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리스로 대표되는 유럽의 재정위기에 가려 ‘두바이’이라는 이름이 잊혀진 듯 합니다만, 조만간 다시 언론을 장식하는 모습을 보게 되지않을까 싶습니다.
유럽의 재정위기든, 두바이든 ‘어떤 신통한 해결책’이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빨리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그동안 ‘빚더미’의 크기를 점점 키우면서 흥청망청 지내온 세월에 대한 응분의 댓가를 치러내는 것 외에 어떤 다른 ‘해결책’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관련 글: 빚으로 지탱해온 경제성장
응분의 댓가를 치른다는 말은 다음 둘 중의 하나를 가리킵니다.
1) 허리띠를 졸라매어 빚을 갚는 것
미국의 경우를 보면 빚은 GDP 대비 370%(30년대 대공황 당시는 260% 선)가 넘는데, 이는 미국 만의 상황이 아니라 남부유럽의 PIIGS 국가들을 포함하여 서방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비슷한 상황입니다.
허리띠를 졸라매어 이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야 합니다. EU의 기준으로 볼 때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말의 의미는,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이하로 낮추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허리띠를 졸라매어 빚을 갚는 것은, 대부분의 서방세계 국가들에게 공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의미와 같다는 사실을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2)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을 계속 거부하다가 파산하는 것
이는 ‘국가부도사태’가 결국 일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소한 두바이는 결국 파산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그 다음에 다른 나라가 파산하는 것을 보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막연한 예감으로는 다른 나라의 파산도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유럽의 재정위기든, 두바이든 위 두 가지 중 한 가지 길을 거쳐 응분의 댓가를 치르는 것 외에 어떤 다른 신통한 해결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점을 빨리 인식하시기를 권해드리면서, 이 글에서는 두바이의 상황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제가 두바이는 결국 파산하는 길로 가게 될 것으로 보는 이유는, 두바이의 경우는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하더라도 빚을 갚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이 벌려놓았기 때문입니다. 두바이는 지난 거품의 세월을 상징하는 일대 헤프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으로 봅니다.
그동안 두바이의 행적을 돌아보면,
두바이월드, "빚 못갚는다" 모라토리엄 선언 머니투데이
돌아보니 벌써 작년 11월의 일이군요. 두바이월드의 모라토리엄 선언이 국제 금융시장에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이 때 두바이가 마지막 희망으로 부여잡은 존재가 있습니다. --------------------------------
버즈두바이만 '한창'…다른 곳은 멈췄다 머니투데이
아침이 밝아왔어도 두바이 공사소리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세계 최고 빌딩 '버즈 두바이' 근처만 요란할 뿐이었다. ......
......
하지만 두바이 정부는 800미터(m)가 넘는 세계 최고 높이의 빌딩, 버즈 두바이가 12월 일반에게 공개되면 두바이가 옛 명성을 되찾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
두바이 정부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와중에도 버즈 두바이(이후 부르즈 칼리파로 이름 바꿈)의 개장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희망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귀착되었는지는 엊그제 보도된 언론기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
162층 부르즈 칼리파도 문 닫았다 조선일보
이달 16일 세계 최고층 빌딩(828m)인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 빌딩 앞에는 '공사 중, 출입금지' 표지판이 서 있었다. 주변에는 출입을 막는 줄이 둘러쳐져 있었다. --------------------------------------
결국 두바이 정부의 마지막 희망이던 부르즈 칼리파가 철저하게 몰락했고, 두바이 전체 부동산도 철저하게 몰락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부르즈 칼리파가 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개장하기 전부터 충분히 예견할 수 있던 일입니다. 어째서 그런지를 곰곰 생각해보는 것이 향후 우리나라 부동산의 향배를 예측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음은 부르즈 칼리파가 지난 1월초 개장 직후에 언론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
속 빈 '부르즈 칼리파<버즈 두바이에서 개명>'… 또다시 마천루의 저주? 조선일보
지난 4일
◆아파트값 반토막… 입주율 75% 머물듯
현지의 한 애널리스트는 "지금 같은 시기에 어떤 기업이 그렇게 사치스런 사무실을 빌리겠느냐"고 지적했다. 부르즈 칼리파는 피트니스센터, 전망대 등 고급 커뮤니티시설을 대거 갖추고 있다. 문제는 관리비. 1㎡당 800~900디르함(약 25만1000원~28만2000원)으로 주변 다른 빌딩(180~200디르함)의 4배가 넘는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부르즈 칼리파를 비롯한 두바이 일대 아파트와 사무실 가격은 1년 전보다 50% 이상 떨어졌고,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르즈 칼리파의 아파트 가격은 2008년 최고치(1㎡당 2만7000달러)에서 반 토막난 상황이다. 월스리트저널(WSJ)은 "두바이의 부동산 가격은 연말까지 30%쯤 더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코노미스트(Economist) 역시 "이 건물의 아파트 900채는 3년 전 거품이 가장 컸을 때 다 팔렸지만 대부분 투자 목적이어서 거주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다음은 두바이 사태 직후 우리나라 언론에 보도된 송도신도시의 상황에 대한 기사입니다. ----------------------------------
텅 빈 송도신도시, 우려 증폭 SBS
송도국제도시에 처음으로 입주한 초고층 주상복합 단지의 상가 2005년 분양당시 세계적인 명품도시 효과를 기대하며 분양 열기가 무척 뜨거웠습니다. ------------------------------------
아래 또 다른 보도는 송도 신도시의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
'두바이 후폭풍' 송도 신도시 아파트 가격 하락 SBS TV
'한국의 두바이'를 내걸었던 인천 송도 신도시가, 두바이 사태의 후폭풍을 맞고 있습니다. 최근 2주 동안 아파트 가격이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면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
송도는 서울에 인접한 경제자유구역이라는 프리미엄 덕에 그동안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값 하락폭이 작았던 지역입니다. 하지만, 두바이월드가 모라토리엄 선언을 한 지난달 말부터 가격 하락이 본격화됐습니다.
송도 오피스텔 입주율 '썰렁' SBS TV
지난 2007년 4,855대 1이라는 당시 최고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던 인천 송도의 한 오피스텔! 올해 7월 입주를 시작하고 3개월이나 지났지만, 입주자가 없어 비어 있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같은 결과가 아니라 송도보다 훨씬 못한 결과가 나오겠지요.) --------------------------------------
송도 신도시 오피스텔의 청약 경쟁률은 4,855대 1이었습니다. 오피스텔 한 채에서만 청약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4,854명이라는 얘기입니다. 탈락이 발표되었을 때 이 4,854명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매매가격이 분양가 이하로 내려간 지금은 심정이 어떨까요?
이처럼 송도신도시의 부동산 투자 사례를 보면 모두가, 자신이 직접 거주할 생각은 없고, ‘투자목적’으로 구입한 것입니다.
자신이 거주하는 것은 싫은데, 도대체 누가 와서 거주할 것인가? 아주 평범한 의문이 들 법도 한데, 광풍이 불 때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패턴이 송도신도시에서만 나타났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대부분의 신도시에 실수요 목적이 아니라 투자 목적으로 부동산을 매입한 사람들을 숱하게 봤습니다. 지난 수 년 간에 나타난 특징 중 하나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대거 부동산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는 점입니다. 내집 마련이 목적이 아니라, “월급 모아서 언제 목돈 만드나?” 가 부동산 매입(담보대출을 낀)의 이유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자금의 여유가 많지 않아서 대부분 신도시의 아파트나 오피스텔, 상가에 ‘투자’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그 곳에 가서 거주하거나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할 생각은 없고, 오로지 ‘투자목적’입니다. 내가 거기 가기는 싫고, 다른 누군가(누군지는 모르겠지만)가 가라는 얘기입니다.
강남권도 중 ·대형 전셋값 역전 세계일보
위 기사 원문을 보면 강남권에서도 중.대형 아파트의 전셋값이 역전되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강남 3구를 제외하면 서울 전역에서 소형 아파트 전셋값이 대형아파트를 추월했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이제 사람들이 솔직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형 아파트는 관리비가 부담되니 싫은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 수년동안 대형 아파트가 더 빨리 가격이 오른다는 말이 상식처럼 통용되었습니다.
나는 대형 아파트가 관리비 부담 때문에 싫지만, 다른 사람들은 좋아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격이 더 빨리 오를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무리해서 대형 아파트 구매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싫지만 다른 사람들은 좋아할 것이다? 내가 싫은데 왜 다른 사람들은 좋아해야 할까요?
내가 살고 싶지 않은 곳에 누군들 살고 싶을까, 가 평범한 이치 아닌가 싶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들은 ‘나보다 더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을 생각나게 합니다.
주식이나 아파트 같은 투자대상에 투기 바람이 불 때, 현재의 가격이 가치에 비해 너무 높다는 사실은 알겠지만, 더 높은 가격에 사줄 바보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 가격에 사서 투자수익을 내겠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이 이론의 진짜 해석은 따로 있습니다. ‘내가 그 바보다’ 가 정답입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정말로 더 바보에게 떠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매입했다면, 사실은 내가 바로 그 바보(greater fool)에 해당합니다.
이와 정반대로 어떤 자산을 매입하는 나에 대해 사람들이, 지금 같은 때 저 자산을 매입하다니 저 사람 바보 아냐?, 라고 말할 때,
나 스스로도 내가 지금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느껴질 때가 매입의 적기라는 사실입니다.
‘역발상 투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있는 현상은 역발상 투자하기 좋았을 때는 아무도 역발상 투자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시장이 호황기를 지나 상투에 가까울 무렵 역발상 투자에 대한 얘기가 가장 많이 들려옵니다. 대중들이 스스로 자기는 역발상 투자를 하고 있다고 여기면서 투기대상에 달려듭니다. 모두가 역발상 투자를 하고 있으면 역발상이 아니지요. 이제 상투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초고층 빌딩 건립계획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거의 대부분이 완공을 보지 못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수년간 초고층 주상복합이 유행했습니다. 초고층 주상복합은 관리비도 초고층입니다. 매우 매우 비싸지요.
지난 수년간 대형 평형 아파트들이 소형 아파트보다 더 빨리 올랐습니다. 떨어질 때도 더 빨리 떨어질 것입니다.
지난 수년간 숱하게 짓고 분양했던 상가들, 이미 공실이 많은데 앞으로는 더 많아지겠지요.
내가 들어가서 살고 싶지 않은 곳은 남들도 들어가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직접 가게를 열고 장사할 생각이 없는 곳은 남들도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평범한 이치를 놓치지 않는다면, 크게 실수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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