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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들

노짱, 문프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1. 1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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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들
(서프라이즈 / 개곰 / 2011-01-17)

 


2010년 4월 총선에서 헝가리 국민이 중도우파인 빅토르 오르반의 피데스(헝가리시민동맹)에 과반수를 넘어 3분의 2가 넘는 의석을 몰아주면서 압승을 안겨준 것은 사회당 정부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를 비롯하여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급격한 체제 변화를 겪은 나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이지만 헝가리에서도 자본주의에 재빨리 적응하면서 한몫 잡은 신진 기업인 중에는 젊은 공산당 간부 출신이 많았다.

 

사회당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주르차니 페렌츠도 학창 시절인 1980년대에는 공산당 청년조직의 핵심 간부로 활동하다가 공산주의가 무너진 1990년 이후 민간 금융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 공산당원 시절에 쌓아놓은 인맥을 통해 국가 재산을 발 빠르게 불하받아 재력가로 급성장한 뒤 2000년 초 다시 정치로 돌아온 경우였다. 정치에 뛰어들기 전 페렌츠는 헝가리의 50대 부자 안에 들어갔다.

 

헝가리는 1956년의 헝가리 봉기에서 드러났듯이 전체주의를 못 견뎌 하고 독립과 자유를 갈구하는 국민의 나라로 냉전 시대에 이미 명성을 얻었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다음에도 다원성을 중시하는 서유럽 정치 제도를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나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개방과 민영화의 수혜는 페렌츠 같은 소수 엘리트에게만 돌아갔다.

 

헝가리의 취업률은 55%로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국민의 3분의 1이 빈곤선이다. 헝가리 재정은 파산 직전이다. 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자본주의에 실망한 헝가리 국민은 8년 동안 사회당에 나라를 맡겼지만 사회당은 이미 금융 컨설턴트 출신의 벼락부자 페렌츠가 움직이는 당이었다.

 

헝가리 국민은 기댈 곳이 없었다. 1988년 피데스를 창당할 당시에는 35세 이하에게만 당원 자격을 주면서 자유주의를 내걸었다가 신통한 결과를 못 얻자 재빨리 보수주의로 변신하여 결국 총선에서 압승을 거둘 만큼 여론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빅토르 오르반은 이 점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중도우파면서도 대기업에 위기세를 물려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1차대전에서 패하면서 주변국에 영토의 3분의 2를 잃은 뒤 헝가리 밖에서 살아가는 재외 헝가리인에게 시민권을 주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헝가리의 수호자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었다.

 

오르반은 작년 연말 아예 미디어법까지 뜯어고쳐서 여론을 반영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여론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새로 만들어진 미디어법의 핵심은 신설된 언론위원회다. 총리가 임명하는 5인으로 구성된 언론위원회는 신문, 방송, 인터넷을 망라하여 모든 언론 매체를 감독하면서 만약 균형감을 상실했거나 인륜을 거스르거나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내용의 보도를 했을 경우 100만 달러의 벌금을 물리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헝가리는 공산주의 시절 워낙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산 것이 한이 맺혔던지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로는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표현의 자유를 누렸다. 언론도 사실에 입각한 보도보다는 이념적 적개심에 불타 상대를 덮어놓고 깎아내리는 보도만 하기 일쑤였다. 어떻게 보면 방종에 가까운 언론의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집권당이 전원을 임명하는 언론위원회는 나쁜 언론을 혼내기보다는 좋은 언론을 겁주는 파시즘 체제의 공안위원회 노릇을 할 가능성이 크다.

 

헝가리는 실제로 급격히 우경화하고 있다. 작년 총선에서 제2당은 59석을 얻은 사회당이었지만 제3당은 47석을 얻은 극우 요비크당이다. ‘더 나은 헝가리를 위한 운동’이라는 뜻을 가진 요비크는 집시 범죄 강력 처벌, 반세계화를 표방하면서 나치스의 돌격대 비슷한 제복 차림의 준군사 자경단까지 외곽 조직으로 거느린 세력이다.

 

우익 정당이 극우 정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전통이 있는 서유럽 국가와는 달리 피데스와 요비크는 지방선거에서 공동 후보를 내세운 적도 있을 만큼 정서적 이질감이 적다. 요비크 행동대원들은 소수민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는 극우 조직을 비판하는 정치인과 지식인의 집 앞에서 행진을 벌이면서 겁을 준다. 헝가리의 양식 있는 인사들은 오르반의 미디어법이 헝가리 사회의 극우화를 부채질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이런 경고를 귀담아듣는 헝가리인은 많지 않다.

 

그러나 미디어법을 우려하는 헝가리인들이 외롭지 않은 것은 미디어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유럽 각국에서도 나오고 유럽연합에서도 헝가리의 언론법이 권력 분립이라는 민주주의와 유럽연합의 기본 정신에 저촉된다는 규탄이 잇따라서다. 올해 1월 1일부터 6개월 동안 헝가리가 유럽연합의 순회 의장국을 맡게 되어 오르반 총리는 미디어법을 설사 개정하지는 않더라도 노골적으로 정적 탄압에 이용하는 데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헝가리가 외로운 섬이 아닌 것은 꼭 바다를 끼지 않은 내륙국이라서가 아니라 유럽연합이라는 이상의 공동체가 자국 안의 극단 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주어서다. 헝가리의 극우 세력도 외롭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적어도 유럽 안에서는 뜻을 같이하는 타국의 극우 정당과 교류할 수 있다.


외로운 나라의 외로웠던 대통령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은 외로운 나라다. 언제 낙오할지 모르는 나라고, 낙오하더라도 누구 하나 챙겨줄 이 없는 나라다. 챙겨주기는커녕 속으로 쾌재를 부를 나라들에 둘러싸인 나라다.

 

세계무역기구에서 일하던 김현종이 2003년 통상교섭조정관으로 임명되었을 당시 세계무역기구 회원국 150개국 중에서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은 나라는 몽골과 한국뿐이었다. 더욱이 주요 통상 국가들은 IMF 당시 한국 정부가 부도 위기에 몰린 기업을 살리기 위해 투입한 공적 자금을 부당한 보조금으로 규정하고 제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판이었다.

 

김현종은 세계 통상의 조류가 사공이 많아서 내실 있는 결실을 보기 어려운 기존의 다자간 협상에서 결론을 내리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양자간 협상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음을 다자간 통상 교섭의 최전선인 세계무역기구에서 일하면서 간파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에게 통상 교섭 전략 수립의 중책을 맡겼다.

 

자원이 없고 통상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한국 같은 나라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시대 조류를 외면할 경우 순식간에 낙오자가 될 수 있었다. 자유무역협정은 제3국에 대한 차별이 본질이므로 참여하지 않으면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은 나라의 시장에서는 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들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

 

한국이 칠레와 2003년에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뒤 한국 시장에서 칠레산 와인과 칠레산 키위의 점유율은 급증했고 프랑스산 와인과 뉴질랜드산 키위의 점유율은 급감했다. 프랑스 농업계와 뉴질랜드 농업계는 자국 정부에 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라는 압력을 넣게 마련이었고 그 경우 한국은 유리한 지위에서 협상에 임할 수 있었다.

 

한번 경쟁에서 밀리면 만회하기란 쉽지 않다. 시장을 잃지 않으려면 큰 시장을 가진 나라에다 공장과 기술을 이전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한국의 일자리는 당연히 사라진다. 한번 나간 공장을 다시 들이기란 쉽지 않다. 자유무역협정은 길게는 한국의 일자리를 지키려는 전략이기도 했다.

 

그러나 통상 국가에 자유무역협정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으므로 그만큼 안팎의 방해 공작도 컸다. 김현종이 외국과 통상 교섭을 할 때 일본은 한국의 교섭 상대국에 한국은 믿지 못할 나라라면서 훼방을 놓았다. 한국은 외로운 나라다.

 

한국은 서글픈 나라기도 하다. 그렇게 한국의 앞길에 번번이 재를 뿌렸고 지금도 뿌려대는 일본을 상전으로 섬기는 이들에게 이승만부터 이명박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 국민이 유린당하는 현실을 아무도 나라 밖에서 아파해주지 않는다.

 

헝가리의 앞날을 걱정하는 국민에게는 헝가리의 미디어법에 숨은 장기 집권의 음모를 같이 걱정해줄 유럽연합이라는 원군이 있었지만 한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국민에게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에 숨은 장기 집권의 음모를 같이 걱정해줄 나라 밖 원군은 없다.

 

 

노무현은 외로운 사람이었다. 한국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나라 밖 원군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므로 한국 스스로의 힘으로 준비하고 개척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의 보수도 한국의 진보도 침을 뱉었다. 보수는 ‘미국’만 믿으면 된다면서 침을 뱉었고 진보는 세계화의 ‘세계적’ 폐해를 강조하면서 침을 뱉었다.

 

아무도 노무현을 지켜주지 않았다. 노무현을 따르던 사람들도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있다고 한 조현오 경찰청장의 발언으로부터 고인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검찰에 수사를 촉구했지만 검찰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강추위 속에서 일인시위도 벌였지만 무반응이다. 반면 조현오는 쪼르르 중앙일보로 달려가서 인터뷰하고 할 말은 많지만 안 하겠다면서 의혹을 더 키운다.

 

노무현을 죽인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라도 쪼르르 달려가면 변명과 의혹을 부풀려줄 언덕이 있지만 노무현을 잃은 사람들은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귀담아들어 주는 곳이 없다. 상대방에게 일말의 선의를 기대하면서 북풍한설에 외롭게 떨 뿐이다.

 

노무현이 왜 전시작전권을 회수하려 했고 노무현이 왜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 했고 노무현이 왜 대북 송금 특검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떠들어주는 언론이 없는 한 기회주의자들은 언제든지 자기한테 유리하면 노무현을 능멸하고 부관참시할 것이다.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들끼리 지킬 수밖에 없다. 노무현을 영원히 지킬 수 있는 곳은 노무현을 추모하는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노무현의 뜻을 수호할 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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