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히면 사탕 하나 주지! 하고 장난을 걸어오는 세상
2011.5.6 호호당의 김태규님
삶과 운명이란 얼마나 奇異(기이)한 일인지, 어떤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누구나 그리고 모든 삶이 그 얼마나 奧妙(오묘)하고 精巧(정교)한 인연들로 채워져 가고 또 그 모든 일들이 아득히 먼 시간 앞의 일들과 그 빛을 주고 또 받으며 연결되는 그 微妙(미묘)한 이음새와 그물을 혹시라도 약간이라도 엿보게 된다면 그야말로 삶과 운명의 神秘(신비) 앞에서 敬歎(경탄)하고 畏敬(외경)의 마음으로 진저리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눈앞의 세상은 수많은 우연들이 無作爲(무작위)로 생겨나고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오늘의 과학은 무작위를 오히려 긍정하고 우연을 더 선호한다.
이에 나는 그와 正反對(정반대)이다.
偶然(우연)한 일은 세상에 없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친 생각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간 내가 내 눈으로 보았고 그로서 알게 된 것은 여기서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연한 일이 ‘그냥’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원초적으로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나는 아예 우연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신비주의자’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지만, 神(신)의 與否(여부)를 모르는 나이기에 그런 것은 아니라는 답을 얻게 된다.
동시에 우연이 없으니 그렇다면 세상 모든 것이 어떤 목적을 지녔다고 믿는 目的論(목적론)자인가? 하지만 그도 아니다. 목적론의 반대로서 機械論(기계론)이 있는데, 이는 세상 모든 것을 물질적 인과로 설명하는 것이니 그 또한 내 입장이 아니다.
세상의 짜임은 물질적 인과가 아니요 정신적 그것도 아니니 그냥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것들로 짜인 무엇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무엇인지 형언할 방법이 없지만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그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실로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이런 스타일의 글을 쓰길 무척이나 싫어한다.
무엇을 모두의 눈앞에 놓고 그 물건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고 또 남의 생각이나 의견도 들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누구도 본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그것을 말로서 형언하고 설명할 수도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안타깝게도 나 혼자만 보았다면 그로서 말문을 닫고 그냥 있으면 될 일이건만, 어디 사람이 또 그런가! 내가 본 이것이 너무나도 오묘하고 신비해서 지금 나는 잠시 그 압도적인 印象(인상)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성질 같아선 정말이지 내가 본 이것을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이것을 가져다가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여주고 싶지만, 그러질 못하니 답답하다.
비유컨대 이런 생각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빛을 보지 못해서 세상의 아름다운 빛을 본 적이 없는 맹인에게 빨간 색이 어떠하고 파란 색이 무엇인지를 묘사하고 설명하려는 노력을 시도하는 것 같은 생각이다.
그러니 설명할 길 없는 색깔에 대해 알려주고자 하는 이 마음 안타깝고, 빛을 본 적 없는 맹인의 마음 답답할 것이니, 독자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싶다.
나는 어쩌다 이런 것까지 보게 된 것일까? 주변에 비슷한 것을 찾아서 비유라도 할 수 있었으면 그나마 덜 답답할 터인데 말이다.
뿐만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두고 얘기하다 보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는 惑世(혹세)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으니 그 또한 답답하고 억울하다.
그저 어려서부터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 보니 어느덧 사람들이 보지 못한 세계에 발을 디뎠고 또 계속 앞으로 걸음을 옮겨놓다 보니 결과적으로 이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고 형언할 수 없는 경치를 보게 된 것이다.
강좌를 한다. 음양오행과 명리학 강좌 말이다. 석 달 걸리는 과정을 통해 배우는 이들에게 나름 가장 쉬운 말로 친절한 용어를 써서 열심히 설명하고 이해시키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그 또한 내가 정말로 보았던 세계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저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 하나를 쥐어주려고 애를 쓰지만 그 열쇠를 받아가는 이 극히 드물어 때때로 좌절할 뿐이다.
전달했으니 혹여 시간이 지나고 인연이 되면 손에 든 그것이 전혀 보지 못한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인 것을 자각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볼 뿐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보다는 하등의 시시하고 별 필요도 없는 물건이건만 보물이라 여기고 신나서 주워 가는 것이 더 일반적이니 실망하는 마음 가눌 수 없지만 어쩌랴! 현실의 한계는 거기까지인 것을.
블로그에 글을 쓴다. 조금이라도 내가 본 그것을 간접적으로나 전달하고 그로서 혹여 한 사람이라도 힌트를 얻고 위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거의 매일 글을 쓰고 또 올린다.
다 전달은커녕 그 100 분의 1이라도, 약간의 냄새라도 맡는 이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쓰고 또 올린다. 현실의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세상 전체는 본래부터 하나인데 그것을 임시로 各個(각개)인 것처럼 나누어서 노는 역할 놀이가 우리의 삶이고 우리 눈앞의 세상인 것을 내 어쩌랴.
세상은 끊임없이 장난을 쳐온다, 幻(환)의 놀이를 보여준다.
환의 놀이 너머 편에 전체가 하나인 세상을 네가 볼 수 있다면 너에게 사탕 하나 주지! 하며 놀려대며 장난을 걸어오는 이 세상이다.
오늘은 흐린 날씨, 저 드리운 구름 위에는 분명 푸른 하늘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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