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 말씀드린 것처럼 독일의 긴축정책이 유럽에(만이 아니라 세계에)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소로스의 비판은 타당한 것입니다.
G20 재무장관회의에서는 미국과 EU가 이처럼 타당한 명분과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실리 사이에서 의견 대립을 보였고, 그 결과 G20의 공식 성명서는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우 어정쩡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
"재정 부실한 국가는 긴축정책…여유있는 나라들은 수요 진작을"
...... G20은 재정문제가 심각한 나라에 대해서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촉구한 반면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은 나라에는 수요 진작을 촉구했다. 각국의 재정 사정에 따라 역할 분담을 요구한 것이다. 코뮈니케에서 "능력 범위에서 우리(G20)는 거시경제적 안정성을 유지하며 내수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
이 공식 성명서의 내용을 보고 이상적인 합의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면 철저한 오판입니다.
"능력 범위에서 ... (각자 알아서) 내수를 확대할 것"이라는 얘기는 결국 아무도 내수 확대를 안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전 세계가 모두 재정 긴축으로만 쏠리면 '더블딥'이 온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한 것이므로, ‘명분’에 따라 어떤 조치를 취하긴 해야겠기에 그 결과 성명서에 ‘각국의 재정 사정에 따라 역할 분담’을 할 것이라고 집어넣긴 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아무 것도 없고, 아무도 자신이 부담을 떠안기는 싫다고 하고 있으므로, 결국 실제로는 아무도 내수 확대에 나서지 않겠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뒤이어 지난 주말(6월 26, 27일) 캐나다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의의 결과를 보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
[G20 캐나다 정상회의] 美 "부양책 써라" 촉구…EU "긴축 방해마라" 일축…막판까지 진통 한국경제
......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을 겨냥,재정 긴축 문제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회의에 앞서 각국 정상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경기부양책이 너무 빨리 철회돼 경제적 고난과 침체를 다시 경험했던 과거에서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1930년대 중반 대공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자 긴축정책을 택해 더블딥에 빠졌던 것을 언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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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정상회의는 최종적으로 3년 내에 선진국들의 재정적자를 절반으로 감축한다는 '그랜드 플랜'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최종 결론에 이르기까지 설왕설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재정 긴축 움직임에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하는 입장이었지만, 결국은 최종 결론에 합의해주었습니다.
아래의 그래프는 불편한 경제학에 수록했던 것으로, 세계의 민간소비를 시각화한 그래프입니다.
위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세계 각 국의 GDP 규모가 아니라 민간소비만을 따로 떼어놓고 살펴보면 또 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중국은 40%가 넘는 고정투자와 역시 40%에 가까운 수출의존형 경제이기 때문에, GDP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6%(2007년 기준)밖에 안 되는 매우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가 넘습니다.
중국경제가 고도성장을 자랑하고 있고 올해 말이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를 달성해서 전체 경제규모가 미국의 3분의 1을 넘어선다고 해도 민간소비의 크기만을 놓고보면 아직도 미국의 5분의 1 밖에 안 될 것입니다.
결국 미국의 소비를 대체할 만한 소비지출을 중국에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008년 말 세계 경제위기가 시작된 후 미국은 통화정책(양적완화 정책)과 재정 정책(경기부양책) 양 쪽에서 팽창 정책을 취했습니다. 내수 소비를 적극 부양하는 정책을 썼던 것입니다. 결국 급격한 패닉 국면 이후 세계 경제가 지금까지 다소 안정된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재차 미국의 내수 소비에 의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은 자신들이 더 이상 경기부양책을 지속할 수는 없다, 세계 각국이 요구하는 것처럼 미국은 부채를 줄이고 저축률을 높여야겠으니 EU, 중국, 일본이 미국 대신 내수 소비를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EU도 재정위기를 핑계로 긴축 정책을 써야겠다고 완강하게 주장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내수부양의 짐을 떠맡기 싫은 것입니다.
일본은 2009년 5%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올해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위 그래프에서 미국, EU, 일본의 소비가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요?
경제 분석에서 최우선으로 버려야 할 것이 ‘막연한 추측’입니다. 위 그래프에서 미국, EU, 일본의 소비가 줄어들면, 그 감소분을 메워줄 다른 소비시장이 구체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저 막연하게 어딘가 있겠지,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선진국의 내수 소비가 줄어드는 감소분을 다른 곳에서 메워주지 못하면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 그래프가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선진국의 소비 감소분을 메워줄 수 있는 다른 시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국에 그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분명 꿈 같은 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최근 수출실적이 매우 좋습니다. 그 때문에 자꾸 착각을 하곤 합니다. 앞으로 그 좋은 수출실적을 유지할 수 있는 시장이 있습니까?
결과는 이미 확고하게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단지 시차 때문에 착각이 빚어지고 있을 뿐...
앞으로 나타날 결과는 ‘수출의존형 경제’에는 가혹한 고문이 될 것입니다. 내수형 국가들은 자체 소비 감소분만큼의 충격만 감당하면 됩니다. 하지만 수출의존형 국가들에는 감소효과가 증폭되어 나타납니다.
평상시 내수형 국가들이 2, 3%의 성장률을 보일 때 수출의존형 국가들은 내수형 국가들에게 수출해서 5, 6%의 고성장(중국은 10%가 넘는 두자릿수)을 구가했지만, 이와 같은 증폭효과는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게 어떤 것인지 이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위 그래프가 의미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찬찬히 생각해보시고 충분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래의 기사에서 보듯이 이미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사전에 경고하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주요국 긴축, 글로벌 경제 공멸한다 아시아경제
하지만 재정 긴축 정책에 반대하던 미국도 결국은 ‘3년 내에 선진국들의 재정적자를 절반으로 감축한다’는 결론에 합의해주었습니다.
미국은 지금, 나중에 나타날 결과에 대비한 자신의 명분을 충분히 쌓은 다음 EU와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한 공동보조일까요?
수출의존형 경제국가들,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넓게는 신흥국들을 대상으로 한 공동보조입니다.
신흥국들은 모두가 수출에 의존하여 빠른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전략을 써왔습니다. 나라의 경제구조가 수출의존도가 높게 짜여진 상태에서 갑자기 수출시장이 증발해버리면 그대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중국이 가장 대표적이지요.
결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전 세계의 교역 규모가 1.7% 축소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에서 교역량이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요 며칠 새 중국과 미국의 제조업 지표가 악화되는 모습이 나타나면서 주식시장이 크게 하락하기도 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제조업 지표는 시차 때문에 가장 늦게 악화되는 것입니다.
주택지표 -> 소비지표 -> 제조업지표, 순으로 악순환 고리가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관련기사: [뉴욕마감]전방위 경기 둔화 조짐...0.42%↓(종합) 아시아경제
이제 다시 제조업지표 -> 고용지표 -> 주택지표 -> ... 순으로 악순환을 확대 반복해나가게 될 것입니다.
관련기사: [뉴욕마감]‘고용지표 너마저’...다우 7일연속 하락 아시아경제
이제 세계 경제위기는 본격적인 게임 제 2 라운드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2 라운드 게임의 성격은, 줄어드는 세계 시장 속에서 ‘남의 것을 빼앗아오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팽창해나가던 ‘팽창의 시대’에는 시장도 팽창해나가면서 경쟁도 다소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수축하는 시대...
시장의 크기 자체가 줄어들게 되면, 경쟁이 글자 그대로 ‘생존 경쟁’이 됩니다. ‘생존(生存)’이라는 말은 ‘살아남기’를 뜻합니다. 남의 시장을 빼앗아오지 못하면 내가 살아남을 수 없고, 남의 시장을 빼앗아오면 나는 살아남을 수 있지만, 빼앗긴 상대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이제 세계 공황은 글자 그대로 ‘살아남기 게임’의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비정한 게임입니다.
어차피 처음부터 이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30년대 대공황 때도 꼭 이렇게 진행되었던 것이고...
30년대에는 사람들이 지식이 부족해서 뭘 몰랐기 때문에 사태가 계속 악화되었던 것이고, 지금은 공황이 어떤 방식으로 악화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대공황을 반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이 아직도 팽패합니다.
착각일 뿐입니다. 30년대에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사태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갔던 것입니다.
미국이 유럽, 중국, 일본에 요구하고 있는 ‘내수 부양’이라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세계 경제를 확대 재생산시키는 것, 즉 선순환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면 결국은 최종적으로는 내수 부양에 나섰던 나라까지도 다 같이 더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만 보면, 내 주머니의 돈을 꺼내 다른 나라 좋은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떤 나라의 정치가도 이런 선택을 지속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30년대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21세기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가면 사태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 쪽 길로 가고 있고, 앞으로도 줄곧 그 쪽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현재까지 세계 경제위기의 사태 진행은 30년대 대공황 당시와 거의 똑같습니다. 사태 전개에 걸리는 시간만 다소 차이가 날 뿐...
아직까지는 세계 각국이 ‘허울’을 유지하며 여러 가지 핑계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속내는 이미 다 드러났습니다. 조만간 얇은 허울마저도 벗어던지고 노골적으로 덤벼들 때가 되면 좀더 무섭게 느껴지겠지요.
각 나라 간의 ‘살아남기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수단은 통화의 ‘평가절하’입니다.
역시 EU가 포문을 먼저 열었습니다.
(글이 길어져서 일단 여기까지 끊고, 마무리 글은 월요일 아침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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