민이라 하는 것이다.

 

이런 분의 경우 더 볼 것도 없이 자신의 운세가 이미 頂點(정점)을 지나 하강기에 있는 것이다.

 

그간의 운세가 상승이었기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고 또 성실한 남편을 만나 자녀를 낳고 건강하게 키워왔으며 또 빚도 없이 그런대로 무난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라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운의 흐름은 ‘서서히’ 하강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분의 경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그간의 일이 행복인 것을 모르고 더 큰 행복과 본질적인 성취를 바라고 있다.

 

왜냐면 그간의 일들이 너무 평범하다고 느끼는 까닭이다.

 

꼭 집어 말하면 平凡(평범)이야말로 ‘대단한 幸福(행복)’인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소 건강할 때는 모르다가도 감기 한 번 세게 앓고 나면 몸이 멀쩡하다는 것이 대단한 행복인 것을 알게 되고 또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듯이, 이 분도 평범한 생활이 대단한 것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감기 정도라면 그렇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상의 그 평범하고도 대단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것이 행복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아이들 성적이 시원치 않다? 자폐나 기타 고질병이 없는 것만 해도 부모의 행복인 것이며, 남편이 술이나 먹고 여자 문제로 골치 썩이지만 않아도 아내로서의 행복인 것이다.

 

지난 20 년간 특별한 탈 없이 직장 생활 무난하게 해온 것만으로도 특히 우리 사회의 한 캐리어 우먼으로서 행복인 것이다. 두 사람이 맞벌이를 해서 빚이 없고 약간의 현금을 모을 수 있었다면 그 이상 경제적으로 윤택할 수 없다 하겠으니 금전적 행복인 것이다.

 

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손에 쥐고서도 또 다른 이상하고도 추상적인 정체불명의 행복을 바라는 것일까?

 

모든 것을 얻은 자는 다른 불만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그 불만의 ‘생겨남’ 자체가 실은 이제 운세가 하강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확실한 증표인 것이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 정말 대단하고도 요란한 성취를 누리는 자도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건 그 사람의 타고난 그릇의 문제이지 운이 좋아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요란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지만, 평범한 것들이나마 내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다면 그건 그간의 운세 흐름이 좋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평범한 행복을 쥐고 누리면서도 이상한 불만이 자꾸 생겨나면 이제 운은 하강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未久(미구)에 생각지 않은 일들이 닥치면서 본격 하강기로 접어들게 된다.

 

평범한 것을 그대가 쥐고 있는가? 누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대 운세는 정점 근처에 있거나 이미 살짝 정점을 지나고 있음이다. 아주 평범해 보이는 그것들이지만, 장차 그것들도 사라지고 이어지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를 알면 장차 닥쳐올 불행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된다.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老子(노자) 道德經(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夫亦將知止(부역장지지) 知止可以不殆(지지가이불태)가 그것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무릇 장차 그것이 그칠 것임을 알면 그로서 어려움에 처하지 않을 수가 있다’가 된다.

 

한 마디 더 해두고자 한다. 결국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만족할 줄 아는 기술 또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한 행복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도덕경에선 知足者富(지족자부)라 한다. 자족할 줄 알면 그게 바로 富者(부자)인 것이다.

 

이 말은 결코 虛言(허언)이 아닌 것이니, 나는 독자들이 이 말을 그냥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나중에 꼭 ‘피를 보고나서야 그게 빈말이 아니네’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인생살이 등 따습고 배부르면 일단 충분한 것인데, 살면서 보면 그게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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